부산국제영화제(BIFF) 기간에 영화의전당만큼이나 뜨거운 열기를 자랑한 곳이 있다. ‘아시아콘텐츠&필름마켓(ACFM)’이 열린 벡스코였다. 올해 벡스코에선 30개국에서 253개사가 전시 부스를 꾸렸다. 이곳에서는 영화와 영상, 웹툰, 스토리 등 콘텐츠 원천 지식재산권(IP)을 대상으로 한 거래가 이뤄진다. 완성품은 물론이고 제작, 투자, 판권 거래까지 한꺼번에 아우른다.
BIFF의 핵심 비즈니스 행사다. 홍콩 필마트, 도쿄필름마켓(TIFFCOM)과 함께 아시아를 대표하는 콘텐츠 마켓이다. 영화계 관계자는 “국제영화제의 성패는 영화 제작진과 팬들이 얼마나 몰리느냐 뿐만 아니라 필름마켓이 얼마나 크냐도 중요한데 올해 부산 분위기는 상당히 좋다”고 말했다.
ACFM는 ‘K무비 위기론’이 커지는 상황에서 글로벌 진출로 위기를 돌파할 수 있다는 희망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올해 처음 한국을 찾았다는 영화 ‘엘비스’ 제작자 스카일러 와이스는 “K콘텐츠산업은 세계적인 현상”이라며 “해외 제작자들도 한국과 협력해 더 성공적인 스토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한국보다 빨리 영화 시장이 회복한 나라들이 한국을 찾아와 시장 조사에 나섰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이번 ACFM에서는 이탈리아와 영국이 단독 국가관을 신설해 한국 영화인들과 만났다. 일본, 사우디아라비아, 대만, 베트남 등도 국가관을 열었다. 자국 영화를 한국에 알리려는 목적도 있지만 국내에서 인기를 얻은 영화뿐 아니라 미공개 작품까지 발 빠르게 선점하기 위한 것이다.
쇼박스, 콘텐츠판다, 롯데엔터테인먼트 등 국내 영화·콘텐츠사 부스에선 해외 바이어들이 눈에 띄었고, 마켓 개막 첫날인데도 미팅 테이블이 빼곡히 들어찼다. 11개 영화사가 마켓에 참여한 이탈리아관 관계자는 “한국 영화 시장의 수준이 높다”고 했다.
ACFM의 장외전도 열렸다. 월트디즈니, 파라마운트, 유니버설, 워너브러더스, 넷플릭스, 아마존 등 할리우드를 주름잡는 글로벌 미디어 기업과 영화인들이 모인 미국영화협회(MPA)가 해운대의 한 특급호텔에서 포럼을 열기도 했다. ‘성공의 비밀: K-파워’라는 제목으로 한국 콘텐츠산업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한 MPA는 넷플릭스 글로벌 가입자의 60%가 최소 하나 이상의 한국 콘텐츠를 시청한 것으로 조사됐다며 한국 영화·콘텐츠의 글로벌 진출 성공 가능성을 높게 봤다.
최근 일본과 동남아시아 오리지널 콘텐츠 비중을 키우고 있는 넷플릭스는 지난 4일 부산에서 내년에 공개할 일곱 편의 한국 영화 라인업을 선보였다. 대형 영화사의 1년 개봉 물량에 버금가는 숫자로, 애니메이션부터 멜로드라마 등 장르도 다양화했다.
CJ는 CJ ENM, CJ CGV, 스튜디오드래곤, 티빙(TVING) 등 콘텐츠·미디어 사업을 벌이는 주요 계열사 경영진이 총출동해 포럼을 열고 맞불을 놨다. 윤상현 CJ ENM 대표는 “연간 1조원 규모의 콘텐츠 투자를 지속해 K콘텐츠 생태계를 선도하겠다”며 “영화인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파트너가 될 것”이라고 했다.
부산=유승목/최다은 기자 mo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