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의 시행을 바라보며 [하태헌의 법정 밖 이야기]

입력 2024-10-10 11:47
수정 2024-10-28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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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화폐의 시대…비트코인 1억 원 돌파인류가 언제부터 화폐를 사용하기 시작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함무라비 법전과 창세기에도 언급되는 것을 볼 때 화폐가 인류 문명과 역사를 함께 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동서양을 막론하고 과거 주로 통용되던 화폐는 금·은·동 등 귀금속으로 주조되어 그 자체로 실물 가치를 가지는 동전 등이었다. 예를 들어 금화는 그 화폐에 표상되는 액면가치(교환가치)가 아니더라도 금 자체가 가지는 고유한 실물 가치가 있었기에 사람들은 별다른 저항감이나 불안감 없이 이를 신뢰하며 사용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 실물 가치와 교환가치의 비율을 일정하게 유지시키는 것은 주조 당국의 주요 역할 중 하나이기도 하였다. 오죽하면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아이작 뉴턴의 주요 업적 중 하나가 동전을 갉아내어 금가루를 얻는 위조 행위를 막기 위해 동전 테두리를 톱니 모양으로 만든 것이었을까.

그런데 그 자체로 아무런 가치를 가지지 않는 지폐는 동전과는 사정이 많이 다르다. 지폐가 언제 처음 사용되었는지는 학자마다 견해가 다르지만, 송나라 신법을 시행한 왕안석이 어음 대신 지폐의 보급을 추진하면서 본격적인 지폐 사용이 시작되었다는 점에는 별 이견이 없다. 하지만 당시 상인들은 실제 가치는 없으면서 글씨 몇 자만 적힌 종이 쪼가리만 믿고 거래하기를 주저했고, 동파육으로 유명한 소동파 등 신법 반대파 역시 지폐 사용 확대에 반대하였다. 그러나 신법 찬성파는 국가가 지폐의 액면가치를 보증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고, 이는 지폐의 액면금액과 금의 가치를 대응시키는 금본위제도의 근간이 되었다.

그 후 기술의 발달로 이제는 실제 화폐를 주고받지 않더라도 전자매체를 통한 디지털정보의 전송만으로 가치를 교환할 수 있는 전자화폐의 시대가 도래하였고, 더 나아가 블록체인 기술과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10여년 전까지는 그 개념조차 생소했던 가상화폐까지 등장하게 되었다.

2008년 11월 사토시 나카모토에 의하여 비트코인이 세상에 처음 선을 보인 이후 짧은 시간 동안 가상자산이 우리 사회와 문화를 이렇게 바꾸어 놓을 것으로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당시 자체적인 실물 가치도 없고, 국가가 보증하지도 않는 가상화폐의 효용과 한계에 대하여 큰 우려가 있었고, 유럽 전체를 강타한 17세기 네덜란드 튤립 파동처럼 한 시대를 풍미한 광풍으로 끝날 것이라는 예측도 많았다. 그러나 이러한 예측을 비웃듯 어느덧 비트코인 가격이 1억 원을 돌파하더니 비트코인에 투자하는 ETF(상장지수펀드)까지 허용되어 활발히 거래되는 세상이 되었다. 불공정거래 처벌 근거 여전히 논란그리고 이러한 시대 변화를 반영하여 가상자산 이용자의 권익 보호와 건전한 거래 질서 확립을 위한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이 올해 7월 19일 본격적인 시행에 들어갔다. 그동안 가상자산이 언급된 법령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자본시장법에 준하여 가상자산에 관한 국가 차원의 규제를 천명한 최초의 법률이라는 점에서 위 법이 가지는 의미는 결코 적지 않다. 입법상 공백이라고 지적받아 왔던 자본시장법상 불공정거래 특히 사기적 부정거래와 유사한 행위 등을 규제하고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다만 이 법 시행 전까지 가상자산에 관한 불공정거래 의심 행위들을 어떤 법적 근거로 처벌할 수 있는지에 관하여는 현재에도 많은 논란이 있다. 일단 가상자산의 증권성이 인정되지 않은 이상 금융투자상품을 적용 대상으로 하는 자본시장법의 적용은 어렵다. 그렇다고 가상자산에 관한 위계 등을 각 투자자에 대한 기망 행위로 보아 사기죄를 적용하는 것도 쉽지 않다. 가상자산 투자자들은 저마다 다양한 동기로 가상자산을 거래하기 때문에, 설령 위계로 의심되는 행위가 있더라도 그 행위와 각 투자자 손해 사이의 개별적 인과관계를 증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자본시장법은 사기적 부정거래에 관하여 개별 투자행위와의 인과관계를 요구하고 있지 않기도 하다. 한편 최근에는 가상자산 시세를 변동시키는 방법으로 발행회사 주식에 관한 사기적 부정거래를 하였다며 관련자를 자본시장법 위반으로 기소하는 사건까지 등장했다. 그러나 가상자산과 가상자산 발행회사의 주식은 엄연히 구분되므로, 설령 가상자산에 대한 시세 변동이 있었다 한들 이를 회사 주식과 연결해 자본시장법상 사기적 부정거래로 의율하는 것은 법리상 상당한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무엇이 합법이고 불법이며 어디까지가 법상 허용되는 행위인지 분명하지 않던 시기의 일을 사후적인 잣대로 무리하게 법을 적용하며 처벌하려 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의 시행으로 이제는 가상자산에 관하여 허용되는 행위와 처벌되는 행위의 기준이 비교적 분명해졌으므로, 차츰 가상자산시장의 질서도 법 취지에 맞게 자리를 잡아 갈 것으로 기대된다. 물론 이러한 법령으로 인하여 제도권 밖에서 자유롭게 성장하던 가상자산시장이 위축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화폐의 역사가 그러하듯 국가가 그 효용과 의미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규제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오히려 이제 가상자산이 주식, 채권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어엿한 대체 자산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는 의미가 더 크다고 할 것이다.

물론 아직도 실물 가치를 가지지 않는 가상자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높다. 비트코인의 채굴이 끝나면 어떻게 될지, 사토시 나카모토가 가지고 있다는 약 100만개의 비트코인이 풀리면 시장이 무너지는 것은 아닌지 그 누구도 뭐라 장담할 수는 없다. 더 시간이 흘러 가상자산이 화폐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을지, 아니면 한낱 광풍의 역사로 기록되고 있을지는 가상자산을 전문으로 하는 변호사 입장에서도 매우 궁금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더 지켜볼 수밖에 없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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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헌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 서울대 치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병원에서 전문의 과정을 수료한 후 공중보건의사로 근무 중 사법시험에 합격하였으며, 판사로 임관하여 대법원 재판연구관(부장판사), 서울고등법원 고법판사 등 법원 주요 요직을 거쳤다. 미국 하버드대학교 로스쿨(LL.M)에서 미국회사법을 공부하였고, 의료인 출신이면서 부장판사 경력을 가진 국내 유일의 변호사로서, 의료인과 법관 출신으로서의 전문성을 살려 법무법인 세종에서 주요 민형사 송무, 기업분쟁, 금융분쟁, 가상자산, 제약바이오 사건 등을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