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층 1억명 감세"vs"법인세 추가 인하" 美대통령 결정할 경제정책은?[트럼프vs해리스 정책해부 ①]

입력 2024-10-14 06:52
수정 2024-10-14 06:53
[커버스토리 : 트럼프vs해리스 정책해부]


백악관의 주인은 미국 일만 결정하지 않는다. 전 세계 증시와 채권 시장, 외환 시장을 움직이고 누가 당선되느냐에 따라 금과 비트코인의 진폭도 달라진다. 통상정책 변화에는 전 세계 기업과 국가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워싱턴에서 정책 한 줄이 추가될 때마다 각국의 수출 전략과 산업 경쟁력이 뒤집히기 때문이다. 한 달이 채 남지 않은 미국 대선의 향방은 그 어느 때보다 불투명하다. 초박빙의 접전에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승패를 가를 정책은 경제공약이다.

해리스는 중산층을 중심으로 한 ‘기회의 경제’를, 트럼프는 제조업 부흥을 앞세운 ‘신(新)산업주의’를 내세우고 있다.

큰 맥락에서 두 후보의 공통분모도 있다. 미국 제조업 재건에 속도를 내고 중국은 견제한다. 대규모 감세를 추진하고 미국인들의 가장 큰 고민인 물가를 잡는다. ‘미국 우선주의’라는 목표는 같아도 과정은 다른 두 후보의 경제정책을 정리했다. 1. 감세
해리스는 지난 9월 ‘기회의 경제: 중산층을 위한 새로운 전진의 길’이라는 경제공약집에 감세안을 집중적으로 담았다. “중산층이 강할 때 미국이 강하다”고 강조해온 그의 정책 방향은 중산층 삶을 개선하는 데 집중했다.

우선 자녀가 있는 가정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2021년 바이든 행정부에서 추진한 ‘미국 구조계획법(ARP)’에 포함됐던 자녀 세액공제를 확대하고 신생아 부모에게 더 많은 지원을 제공한다. 자녀 한 명당 공제액을 2000달러에서 3600달러로 높이고 생후 1년 이내 영유아 가정에 최대 6000달러를 공제하는 공약을 꺼냈다.

팁에 대한 소득세는 면제하고 연소득 40만 달러(약 5억3000만원) 이하 가구에 대한 증세는 억제해 중산층 1억 명의 세금을 인하한다는 계획이다. 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와 소상공인에게 세액공제도 약속했다.

그는 감세로 인한 세수 수입 감소를 막기 위해 고소득층과 법인세는 늘리겠다고 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하던 자산가치 1억 달러 이상 개인을 대상으로 미실현 이익을 포함한 과세소득에 최소 20% 연방 소득세율을 적용하는 ‘억만장자 최저 소득세’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법인세 역시 대기업은 증세, 중소기업은 감세하기로 했다. 법인세율은 현행 21%에서 28%로 인상하지만 스타트업에 대한 세금 공제 한도는 기존의 5000달러에서 10배인 5만 달러로 늘린다. 해리스는 “초대형 기업들과 억만장자들이 자기 몫을 지불하도록 해야 한다”면서 법인세 인상을 강조하고 있다.

트럼프 역시 감세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트럼프는 2017년 재임 당시 연방 법인세율을 35%에서 21% 낮추는 등 감세와 일자리법을 시행했다. 이번 대선에서는 내년 만료되는 개인소득세율 인하, 표준공제 증가, 자녀세금공제(CTC) 확대, 상속·증여세 면세 한도 상향 등 감세 조치를 영구히 연장하겠다고 선언했다.

법인세는 더 과감하게 내린다. 미국 국내 제조기업 법인세는 15%로 낮추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번 대선에서는 근로자를 위한 대규모 세금 감면도 언급했다.

팁에 대한 면세와 소셜시큐리티(노령연금) 면세 등 전방위적인 감세를 공약했다. 트럼프는 감세가 기업 투자, 가계 소비 여력을 늘려 경제성장과 세수 증대로 이어진다는 입장이다.

두 후보 모두 세수 확보 정책 없이 감세 정책을 쏟아내고 있어 미국의 재정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 세수가 줄어들면 이를 메우기 위한 국채 발행이 늘어나고 금리가 오를 가능성이 높다. 2. 관세
바이든 행정부는 전면적인 관세 부과에는 반대하되 중국산 철강 및 알루미늄 등 일부 표적 관세 부과를 선호했다. 해리스 후보도 방향성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전기차와 친환경 에너지 분야에서 중국의 과잉 생산에 대응하기 위해 보호무역 정책을 시행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는 법인세와 소득세를 낮추는 대신 해외 기업에 관세를 더 받아 곳간을 채운다는 입장이다. 공약에는 모든 국가에서 수입하는 모든 제품에 10~20%의 보편 관세를 부과하고 중국산 제품에는 최소 60%의 관세를 매기겠다고 했다.

공약에는 싣지 않았지만 트럼프는 꾸준히 “중국산, 멕시코산 차량에는 200%까지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발언을 했다. 지난 9월 조지아주 연설에서는 미국-멕시코 국경을 통과하는 모든 자동차에 10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말했다.

펜실베이니아주 유세 현장에서는 농기계 제조업체 존디어가 멕시코로 생산을 이전할 경우 미국으로 수입하는 제품에 200%의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초고율 관세 부과 위협 대상이 자동차에서 농기계까지 확대된 것이다. 3. 물가 NBC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 유권자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제는 물가상승과 생활비다. 해리스는 식료품 가격 ‘바가지’를 막는 사상 첫 연방 차원의 입법에 나설 것이라고 공약했다. 또 다주택자에 대한 세금 혜택을 없애 임대료 인상에도 제동을 걸 방침이다.

트럼프는 해리스의 물가정책이 공산주의적 가격통제라고 비난한다. 그는 부자연스러운 물가정책 대신 에너지 비용을 낮춰 물가를 잡겠다고 공언했다. 바이든 정부의 친환경 정책을 폐기하고 화석 연료 사용을 확대해 연료비를 인하하겠다는 것이다. 또 불법이민자를 추방해 임대 수요를 줄여 주택 가격 압박을 완화하겠다는 구상이다. 4. 제조업
제조업 르네상스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시절부터 이어져온 민주당의 꿈이었다. 오바마 재임 시절 제조업 르네상스의 청사진이 만들어졌고 바이든 행정부는 반도체법과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통해 한국과 대만 등 해외 기업들의 생산 기지를 미국으로 옮겨왔다.

지원과 규제를 적절히 활용하며 공급망 재편과 제조업 부활을 실현한 것이다. 해리스 역시 바이든 정부의 제조업 르네상스 기조를 이어받는다.

해리스는 공약집에서 향후 10년간 1000억 달러(약 133조원)의 세액공제를 통한 제조업 육성 정책을 소개했다. 해리스가 내놓은 제조업 공약의 핵심은 첨단기술과 전략산업 투자, 제조업 일자리 보호 기업 지원, 중국 등 경쟁자에 대한 단호한 조치 등이다.

지원 대상에는 인공지능(AI), 양자컴퓨팅, 블록체인, 항공우주 등 첨단기술 산업과 철강, 자동차 등 전통 제조업이 포함됐다. 반도체법 등을 통해 첨단산업을 유치한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을 확대해 철강 같은 기간산업 보호를 위해서도 보조금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트럼프의 MAGA(다시 미국을 위대하게) 정책의 핵심 역시 제조업 리쇼어링(회귀)이다. 그는 지난 9월 조지아주 연설에서 “나에게 투표하면 중국에서 펜실베이니아로, 한국에서 노스캐롤라이나로, 독일에서 바로 이곳 조지아로 제조업의 대규모 엑소더스를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법인세를 낮추고 관세를 높인 것도 제조업 부활을 위한 카드다. 그는 또 세제 혜택, 규제완화, 에너지 지원을 쏟아부은 ‘제조업 특구’를 만들겠다고 했다.

트럼프는 “가장 낮은 세금과 가장 저렴한 에너지 비용, 가장 적은 규제 부담, 세계 최고이면서 최대 규모 시장(미국)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을 약속한다”며 “제조업 특별구역은 다른 나라에서 미국으로 이전되는 전체 산업을 재배치하는 이상적인 장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5. 전기차와 에너지 정책
해리스는 과거 수차례 전기차를 포함한 친환경 차량 생산 의무화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고 부통령 시절에도 전기차 의무화 지지 발언을 여러 차례 했다. 바이든 정부는 2030년 신차 판매 중 전기차가 50% 이상 되도록 하겠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하지만 경합주(스윙스테이트)에서 치열한 접전이 벌어지자 입장을 틀었다. 자동차와 전통 제조업이 자리 잡은 러스트벨트의 표심으로 당선이 좌우될 수 있는 만큼 해리스는 “전기차 의무화를 지지하지 않는다”며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에너지 정책의 큰 줄기는 탄소 배출량을 줄이고 재생에너지를 육성하는 친환경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트럼프는 ‘전기차 의무화’와 ‘IRA’ 폐지를 줄곧 외쳤다. IRA는 바이든 정부가 태양광이나 풍력발전 등 친환경 에너지, 전기차에 투자하는 기업에는 막대한 세액공제 혜택을 제공하기 위해 만든 법안이다. 트럼프는 IRA를 폐지하는 대신 석유·천연가스·석탄 산업의 활성화를 위해 관련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방침이다.

트럼프가 당선되면 미국에 투자한 한국 배터리 기업과 태양광 기업의 미래는 장담할 수 없다. 물론 트럼프가 당선된다고 해도 IRA를 쉽게 폐기하거나 수정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의회를 통과한 법안인 만큼 공화당의 압도적인 지지가 필요하다. IRA가 대통령 행정명령이 아니라 의회를 통과한 법안이기 때문이다. 6. 낙태
해리스는 낙태권을 보장하며 여성 유권자들의 표심을 자극하고 있다. 낙태권은 트럼프 행정부 1기에서 임명한 보수 성향 대법관 3명이 2022년 ‘로 대 웨이드’ 판결을 폐기하면서 대선의 핵심 정책으로 떠올랐다. ‘로 대 웨이드’ 판결은 낙태권을 헌법상 권리로 보장했지만 트럼프가 임명한 대법관들이 이를 폐기하면서 낙태권 존폐가 각 주정부 및 의회 권한으로 넘어갔다.

트럼프는 이를 자신의 성과로 내세워 왔지만 2022년 중간선거에서 낙태권 폐지에 반발한 여성 유권자들은 등을 돌렸다. 그러자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는 “나는 연방 차원의 낙태 금지를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며 “각 주에서 결정할 문제”라고 했다. 낙태를 명확하게 반대하지 않고 모호한 입장 표명으로 노선 수정에 나선 것이다. 7. 방위 해리스는 일본 등 동맹국과 안보, 경제 협력을 이어갈 것으로 예측된다. 반면 트럼프는 집권 시절부터 동맹 관계 재조정을 주장했다. 한국을 포함한 동맹국들에 방위비분담금 인상을 끈질기게 요구했다.

한·미는 10월 4일 제12차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협상에서 2026년도 방위비 분담금을 2025년 대비 8.3% 늘어난 1조5192억원으로 최종 타결했다. 연간 증가율과 상한선을 우리 측에 유리한 방향으로 조정했지만 트럼프 재선 시 방위비 재협상을 요구할 수 있다는 부담이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입장도 나뉜다. 해리스는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에 대한 강력한 제재와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및 경제지원을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를 중심으로 한 집단안보 체제에 중점을 두는 방식이다.

반면 트럼프는 유럽의 나토 방위비 규모를 지적하며 탈퇴를 거론했고 우크라이나 지원에도 회의적인 입장이다. 트럼프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인연도 있어 우크라이나 지원에 소극적이다. 8. 이민 해리스는 안전하고 인도적인 이민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트럼프는 이민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고 있다. 해리스는 자신의 국경안보 강화 해법을 ‘상식에 기반한 접근(Common sense Approach)’이라고 칭하면서 국경을 넘어 들어오는 갱단과 마약밀수범 등을 차단하기 위한 신기술 도입 및 인력 확충 필요성을 강조했다.

불법체류나 범죄 유입은 단속하되 이민자들이 합법적으로 미국의 사회 구성원이 될 수 있는 길은 열어둔 것이다. 트럼프는 당선 직후 불법이민자를 대규모 추방하고 국경 장벽 건설을 재개하겠다는 입장이다. 9. 마리화나(대마)두 후보 모두 대마 합법화를 준비 중이다. 바이든 행정부와 해리스는 연방 차원에서 대마를 합법화하고 양지로 끌어올려 세수를 늘리겠다는 정책을 세우고 있다. 그동안 마약 강경 반대론자였던 트럼프 역시 21세 이상 성인의 기호용 마리화나(대마) 사용을 합법화하겠다며 입장을 선회했다."한국기업, 의회 변화도 주시해야"
-도움말 : 미국 로펌 DLA파이퍼 Ignacio E. Sánchez, Sang Kim 변호사, 법무법인 율촌 최용환 변호사, 홍욱선 미국변호사 미국의 노골적인 자국 우선주의가 강화되면서 한국의 셈법은 복잡해지고 있다.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방위산업 등 제조업 수출을 토대로 성장한 우리 기업들은 두 후보의 정책 변화와 규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워싱턴DC 조직을 강화하고 거물급 인사를 영입하고 로비금액을 늘리며 발빠른 대응에 나섰다. 2022년 IRA 법안 통과 당시 한국 기업과 한국 정부는 관련 정보 수집이 제대로 안 됐고 대응책 마련이 늦어졌다는 비판을 받은 만큼 이번 대선에서는 세밀한 전략을 세운다는 입장이다.

전문가들은 한국 기업이 지정학적 리스크를 고려하고 중국이 한국을 통해 미국 제재를 회피하는 ‘코리안 워싱’을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법무법인 율촌 입법지원팀과 미국 로펌 DLA파이퍼는 한경비즈니스에 “‘인사가 곧 정책이다’라는 오래된 격언을 잊지 말아야 한다”며 “현재 하원은 공화당에서 민주당으로, 상원은 민주당에서 공화당으로 바뀔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두 의회의 새로운 위원회와 소위원회 의장들이 제시할 새로운 의제를 고려해 한국의 사업적 이익을 대변하기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반도체와 자동차산업에서의 미국 우선주의는 백악관과 의회의 선거 결과에 관계없이 유지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 다른 변수도 있다. 한국 기업들이 반도체법, IRA와 연계해 투자한 지역이 모두 공화당 텃밭이라는 점이다.

한국 기업이 투자를 통해 현지 고용을 창출하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해당 지역의 의원들은 한국 기업과의 관계를 긴밀하게 이어갈 것이라는 전망이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