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경주 "'애니', 뮤지컬 교과서 같은 작품"…송일국 "의미 남달라" [인터뷰+]

입력 2024-10-24 08:00

무대를 꽉 채우는 아이들의 역동적이고 쾌활한 에너지, 어른과 아이 사이에서 싹트는 순수하고 값진 우정. 감히 그 무엇도 더럽힐 수 없을 것 같은 맑은 무언의 존재는 공연장을 떠나는 마음 한가득 푸근함을 안긴다. 뮤지컬 '애니'는 그런 작품이다.

11년 후 돌아오겠다고 약속한 부모님을 기다리는 고아 소녀 애니가 부르는 '투모로우(Tomorrow)'는 작품을 대표하는 넘버다. 뮤지컬 '애니'를 본 적 없는 사람일지라도 '투모로우'는 들어본 적이 있을 정도로 유명한 곡이다. 내일은 근심·걱정이 사라질 거라며 내 꿈을 펼치겠다고 외치는 '애니'의 청명한 목소리는 1930년대 대공황을 겪는 미국 뉴욕에도 희망을 안겼다.

고아 소녀 애니가 억만장자 워벅스를 만나면서 겪는 이야기가 심금을 울리는 웅장한 분위기의 명곡과 함께 펼쳐진다. 10명의 아역 배우들이 고아원 바닥을 닦으며 "너무 힘들어. 정말!"이라고 외치는 부분은 단연 압권이다. 이들은 쉼 없이 텀블링하며 아크로 바틱을 활용한 안무를 선보인다. 13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애니 역을 맡은 최은영, 곽보경은 천상의 목소리를 자랑한다.

어린 배우들에 둘러싸여 워벅스를 소화하는 사람은 40년 경력의 '베테랑 뮤지컬 배우' 남경주와 뮤지컬 경력을 차근차근 쌓아가고 있는 송일국이다.

서울 모처에서 만난 남경주는 "무대에 오르는 아이들은 10명인데 더블 캐스팅이라 총 스무명이다"라며 "아이들이 지치지 않는 것 같다. 연습실부터 지금 공연장에서도 에너지가 넘쳐서 그걸 보는 즐거움이 있다. 딸 가진 아빠이다 보니 아이들하고 교감할 때, 특히 애니와 연기할 때 너무 행복하다"며 흐뭇해했다.

대한, 민국, 만세 세쌍둥이 아들을 키우고 있는 송일국은 "애들이 초등학교 6학년이다. 주인공 애니가 둘 다 5학년인데 작년 우리 애들을 떠올리면 과연 이 친구들이 이걸 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웬걸 너무 잘하더라. 오히려 아이들 덕분에 하면서 배우고 있다. 특히나 최은영 양 같은 경우는 지금이 다섯 번째 뮤지컬이다. 나보다 한참 선배님이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그는 "공연 모니터링을 하면서 반성도 많이 한다. 아이들의 목소리가 굉장히 귀에 잘 꽂히는 소리이지 않냐. 정확한 대사 전달이 큰 울림을 주더라. 감정 전달도 중요하지만 정확한 대사 전달이 우선이다. 감정이 앞서다 보면 의미가 전달이 안 돼 놓치는 때가 많은데 아이들을 보면서 많이 반성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남경주에게 '애니'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 작품이었다. 1984년 서울시립가무단에 들어가 뮤지컬 '포기와 베스'로 데뷔한 그는 1985년 '애니' 한국 초연에서 단역을 맡았었다. 39년 만에 워벅스 집의 하인에서 워벅스로 신분이 상승했으니 더없이 의미가 남다를 터. 남경주는 "꿈꾸던 게 현실이 된 것"이라며 웃었다.

그는 "당시 워벅스가 최종원 선배님, 그레이스(워벅스의 비서)가 윤석화 선배님, 루즈벨트가 최불암 선생님, 헬리건(고아원 원장)이 윤소정 선생님이었다. 그때 최종원 선배님이 강인한 워벅스를 표현하려고 머리도 밀었었다. 그걸 보면서 '나중에 세월이 지나면 나도 저 배역을 할 수 있을까' 생각했었다"면서 "좋은 기회로 꿈을 이룬 요즘, 하늘을 걷는 기분이다"고 전했다.

'애니'는 늘 마음에 품고 있는 작품이었다. 뉴욕에 살던 시절, 플리마켓에 가서 LP를 사 모으는 게 취미였다는 남경주는 "'애니'가 A로 시작하니까 항상 맨 앞에 꽂혀있었다. 또 내가 재즈를 좋아하는데 '메이비(Maybe)'를 남자 재즈 가수들이 많이 편곡해 부른다. '메이비'만 들으면 그렇게 좋더라. 고아인 어린아이가 부모를 생각하면서 부르는데 그 감성이 노래 멜로디에 상상이 된다. 들으면서 운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겐 여러 가지로 의미 있는 작품"이라고 했다.

특히 그는 '애니'를 "뮤지컬계 클래식", "교과서적인 작품"이라고 표현했다.

이유를 묻자 "스토리가 전형적인 해피엔딩이고 어렵지 않다. 돈만 좇던 사람이 고아 소녀를 통해 자기 인생을 돌아보고, 소녀를 보듬어 안는 전형적인 해피엔딩의 내용이다. 갈등이 그렇게 많지 않다. 클래식에서 변형된 최근 작품들은 갈등 구조도 많고 메인 플롯이 있으면 서브플롯이 몇 개씩이나 있다. 뮤지컬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이 보면 너무 복잡하다"고 설명했다.

또 "음악적으로는 뮤지컬의 음악 작법을 잘 보여준다. 뮤지컬의 음악적 구성요소 중에 프로덕션 넘버 등 여러 요소가 있지 않냐. 그걸 그대로, 전형적으로 다 쓴 작품이다. 음악이 익숙하지 않냐. '투모로우' 등 넘버를 보면 인물의 감정을 쉽게 표현할 수 있게 작법한 거다. 요즘은 음악적으로 화려하게 표현해서 대중적으로 주목받을 수 있는 작곡을 많이 하는데 그것과는 조금 다른 순수한 작곡법"이라고 짚었다.


송일국은 '애니'에 참여하기 전까지는 이 작품을 몰랐다고 했다. 그는 "작품을 몰랐기 때문에 전수경 선배님한테 연락해서 물어봤는데 '무조건 해. 너한테 딱이야'라고 하더라. 막상 해보니까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좋은 작품이었다"고 고백했다.

남경주와 더블 캐스팅이 된 사실만으로도 영광이라고 말한 송일국이었다. '애니'는 '브로드웨이 42번가', '맘마미아'에 이은 세 번째 뮤지컬이다. 송일국은 돌연 휴대폰을 꺼내더니 사진 한 장을 보여줬다. 악보에 마이크, 녹음 프로그램에 간이 건반까지 마치 작곡가 작업실과 같은 책상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었다.


그는 "선배님과 더블인 것만으로 영광으로 생각한다"면서 "선배님처럼 끼가 많은 배우가 아니라 처음 등장할 때 포즈부터 다르다. 30년 넘는 노하우는 못 쫓아간다. 이렇게라도 하니까 지금 이 정도까지 왔다고 생각한다"며 멋쩍게 웃었다.

송일국은 "'애니'는 나한테도 의미가 남다르다. 지금까지 노력한 것의 보상이라고 생각한다.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한 번도 내 작품으로 해놓은 적이 없는데 처음으로 바꿨다"며 거듭 휴대폰을 내밀어 보였다. 그러면서 "관객들한테 희망을 주는 작품이라 생각한다. 나 역시 그걸 표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애니'는 오는 27일까지 서울 광진구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공연한다. 이후 오는 11월 15~17일에는 세종예술의전당에서 진행된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