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경쟁력 되찾기’를 선언한 삼성전자가 시험대에 오르는 건 내년 하반기다. 엔비디아의 인공지능(AI) 가속기에 들어가는 최신 고대역폭메모리(HBM) HBM3E의 후속 제품인 HBM4를 이때부터 양산하기 때문이다. HBM3E에서 SK하이닉스와 미국 마이크론에 밀린 수모를 딛고 차세대 제품을 가장 먼저 엔비디아에 납품하면 ‘위기의 삼성’ 우려는 상당폭 줄어들 전망이다.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에서 최첨단 공정인 2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의 수율을 대폭 끌어올려 글로벌 빅테크를 고객사로 확보하는 것도 삼성이 반드시 수행해야 할 핵심 과제로 꼽힌다.
9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삼성 메모리반도체 사업부문은 HBM4 개발을 최우선 순위로 두고 회사 역량을 집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HBM은 어느 전자제품에나 장착할 수 있는 범용 D램과 달리 ‘고객 맞춤형 제품’이기 때문에 ‘큰손’인 엔비디아를 뚫는 게 가장 중요하다. 삼성은 HBM4 시장이 열리는 내년 하반기를 기점으로 SK하이닉스에 내준 HBM 주도권을 되찾기 위해 최고 성능, 최고 수율로 HBM4를 개발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삼성 내부 파운드리 사업부뿐 아니라 파운드리 최강자인 대만 TSMC와도 손잡기로 했다. HBM의 두뇌 역할을 하는 로직다이 제조를 경쟁사에 맡길 정도로 품질에 올인하겠다는 의미다.
삼성은 동시에 TSMC와는 내년부터 열리는 2나노 공정 양산을 놓고 본격 경쟁을 벌인다는 계획이다. 3나노 공정 경쟁에선 TSMC에 완패했지만, 2나노부터 따라잡기에 나서겠다는 얘기다. 나노는 반도체 회로 선폭 단위로, 선폭이 좁을수록 정보처리 속도는 빨라지고 전력 소모는 줄어든다. 삼성은 2나노 공정을 내년 모바일용 반도체 생산에 적용한 뒤 고성능 컴퓨팅 등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 같은 삼성의 첨단 공정 개발 경쟁에 대해 일각에선 “내실 다지기가 먼저”란 평가를 내놓고 있다. 삼성이 ‘최첨단 기술 선도 기업’이란 타이틀을 놓지 않으려고 기술이 설익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고객 확보에 나선 탓에 되레 삼성의 기술력에 대한 시장의 의구심만 키웠다는 이유에서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기업들이 기술로 승부하는 반도체 시장에서 기술력을 의심받으면 살아남기 힘들다”며 “삼성이 근원 경쟁력을 회복하려면 기본기부터 다시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채연 기자 why2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