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맥 넘어온 속초의 연극! 전국의 명작들 '서울행'

입력 2024-10-09 17:19
수정 2024-10-10 00:22

팔순 넘은 황 노인은 요즘 자꾸만 기억을 잃는다. 전쟁 통에 내려와 맨몸으로 집안을 일으킨 그는 이제 요실금으로 마루를 적시는 등 가족의 골칫거리가 됐다. 그나마 황 노인을 돌보는 간병인 옥이가 믿음직해 다행스럽지만, 문제는 그치질 않는다. 황 노인이 옥이를 과거 연모하던 연인으로 여기며 집안은 또 한바탕 들썩인다.

극단 파람불의 연극 ‘옥이가 오면’의 줄거리. 파람불은 이 작품을 들고 지난해 국내 최대 규모 연극제 ‘대한민국연극제’에 강원 지역 대표팀으로 나가 금상을 거머쥐었다. ‘치매 걸린 노인의 눈으로 본 세상은 추억과 현실이 교차한다’는 내용과 연출이 작품성을 인정받은 것이다. 이 작품은 2022년 초연됐지만, 공연 애호가들에게 널리 알려지진 못했다. 파람불이 강원 속초에서 활동하는 지역 예술단체인 터라 공연 관람 인구가 많은 서울·수도권까지 작품을 유통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속초 바닷바람을 맞으며 기획된 이 작품이 태백산맥을 넘어 서울 예술의전당에 상륙한다. 지난 4일부터 전국에서 열리고 있는 공연예술 축제 ‘대한민국은 공연 중’을 통해서다. 극단76의 ‘관객모독’, 극단 코너스톤의 ‘맹’ 등과 함께 ‘또 한 번 빛나는-연극’을 주제로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열리는 6편의 공연으로 뽑혀 오는 11월 8일 무대에서 관객과 만난다. 김강석 극단 파람불 대표는 “예술의전당이라는 공간이 주는 힘이 있지 않느냐”며 “배우들도 갈고 닦은 공연을 선보이는 데 큰 기대감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올해 처음 개최하는 ‘대한민국은 공연 중’은 대한민국 곳곳에서 열리는 전국 단위 공연 페스티벌이다. 서울아트마켓·서울국제공연예술제·웰컴대학로 등 주요 행사가 이어지는 공연 성수기인 10~11월에 전국 각지에서 다채로운 공연을 선보여 침체된 공연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마련됐다. 예술의전당, 국립극장을 비롯한 주요 공연장과 청와대 헬기장, 마로니에공원, 청계천 등 야외무대에서 연극, 무용, 클래식, 국악을 아우르는 140편의 공연이 동시다발로 열린다.

이 행사는 지역 예술작품들이 서울을 찾는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게 공연계의 평가다. 평소 접하기 어려운 지역 기반 극단과 음악가, 무용가들의 작품이 시·도 경계를 넘어 관객과 만나기 때문. 유인촌 문체부 장관은 “예술가들이 어디서 활동하건 대중의 주목을 받고, 나아가 해외 무대까지 연결되도록 준비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파람불을 비롯해 지역예술단체 8곳이 서울 주요 공연장에서 더 큰 무대로의 도약을 꿈꾼다. 대전 극단 홍시의 ‘이별의 말도 없이’와 안다미로아트컴퍼니 ‘문’이 각각 10월 26~27일, 11월 10일에 예술의전당 무대에 오른다. 경남 김해 지역 극단 이루마의 음악극 ‘당신이 좋아’, 부산 오오씨어터가 전래동화 별주부전을 재해석한 가족뮤지컬 ‘토장군을 찾아라’가 오는 19일 청와대 헬기장 야외무대에서 펼쳐지는 ‘가을 음악회’ 무대에서 관객들을 만난다.

유승목 기자 mo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