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그룹은 방산, 우주 분야를 중심으로 각 사업에서 혁신을 가속화하고 있다. 현재 추진 중인 신사업 성과를 앞당기고, 신규 사업을 발굴해 미래 먹거리를 구상하고 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올 초 신년사에서 “차원이 다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고 스스로 혁신하는 ‘그레이트 챌린저(위대한 도전자)’가 돼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지상·해양·공중에 이어 우주까지
한화그룹은 방산을 책임지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한화시스템을 중심으로 지상, 해양, 항공을 넘어 우주까지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한화시스템은 국내 민간 기업 가운데 최초로 소형 합성개구레이다(SAR) 위성을 국산화하는 데 성공했다. ‘우주의 눈’으로 불리는 SAR 위성은 전자기파를 이용해 지구 표면의 고해상도 이미지를 얻는 능동형 레이다 위성이다. 보이는 대로 촬영하지 않고, 레이다를 쏘고 파동을 분석하는 방식을 활용한다. 광학위성과 달리 날씨의 영향을 받지 않지 않는 이유다. SAR 위성은 악천후 등 기상 조건을 가리지 않는 데다 밤에도 표적을 식별할 수 있다.
SAR 위성은 지난해 첫 발사에 성공했다. 현재 650㎞ 상공에서 지구를 관찰하고 있다. 이 위성은 가로·세로 1m의 물체를 사진에서 한 점으로 표현할 수 있을 정도의 해상도를 갖췄다. 한화는 지난 7월 영국에서 열린 세계 3대 에어쇼인 ‘판버러 에어쇼’에서 SAR 위성으로 촬영한 영상을 공개했다. 파리 올림픽 경기장을 식별할 수 있을 정도였다. 한화는 선진국이 갖춘 고해상도 소형 SAR 위성도 개발 중이다. 작은 상자 정도의 물체까지 식별할 수 있다.
한화시스템이 개발한 능동형위상배열(AESA) 레이다는 ‘항공기의 눈’으로 주목받고 있다. ‘1000개의 눈’이라는 별칭을 지닌 AESA 레이다는 1000여 개의 송·수신 모듈이 잠자리의 홑눈처럼 독립적으로 작동한다. 덕분에 기체를 돌리지 않고도 여러 개의 목표물을 동시에 탐지하고 추적할 수 있다.
한화는 복잡한 장비로 이뤄진 함정에서 지휘자 역할을 하는 시스템인 ‘통합 전투체계(ICS)’도 갖췄다. 기존엔 각각 기능을 수행해야 했던 △통합제어장치(ECS) △통합함교체계(IBS) △유·무인복합체계(MUM-T) 등 함정 내 각종 시스템을 하나의 다(多)기능콘솔에서 통제할 수 있다.
해양 방산 분야에서도 기술력을 뽐내고 있다. 한화오션은 장보고-III 배치-2 잠수함에 세계 최초로 공기불요추진체계(AIP)와 리튬전지를 결합해 잠항 지속능력을 끌어올렸다. 잠수함은 바닷속에서 얼마나 오래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만큼 성능이 전반적으로 개선된 것이다. 잠수함 전면에는 이전보다 더 커진 수평발사체계를 탑재해 어뢰와 대함미사일 등 운용이 가능해졌다. 한화 관계자는 “핵 추진 잠수함을 제외하고 디젤 추진 잠수함 중 최장의 잠항능력과 최강의 무장 수준을 갖췄다”고 설명했다. 항공엔진 기술 국산화도 박차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항공엔진 국산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재 항공엔진 분야에선 제너럴일렉트릭(GE), 프랫앤휘트니(P&W), 롤스로이스 등 3강이 주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이들 기업의 핵심 파트너로 항공엔진을 생산하고 있다.
항공엔진을 개발하는 데는 최소 10년 이상이 필요하다. 소재, 기계, 전기, 전자 등 수많은 분야의 전문 지식을 필요로 한다. 또 최첨단 공학 기술이 있어야 완성된다. 고온·고압의 공기를 버텨내는 소재와 구조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수천~수만 시간 작동해야 하기 때문에 엔진의 수명도 정확히 예측해야 비행기가 안전하게 운항할 수 있다. 기체의 성능과 생산비용 측면에서 항공엔진은 가장 중요한 부품이다. 특히 전투기는 엔진에 따라 방향 전환과 속도 조절 성능이 갈린다. 그만큼 더 복합적인 항공엔진 기술이 필요하다.
항공엔진이 일으키는 파급 효과는 매우 크다. 미국은 F-35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1000여 개의 중소기업을 포함해 1600여 개의 기업과 협업했다. 이런 과정에서 20만 개 이상 일자리를 창출했다. 미국 전역에서 연간 약 720억 달러의 경제적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우리 정부도 지난해 12월 12대 국가전략기술 가운데 우주항공·해양 기술을 포함시키며 항공엔진 기술 확보에 힘을 싣고 있다. 현재 1만5000파운드급 엔진을 개발하는 국가는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우크라이나, 중국 등 6개국뿐이다. 기술을 보유하지 않으면, 전투기를 양산해도 이들 국가의 규제에 막혀 수출이 어렵다. 한화 관계자는 “항공엔진을 유지·보수·정비(MRO)하는 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김형규 기자 k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