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의 ‘공공기관 정원 구조조정’ 기조에 맞춰 지난해 일제히 공격적인 감원에 나섰던 공공기관들이 올해 다시 정원을 늘리고 있다. 올해 초 정부는 “지난해 정원 1만1374명을 감축해 공공기관 혁신계획을 초과 달성했다”고 홍보까지 했지만 불과 4개월 만에 공공기관의 절반 이상이 증원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공기관의 ‘방만 경영’을 수술하겠다는 취지의 구조개혁이 동력을 잃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文 정부 때보다 늘어난 곳도 23%8일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이 기획재정부에서 받은 자료를 한국경제신문이 분석한 결과 올 상반기 전체 공공기관(부설기관 포함)의 54.2%(184개)가 전년 대비 정원을 늘렸다. 이 중 77곳(22.7%)은 2022년 문재인 정부 때보다 오히려 정원이 많아졌다.
정부는 2022년 12월 350개 공공기관 정원을 2025년까지 1만2442명 감축하는 내용의 ‘공공기관 혁신계획’을 내놨다. 전 정부 5년간 공공기관 정원이 11만5000명 급증해 덩치가 비대해지고 효율은 떨어진다는 문제가 제기됐기 때문이다. 방만 경영으로 인한 재정 악화 우려도 커졌다.
정부는 계획안을 제시한 지 1년 만에 계획을 102.7% 초과 달성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지난해 감원한 공공기관 상당수가 반년 만에 다시 확장 본능으로 회귀했다. 올해 가장 많이 증원한 공공기관은 한국철도공사로 265명 늘렸다. 내년까지 722명 감축하겠다는 계획을 제출했지만 지난해 393명을 감원한 후 다시 증원에 나섰다. 한국전력은 496명 감원 계획을 밝혔고 지난해 408명을 줄였지만 올해 103명 늘렸다. 이 밖에 국민건강보험공단(169명) 한국수출입은행(110명) 한국동서발전(90명) 한국가스기술공사(88명)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65명) 근로복지공단(51명) 한국교통안전공단(47명) 한국도로공사(43명) 등이 올해 정원을 크게 늘렸다. 이 중 수출입은행 한국교통안전공단 한국국제협력단 한국자산관리공사 인천국제공항공사 등은 문재인 정부 때인 2022년보다 올해 정원이 더 늘었다. ‘군살’은 빼고 채용도 늘리라는 정부지난해엔 성과 압박으로 대폭 감원했지만 윤석열 정부 3년차에 들어가면서 구조조정 의지가 약해진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정치권 관계자는 “이행 실적을 제출했으니 구조조정 이슈는 일단 지나갔다고 보는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정부가 공공기관 ‘군살 빼기’를 추진하면서도 신규 채용은 대거 늘리라는 엇박자 행보를 보인 것도 영향을 끼쳤다. 지난 2월 최상목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공공기관 채용정보 박람회에서 “어려운 민간 취업 여건에서 공공기관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며 “올해 공공기관 신규 채용 인원을 전년보다 2000명 많은 2만4000명으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신규 채용을 확대하면 정원 감축이 어렵다는 지적이 당시에도 나왔지만 정부는 “공공기관 혁신은 장기간 공석이거나 채용 계획이 없는 정원 감축 위주로 진행돼 신규 채용 증대와 배치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한전, 남동발전 등 대부분 에너지공기업은 올해 신입사원 채용을 확대했다. 부채비율 634%의 만성 적자에 시달리는 한전은 올해 공채를 작년보다 두 배 많은 557명 뽑기로 하고 상반기에 260여 명을 채용했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