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인수합병(M&A) 시장의 최대 화제는 단연 고려아연이다. 이 회사 경영권을 서로 갖겠다며 MBK파트너스·영풍 연합군과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이 5조원 넘게 베팅했다. 거기에 MBK가 추가로 6000억원 정도를 레이즈(raise)했다. 국내 적대적 M&A 역사에 전례 없는 규모다.
그런데 이 싸움을 가만 보면 뭔가 이상하다. 참가자 모두 얻는 것보다는 잃을 게 많아 보인다. 그런데도 브레이크를 밟을 생각 없이 폭주하고 있다. 장형진 영풍그룹 회장은 고려아연 경영권을 뺏어 MBK파트너스에 넘겨주려고 온갖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자신이 얻는 이득은 거의 없는데도 말이다. 심지어 자신의 고려아연 지분도 시장 가격보다 낮게 MBK에 넘겨주기로 했다. 달아오른 '세기의 분쟁'“고려아연의 견실한 성장을 위한 결정”이라는 변명은 궁색하다. MBK는 중후장대 기업을 인수해 기업가치를 끌어올린 경험이 별로 없다. 장 회장이 MBK를 낙점한 진짜 이유는 ‘최 회장을 쓰러뜨릴 만한’ 실탄이 많기 때문이라고 봐야 합당하다.
최 회장의 대응 방식도 쉽게 납득가지 않는다. 그는 베인캐피탈을 우군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사실상 경영권을 내려놨다. 의결권을 공동 행사하고, 특정 사유가 생기면 베인캐피탈이 자기 지분을 가져다 팔 수 있도록 했다. 경영권 싸움에 이기기 위해 경영권을 내놓겠다니…. 게다가 배임, 시세 조종 논란까지 무릅쓰며 고금리로 돈을 끌어다가 베팅하고 있다. 지금까지 장 회장과 최 회장의 행보를 보면 의도는 동일하다. ‘내가 죽을지언정 너에게는 못 준다’는 것이다.
MBK의 행보도 뒷말이 많다. MBK의 고려아연 공개매수가는 현재 주당 83만원이다. 몸값을 17조1837억원으로 쳐주겠다는 의미다. 지난해 고려아연의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인 9798억원의 17배가 넘는다. 통상 사모펀드(PEF)들이 제조업 분야 기업을 인수할 때 가격이 EBITDA의 7~10배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이미 적정 가치를 훌쩍 넘었다. MBK는 최 회장과 협력 관계에 있는 다른 대기업과 척질지 모르는 부담도 감내해야 한다. 판돈은 대부분이 '남의 돈'무엇보다 김병주 MBK 회장은 이렇게 분란을 일으키며 딜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20여 년 가까이 ‘은밀하게’ 움직이던 그는 지난해부터 느닷없이 대기업들과 정면충돌 하고 있다. 자본시장 대통령으로서 “대기업의 지배구조를 뜯어고치겠다”는 소명 의식이라도 발동한 것일까. MBK는 이미 한국앤컴퍼니의 적대적 M&A를 추진하다가 쓴잔을 마셨다. 고려아연마저 놓치면 위상 추락이 불가피하다. 그만큼 MBK는 절박하다.
고려아연 분쟁은 합리적 경영 판단이 개입할 여지가 점점 사라지고 어느샌가 회장님들이 자존심을 건 ‘진흙탕’이 됐다. 이 와중에 여기에 걸린 판돈은 대부분이 남의 돈이다. 장 회장 측은 MBK의 자금을, 김 회장이 이끄는 MBK는 국내외 기관투자가들이 위탁한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최 회장 측은 회삿돈을 끌어다 쓰고 있다. 이대로면 분쟁이 끝난 뒤 고려아연 주가는 급락할 가능성이 높다. 기업 경쟁력 훼손도 불가피해 보인다. 남의 돈을 가지고 벌이는 회장님들의 자존심 싸움에 비철금속 세계 1위 기업이 산으로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