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산기평 연구비로 에어팟 산 연구원…5년간 부정집행만 89억원

입력 2024-10-10 17:08
수정 2024-10-10 19:29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기관인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산기평·KEIT)에서 지난 5년간 89억원에 달하는 연구비가 부정 집행된 것으로 나타났다. 매년 국정감사에서 꾸준히 연구비 횡령을 문제로 지적해 왔지만, 지난해 부정집행액은 5년 전 보다 높았다. 일부 연구 책임자는 학생 연구원의 인건비를 빼앗아 고가의 전자 제품을 사는 등 국가 R&D 예산이 황당하게 쓰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8일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실이 산기평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산기평에서 연구비가 부정집행된 금액은 최근 5년간 평균 17억8000만원이었다. 5년 동안 적발된 약 89억원의 부정 집행액 중 환수된 금액은 60억원(68%)에 그쳤다.



산기평에서 집행된 연구비가 엉뚱한 곳에 쓰인 사례도 다수 적발됐다. 지난해 12월 산기평 자체 감사에 따르면 A 대기업은 산기평으로부터 연구 과제를 따낸 뒤 영업·마케팅팀 평사원 14명을 연구원인 것처럼 허위 등록했다. 이를 통해 3년간 5억 2200만원에 달하는 인건비와 연구 수당을 빼돌린 것으로 조사됐다.

학생 연구원의 인건비를 빼앗아 고가의 전자 제품을 산 사례도 있었다. 대학 연구 책임자 B씨는 2년에 걸쳐 학생 4명의 인건비 1500여만원을 빼앗아 LG그램(노트북), 에어팟프로(이어폰) 등을 개인용으로 구매했다.

이밖에 C기업은 연구 재료비를 받은 뒤 대표자가 소유한 다른 업체 비용으로 8800만원을 썼고, D기업은 연구 개발비를 타서 회사 사무실을 리모델링하는데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산기평의 연구비 부정 집행 문제는 매년 국감에서 지적돼 왔다. 그러나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른 후에도 부정 집행 규모는 오히려 더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2019년 19억4400만원이었던 부정집행액은 2020년 18억5100만원으로 소폭 줄었다가, 지난해에는 19억 6400만원으로 늘었다.

환수 금액도 줄었다. 2019년에는 19억4400만원 중 14억3100만원을 환수했으나, 지난해에는 19억6400만원 중 11억6900만원을 돌려 받았다. 다만 산기평은 연구비 부당 집행 방지를 위해 현장 조사를 강화하고, 연구비 상시 점검을 분기 단위에서 월 단위로 강화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나경원 의원은 "연구비 부정집행 문제는 연구개발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위해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과제"라며 "현장 점검 강화와 함께 연구비 집행의 투명성 강화를 위한 제도적 보완책을 마련하고, 연구자들의 윤리 의식 고취를 위한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이 과정에서 연구진의 창의성과 연구 환경이 훼손되지 않도록 균형 잡힌 시스템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정소람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