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정수기가 사계절 가전으로 자리 잡으며 정수기업계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각 가정에 설치된 기존 제품의 교체 수요를 이끌 수 있는 데다 제품 단가가 높은 ‘효자 품목’으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폭염 장기화 등 이상 기후로 인한 소비자의 트렌드 변화와 맞물려 얼음정수기 판매는 꾸준히 늘어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마트에 따르면 9월 23일~10월 1일 얼음정수기 매출은 한 달 전(8월 26일~9월 3일) 대비 133.3% 증가했다. 최고기온이 35도를 넘나들던 무더위 때보다 오히려 더 많이 팔리며 ‘얼음정수기는 여름 가전’이란 공식을 깼다는 반응이 업계에서 나온다. “디자인 베끼지마” 날 선 소송전
얼음정수기의 인기는 팬데믹 기간 홈카페 열풍이 불며 가정 내 얼음 수요가 늘어난 데다 사계절 사용할 수 있도록 온수 기능을 강화한 게 한몫했다. 한겨울에는 제빙 기능을 적게 이용하는 대신 온수 기능을 이용하도록 해 계절에 상관없이 제품 전반의 만족도를 높이는 전략이다.
시장이 커지자 주도권을 쥐려는 업체들의 기싸움이 한창이다. 최근 코웨이가 교원웰스에 소송을 건 사례가 대표적이다. 코웨이는 지난달 23일 교원웰스에 얼음정수기 판매 금지 및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코웨이가 가장 크게 문제 삼은 건 디자인 유사성이다. 교원웰스 아이스원 얼음정수기 디자인 가운데 상·하부 직육면체 2개가 결합한 형태, 모서리의 길이, 전면부 버튼과 화면 배치 등 전체적인 요소가 코웨이 아이콘 얼음정수기와 비슷하다는 주장이다.
업계에선 코웨이가 승소보다는 ‘바이럴 마케팅’ 효과를 노리고 소송을 제기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교원웰스가 8월 12일 특허청에 아이스원 얼음정수기 디자인을 최종 등록해 디자인권을 확보한 만큼 승소 가능성은 작다는 이유에서다.
코웨이는 2013년 동양매직(현 SK매직)을 상대로 디자인권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가 패소한 이력이 있다. 당시 코웨이는 동양매직의 ‘나노미니 정수기’와 코웨이 ‘한 뼘 정수기’ 중앙부가 ‘ㄷ(디귿)자로 파인 디자인이 비슷하다’며 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은 코웨이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기업도 후발주자로 시장 진입
얼음정수기를 둘러싼 신경전은 단가가 높은 제품의 시장 지배력을 높이려는 각 정수기업체의 전략과 맞닿아 있다. 일반 정수기 시장의 성장이 둔화한 상황에서 얼음정수기가 새로운 성장 돌파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얼음정수기는 정수기 제품군 가운데 가장 비싼 품목에 해당한다. 코웨이 아이콘 얼음정수기는 217만원으로 같은 회사 직수 미니 정수기(71만6400원)에 비해 세 배 비싸다. 월 렌털료도 각각 2만1450원, 1만5900원으로 얼음정수기가 34.9% 높다. 얼음 제빙·보관을 비롯해 온수 등 다양한 기능이 추가된 만큼 가격이 더 비싸다는 게 업체의 설명이다.
최근엔 대기업까지 뛰어들어 마케팅 경쟁이 더 심화했다. LG전자는 지난 8월 대기업 중 처음으로 얼음 정수기를 선보였다. 정수기 제빙부에서 나온 얼음을 냉동 보관한다는 점을 내세워 ‘얼음을 냉동 보관하는 국내 첫 정수기’라고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타사 제품은 상온 얼음칸에서 보관해 얼음이 쉽게 녹고 잘 깨진다는 점을 겨냥했다.
업계 관계자는 “LG전자는 후발주자지만 냉장고 세탁기 등 다른 가전과 함께 구매할 경우 가격 경쟁력으로 선두주자가 될 가능성이 높아 업계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10월인데도 주요 업체가 얼음정수기 광고캠페인과 할인 마케팅을 하는 것만 보더라도 경쟁이 불붙은 시장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고 했다.
이미경 기자 capit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