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류업 ETF 출시 서두르는 거래소에 '볼멘소리' 나오는 이유 [돈앤톡]

입력 2024-10-09 11:33
수정 2024-10-09 11:33
한국거래소가 '코리아 밸류업 지수' 추종 상장지수펀드(ETF) 출시를 서두르는 가운데 자산운용업계에선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거래소가 다음달 열리는 자본시장 행사에 발맞춰 밸류업 ETF를 홍보하려는 취지엔 공감하지만, 상품 준비 일정을 지나치게 촉박하게 잡아 업무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거래소는 운용사들과 다음달 4일 밸류업 지수 연계 ETF를 출시하기로 협의를 마친 상태입니다. 거래소가 이날 여의도 콘래드 호텔에서 개최하는 '한국 자본시장 컨퍼런스'에서 국내외 기관투자자 대상으로 밸류업 ETF를 소개하기 위함입니다. 거래소는 행사에서 최근 공개한 밸류업 지수와 이를 추종하는 상장지수상품(ETP) 활용 방안을 설명할 계획입니다.

정부가 올해 밸류업 프로그램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만큼, 거래소도 '관제펀드'인 밸류업 ETF 흥행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의 시각입니다. 밸류업 지수에 몰릴 대규모 패시브(지수 추종) 자금을 유인책으로 기업들의 가치 제고를 유도해야 하는 과제를 떠안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작 밸류업 ETF를 만들어야 하는 운용업계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거래소가 밸류업 ETF를 출시하는 데 필요한 일정을 지나치게 타이트하게 잡아 운영하고 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일반적으로 운용사는 내부 의사결정을 통해 ETF 출시를 결정하고 거래소에 상장을 위한 예비 심사를 신청합니다. 이후 금융감독원에 펀드·기타 자료 제출, 거래소 본심사, 증권신고서 효력 발생, 펀드 설정 등 ETF 상장까지 일련의 과정을 거치는 데만 2~3개월가량이 소요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거래소가 이 모든 과정을 한 달 만에 마무리짓도록 하자 업계의 불만이 커졌다는 것입니다.

물론 지수가 미리 개발된 상태라면 1~2개월 안에도 상품화가 가능하다는 설명이 나옵니다. 하지만 밸류업 지수가 공식적으로 산출되기 시작한 날짜는 지난달 30일입니다.

운용사들은 이달 4일 상장을 위한 예비 심사 관련 초안만 제출한 상태입니다. 지수 산출 이후 5영업일이 지나야 공식 접수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밸류업 ETF를 준비하려면 백테스팅(과거 데이터 적용 수익성 평가)을 해봐야 하는데, 관련 수치가 지난 2일 나왔다"며 "연휴를 감안해 사실상 3~4거래일 만에 하라는 건데, 평소 준비 기간의 4분의 1 수준"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거래소의 승인도 통상 15~17일 정도 소요되는데, 이를 하루 만에 본다고 한다"며 "(통상) 운용사의 ETF 출시 준비에 서너달이 걸리는데 한 달 안에 하라는 것은 무리"라고 하소연했습니다.

일각에서는 거래소의 이 같은 움직임이 어느 정도 예상된 수순이란 평가도 있습니다. 거래소가 내달 4일 열리는 행사를 위해 6개월 전에는 호텔을 예약했을 것이고, 이때부터 운용사들과 어느 정도 교감을 하기 시작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또 운용사들을 대상으로 밸류업 지수 발표 한 달 전에 사전 수요 조사를 마쳤고, 미리 진행할 수 있는 건 준비해달라는 당부도 있었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설명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펀드매니저의 운용 전략이 주효한 액티브 ETF를 준비하고 있는 운용사들은 촉박한 일정에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단순 지수를 추종하는 패시브와 달리 ETF 운용 전략을 수립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운용업계 관계자는 "밸류업 ETF가 관제펀드인 만큼, 운용사 입장에서는 (거래소가) 하라는 대로 할 수밖에 없다"며 "정해준 일정에 맞춰 제반 업무를 수행하는데 평소보다 타이트하게 진행되는 측면이 있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습니다.

일각에선 거래소가 최근 밸류업 지수 종목 선정에 대한 '고무줄 기준'으로 한바탕 홍역을 치른 만큼, 밸류업 ETF 흥행에 보다 신경을 쓸 수밖에 없을 것이란 관측도 나옵니다. 다만 밸류업 ETF를 통한 단기 수급 개선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주주가치 제고에 앞장서는 기업들을 늘릴 수 있는 유인책이 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분위기입니다. 이를 위해 당장의 상품 홍보보다 현재 논란이 되는 종목 선정에 대한 기준을 명확하게 정립,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는 게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내부적으로는 종목 선정 논란이 일면서 지수 자체의 신뢰성이 훼손됐다고 보고 있다"며 "현재 제기되고 있는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지 보여주는 게 중요한 상황인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고정삼 한경닷컴 기자 js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