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지역 분쟁이 격화하면서 유가 강세에 베팅하는 트레이더 비중이 2년 반 만에 최고 수준으로 높아졌다. 이스라엘의 이란에 대한 보복 공격이 임박한 가운데 중동 각국의 석유 수출에 차질이 생길 우려가 커지면서다.
6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미국 뉴욕 파생상품 거래시장에서 서부텍사스원유(WTI) 2개월 선물에 대한 하락 베팅(풋옵션) 대비 상승 베팅(콜옵션) 비율이 2022년 3월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2022년 3월 당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격 침공하면서 러시아산 원유 공급 차질이 현실화했다. 지난 3일에도 전체 상승 베팅 옵션 거래량은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지난주 중동 원유 공급 차질 우려가 커지고 기름값이 급등했기 때문이다. 앞서 유가 하락에 베팅한 투자자들의 쇼트커버링 수요까지 몰리면서 WTI 선물 가격은 지난주 11% 이상 오르는 등 1년여 만에 최대 상승 폭을 기록했다. WTI 가격은 이번주 들어서도 상승세를 지속하며 배럴당 75달러를 넘어섰다.
헤지펀드와 원자재 시장 관계자들은 지난달 중순까지 유가가 하락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2주 전까진 풋옵션 거래량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중국과 유럽 주요국 경제 성장이 둔화하면서 석유 수요가 위축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기 때문이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산유국 카르텔인 OPEC+ 회원국들이 공급을 늘릴 준비를 하고 있어 원유 선물 가격은 배럴당 70달러까지 하락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돌연 레바논 헤즈볼라로 총구를 돌리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이스라엘이 베이루트를 맹폭해 헤즈볼라의 수장 하산 나스랄라와 이란의 아바스 닐포루샨 혁명수비대 작전부사령관을 잇따라 제거했고, 이란이 보복으로 지난 1일 이스라엘에 180여 발의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유가가 급등하기 시작하자 투자자들은 줄지어 옵션 물량 확보에 나섰다. 금융회사 옵티버의 아누라그 마헤시와리 원유옵션 부문장은 “유가의 내재 변동성이 작년 10월의 최고치를 넘어섰다”며 “변동성 확대가 잠재적으로 석유 공급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투자자들이 합리적인 선택을 한 결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부 트레이더는 브렌트유와 WTI가 12월 배럴당 100달러 이상으로 오르는 데 대비한 ‘100달러 콜옵션’까지 사들이고 있다. 영국 금융서비스 기업 TP ICAP그룹의 스콧 셸턴 애널리스트는 “100달러 콜은 쓸모없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면서도 만일에 대비한 보험으로 사들이고 있다”고 전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