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국제 투자분쟁 대비가 시급하다

입력 2024-10-06 17:46
수정 2024-10-07 00:11
투자자-국가 분쟁해결(ISDS·Investor-State Dispute Settlement) 제도에 세간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지난 4월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 중재판정부는 미국계 헤지펀드 메이슨캐피털이 제소한 사건에서 한국 정부가 약 438억원과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그보다 앞서 작년 6월 중재재판부는 한국 정부가 미국계 사모펀드 엘리엇에 약 1300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론스타와 우리 정부 간 판정 취소 소송도 진행 중이다. 국민은 막대한 혈세 유출 가능성을 우려하며 정부 대응을 주시하고 있다.

ISDS는 투자자 보호 의무에 위반이 발생한 경우 투자자가 투자유치국을 상대로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 유엔국제무역법위원회(UNCITRAL)나 국제상업회의소(ICC)에 중재를 신청해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제도다. 투자유치국이 체결한 투자협정이나 자유무역협정(FTA)에 포함된 투자자 보호 조항이 근거다.

ISDS는 투자유치국의 공공정책과 주권을 제약하기 때문에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고 있다. 작년 미국 민주당 의원들이 “미국과 외국 정부의 주권을 약화시킨다”는 등의 이유로 FTA에서 ISDS 폐기를 촉구하는 서한을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무역 대표에게 보낸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런데도 ISDS는 안정적 투자 환경 구축에 기여하는 효율적인 메커니즘으로 인식돼 보편적 제도로 정착하는 추세다. ISDS는 1959년 독일·파키스탄 간 무역협정에 도입된 이후 세계 약 3000개의 무역·투자협정에 포함됐다. 제소 건수는 1990년대부터 급증해 현재 약 1300건에 달한다. 주로 미국 네덜란드 영국 독일 등 선진국 기업이 제소하고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멕시코 이집트 등 개발도상국이 피소됐다. 전체 소송의 70~75%가 개도국을, 25~30%가 선진국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한국은 피소 10건과 제소 8건 등 총 18건의 소송을 진행했거나 진행 중이다. 외국 자본 비중이 큰 한국 자본시장 특성상 피소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며, 우리 기업의 해외 진출이 늘어나면서 제소 건수도 증가할 것이다. 아울러 미·중 패권 경쟁 격화와 우크라이나전쟁, 가자전쟁 등 지정학적 리스크가 커지고 자국 우선주의가 확산함에 따라 ISDS 소송은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양날의 검’인 ISDS 대응 및 활용에 치밀한 대비가 필요한 이유다.

무엇보다 헤지펀드의 소송 남발을 막기 위해 우리의 제도, 정책과 관행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고쳐야 한다. 공공정책과 규제를 합리적으로 추진하고 정책 변경 시 투자자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기존 투자협정이나 FTA에 포함된 ISDS를 국익에 맞게 개정해 나가야 한다. 각국은 ISDS 폐기, 개정이나 제도 개선을 다각도로 모색 중이다. 우리도 개정된 한·미 FTA와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상의 ISDS 규정을 참고해 나라별로 맞춤형 개선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국제사회의 ISDS 개혁 논의에도 적극 참여해야 한다. UNCITRAL은 2017년부터 개혁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또한 유럽연합은 주권, 투명성, 일관성과 공정성 논란을 고려해 ISDS를 상설재판소로 대체하고자 노력 중이다. 유럽연합이 캐나다, 베트남, 싱가포르와 체결한 무역협정에 상설재판소와 상소 제도가 포함돼 있는데 이에 대한 관찰과 대비가 필요하다. 전문가를 양성해 체계적 대응 역량을 키우고 해외 투자 기업에 대한 교육과 법률 자문 등 지원 체계도 강화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