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외국인이 한국 증시 불안하게 보는 까닭 [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입력 2024-10-06 17:20
수정 2024-10-06 17:21
세계 경제가 흔들릴 때마다 질서를 잡아줘야 할 중심축 국가의 통치권자들이 수난을 겪고 있다. 선진 7개국(G7) 중 영국의 리시 수낵 총리와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교체됐다. 조만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물러난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올라프 슐츠 독일 총리의 위상은 종전만 못하다. 사회주의 국가의 양대 축(S2)인 중국의 시진핑 주석과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도 경기 부진과 장기간 전쟁에 따른 국력 소모로 흔들리고 있다.

예상과 달리 장기화하는 전쟁도 G7과 S2 통수권자들의 위상을 추락시키는 대목이다. 러시아가 ‘3일 전쟁’으로 구상한 우크라이나 침공은 내년 2월이면 3년이 된다. 길어도 1주일 안에 끝날 것이라고 본 이스라엘·하마스 전쟁도 1년이 됐다. 디지털 시대에 베트남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중심축 국가의 역할 부재에 따른 각자도생 시대에 각국이 자국의 경제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다양한 완충장치를 마련해 놓는 것이 관건이다. 통화와 재정정책은 ‘긴축’보다 ‘부양’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 클린화 작업과 구조조정을 통해 경제시스템의 복원력(resilence)을 키우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신흥국일수록 외화를 쌓아놓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과제다.


올 들어 각국 중앙은행은 피벗을 추진하고 있다. 연초부터 신흥국 중앙은행이 금리를 내렸다. ‘왝더독’(wag the dog·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현상)이라고 부를 만큼 빠른 행보였다. 지난 3월부터 비(非)유로 선진국 중앙은행이 가세했고, 6월부터는 유럽중앙은행(ECB), 영국 중앙은행 등의 금리 인하가 이어졌다.

피벗 행렬의 정점은 미국 중앙은행(Fed)이 지난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금리를 내린 일이다. 지난 2분기 성장률이 3%에 달하고 물가도 목표치를 여전히 웃도는데 굳이 빅컷(0.5%포인트)을 단행할 필요가 있었느냐는 논쟁이 지속되고 있다. 하지만 날로 복잡해지는 중동 정세 등을 고려하면 오랜만에 선제적 조치로 평가된다.

최악의 상황에 몰린 중국은 부양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모든 정책금리를 동시다발적으로 내렸다. 금융위기 당시 벤 버냉키 전 Fed 의장이 추진한 ‘헬리콥터 벤’식 비상 대책에 비견될 정도의 대규모 유동성 살포 계획도 발표했다. “효과가 있겠느냐”는 논쟁이 일고 있지만 일단 상하이종합지수가 오랜만에 20% 넘게 오르는 등 시장은 반기는 분위기다.

마이너스 금리와 과도한 엔저를 정상화해야 한다는 지론을 펴던 이시바 시게루 일본 신임 총리도 자신의 신념을 굽히고 오히려 경기 부양책을 주문했다. 중동 정세 등에 따라 일본 경제와 증시를 안정시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이시바 쇼크’로 흔들린 시장은 ‘이시바 서프라이즈’ 기대에 뛰었다. 엔·달러 환율이 141엔에서 148엔으로, 닛케이지수는 1000포인트 넘게 올랐다.

각국은 감세와 재정지출을 강화하는 등 재정정책도 부양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증세를 추진한 영국은 국민 반발이 거세자 곧바로 감세로 돌아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선 후보의 대규모 감세 공약에 맞서 초부유층 증세를 내세운 카멀라 해리스 후보도 대선이 다가올수록 표심이 흔들리자 감세 공약을 내놓고 있다. 경제시스템 복원력을 키우는 과제도 지속해서 추진하고 있다.

우리는 어떤가. 한마디로 경제와 증시는 “외환위기 당시보다 더 어렵다”는 볼멘소리가 공공연하게 들릴 정도로 녹록지 않다. 2분기 성장률은 1분기 성장률이 이례적으로 높게 나온 것에 따른 기저 효과가 있긴 하지만 -0.2%로 역성장한 점이 우려스럽다. 주가 상승률도 전쟁 등과 같은 특수 환경에 놓인 국가를 제외하고는 최하위권이다.

더 우려되는 것은 우리 경제와 증시를 지탱해 온 수출이 날로 거세지는 보호주의 확대와 원·달러 환율 하락 등으로 불투명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높은 에너지 수급상 이스라엘과 이란 간 갈등이 커지면 충격이 예상된다. 사정이 이런데 다른 국가처럼 선제적 완충능력을 얼마나 확보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통화정책은 피벗이 가장 늦어지고 있고 재정지출은 ‘야대여소(野大與小)’ 입법 구조로 사실상 정지됐다. 감세는 고사하고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등과 같은 비정상적 증세를 정상화하는 노력도 쉽지 않다. 기득권과 결부된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것은 더 요원하다. 오히려 뇌물, 금융사고, 낙하산 인사 등과 같은 구조조정에 역행하는 사건이 연일 터져 나오고 있다.

최근 들어 외국인이 정치권을 중심으로 흘러나오는 10월과 11월 위기설에 주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답은 나와 있다. 통화정책은 피벗을 단행하고 재정정책은 경직성 항목을 줄여 투자성 항목으로 조정하는 ‘페이-고(pay)’를 추진해야 한다. 우리 경제에 최대 아킬레스건인 정치권은 ‘프로 보노 퍼블릭코’(공익을 위하여) 정신을 발휘해 금투세 폐지 등과 같은 현안을 서둘러 마무리해 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