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 '자폭 경쟁' 그만"…금융당국 제동 걸었다

입력 2024-10-03 17:56
수정 2024-10-04 01:51
금융당국이 보험사 간 ‘자폭 경쟁’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보험사가 새 상품을 내놓을 때 최대로 설정할 수 있는 보장금액 한도를 당국에 보고하도록 했다. 독감 보험금으로 최대 100만원을 지급하는 등 건전성이 훼손될 만큼 과당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말 열린 ‘제3차 보험개혁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의 보험산업 건전 경쟁 확립 방안을 마련했다고 발표했다. 금융당국은 연말까지 보장금액 한도 산정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보험사가 상품을 신고할 때 이를 제대로 적용했는지 심사할 계획이다.

보험사는 보장금액 한도를 정할 때 치료비, 간병비 등 실제 비용만 고려할 수 있다. 보험업계에서는 2015년 도입한 ‘보험상품 자율화’ 정책이 사실상 폐지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금융당국 "보장금액 한도 규제"…업계 "붕어빵 보험 판칠 것"
의료비 보장은 '실손 보장분' 고려…보험상품 개발시 외부검증도 강화 금융당국은 2015년부터 보험사들이 다양한 상품을 출시할 수 있도록 보험상품 자율화를 추진했다. 당국에 신고해야 하는 상품 종류를 줄이고, 가격을 자유롭게 설정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부작용이 너무 크다고 판단했다. 일부 보험사들이 독감보험, 운전자보험, 간호·간병보험 등 특정 상품의 보장 한도를 돌아가며 과도하게 높이는 ‘떴다방’식 영업을 벌이면서다.

앞으로 금융당국은 보험사들이 새로운 상품을 신고할 때 보장금액 한도 가이드라인을 제대로 적용했는지 심사할 계획이다. 현행 규정에 따르면 보험사들은 최초 보험상품을 출시할 때 금융당국에 신고해야 한다. 향후 보험사들은 상품 신고 때 가이드라인에 따라 실제 발생할 수 있는 평균 비용 등을 고려해 보장 한도를 설정해야 한다. 의료비 보장담보(입·통원 등)는 실손보험 보장분을 고려해야 하고, 한도를 설정할 때 고객이 이미 가입한 다른 보험계약까지 감안해야 한다.

신고 의무가 없는 후속 상품은 보험사 내부 상품위원회가 면밀히 검토하도록 강제하기로 했다. 상품위원회에 상품담당 임원 외에도 위험관리책임자(CRO), 준법감시인, 금융소비자보호 담당 임원(CCO) 등이 참여하도록 의무화한다. 아울러 상품 기획·출시·사후관리 등 모든 과정을 총괄해야 하고 심의·의결 내용은 대표이사에게 보고해야 한다. 의사록 등 회의 자료를 10년 이상 보관하게 하는 등 책임도 강화한다.

보험사가 상품 개발 과정에서 보험료 등을 설정하기 위해 계리법인 등으로부터 받아야 하는 외부 검증의 실효성도 높인다. 검증 항목별 구체적 절차 및 표준양식을 마련하고, 해지율 등 그동안 이슈가 된 수치를 검증 항목으로 신설하기로 했다. 계리법인은 업무 실적, 전체 인력 수 등 핵심 지표를 계리사회 홈페이지 등에 공시해야 한다.

보험설계사 등 판매채널 규제도 강화한다. 선지급 방식의 과도한 수수료와 시책 지급으로 인한 ‘허위 차익거래’를 방지하기 위해 차익거래 금지 기간을 현행 1년에서 보험계약 전 기간으로 늘리기로 했다. 보험사의 내부 통제 수준도 대폭 높인다. 고위험 업무 담당 직원은 5년 이상 연속 근무를 금지하고, 금융사고 위험이 높은 거래는 복수의 인력·부서가 참여하도록 강제할 계획이다.

보험업계에선 “결국 보장 한도가 비슷한 ‘붕어빵 상품’만 시장에 즐비하게 나올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한 손해보험사 관계자는 “인지도가 낮은 소형 보험사가 고객에게 다가가기 위해선 보험금을 높이는 방법밖에 없다”며 “주력 상품의 보장 한도가 평준화된다면 결국 대형 보험사의 점유율만 높아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금융당국은 보완책으로 ‘한시적 특허권’인 배타적 사용권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보호기간을 현행 3~12개월에서 6~18개월로 늘릴 계획이다. 다만 배타적 사용권을 인정받을 수 있는 상품이 많지 않아 실효성이 크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최한종 기자 onebe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