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운동. 1970년대 대한민국 근대화를 이끈 동력이다. 이젠 전 세계 개발도상국이 배우고 있다. 내세울 만한 정책 한류 상품이다. 우리 정부는 21개 국가에 94개 시범 마을을 조성해 자립을 뒷받침했다. 이 새마을운동의 핵심 엔진이 새마을금고다. 자산 290조원, 수신 260조원, 대출 197조원이다. 웬만한 시중은행 못지않게 커졌다. 그런데 개발도상국이 새마을금고도 본받고 싶을지 의문이 든다.
설립 60년 된 새마을금고가 위기다. 작년 7월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 사태에 이어 올해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부실이 큰 골칫거리다. 올 상반기 순손실 1조2019억원 대부분이 PF 대출 때문이다. 고위험 PF 대출 분야에 전문성이 부족한데도 용감하게 뛰어든 것이다. 지역사회 서민금융기관인 본연의 책무는 뒷전으로 밀려난 모습이다. 이 결과 1282개 새마을금고 중 65%가 적자다. 연체율과 고정이하 여신 비율도 꺾일 줄 모른다.
금융기관인 새마을금고를 행정안전부가 감독하는 행태에 의혹의 시선이 쏟아진 계기는 작년 새마을금고 뱅크런 사태다. 관리·감독 권한을 금융위원회로 넘기라는 목소리가 드셌다. 행안부와 금융위는 부랴부랴 ‘새마을금고 검사 협의체’를 구성했다. 협의체 구성이 사고 발생 방지에 효과가 있길 바란다. 하지만 여전히 뭔가 개운치 않다. 현행 제도와 감독 관행이 개별 새마을금고의 ‘도덕적 해이’를 조장하는 것은 아닐까. 누군가 뒷배를 봐주면 고위험 투자를 무모하게 늘리는 행태가 나오게 된다. 손해는 뒷배가 부담할 몫이니까. 이익은 사유화하고 손실은 사회화하는 것이다.
부실금고 정리에 활용 중인 합병이 한 예다. 합병 금고는 해산 금고의 권리·의무를 포괄 승계한다. 무엇보다 고객과 회원의 예·적금 및 출자금이 전액 보호된다. 발생한 부실은 새마을금고중앙회가 떠안는다. 개별 금고는 이런 사실을 꿰뚫고 있다. 비과세 혜택으로 손쉽게 받은 예금으로 고위험 대출을 마구 늘려도 걱정이 없는 이유다. 도덕적 해이의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것이다.
한국은행이 새마을금고중앙회를 공개시장운영 대상 기관에 추가한 것도 도덕적 해이를 부추길 우려가 있다. “유사시 유동성을 공급할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도 새마을금고 뱅크런 가능성을 크게 낮출 것”이라며 칭찬 일색이다. 하지만 최종 대부자(last resort) 한은이 최초 대부자(first resort)로 나선 어색한 모양새다. ‘든든한 방패막이’는 도덕적 해이를 수반한다. 새마을금고에 기대하지 않던 ‘큰 뒷배’가 구세주처럼 나타났기 때문이다. 지역구 표를 의식한 정치권의 소극적 태도도 도덕적 해이를 키울 소지가 있다. 개별 금고 이사장은 지역에서 정치적 영향력이 상당한 유지다. 지역구 의원들이 새마을금고의 뒷배가 될 우려가 큰 이유다.
돌이켜 보면 새마을금고는 정치적 부산물이다. 1963년 재건국민운동본부 교육을 마친 훈련생들이 마을금고를 조직했다. 법적 근거가 취약한 자생조직이었다. 그러던 중 1972년 8월 정부가 전국 농어촌 마을금고 사업을 법률로 지원했다. 전경환 씨가 새마을운동협회를 이끌던 1982년엔 새마을금고법을 만들어 금융감독당국과 거리를 뒀다. 40년이 지난 지금도 그런 시스템이 계속돼야 하나.
“내일 튼튼한 금융기관 출현을 막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오늘 부실 금융기관 하나를 살리는 것이다.” 영국 금융전문가 헨리 손턴(1760~1815)의 경고다. 19세기 초 영국은 새마을금고처럼 단일 점포 형태의 영세 지방은행들이 금융시스템 주축이었다. 새마을금고 문제를 유야무야 넘기는 태도가 전체 금융권 성장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의미로 읽힌다.
쓰레기를 치우기보다 번듯한 카펫 밑에 감추는 것이 합병 방식이다. 그 대신 청·파산 방식을 도입하면 어떤가. 청·파산 과정에서 조합 운영에 흠결이 드러나면 기존 출자자는 받은 배당금을 몽땅 반납해야 한다. 개별 금고의 도덕적 해이에 경고가 되지 않을까.
은행·보험·증권의 이질적 업권을 묶어 단칼에 통합감독기구를 출범시킨 우리나라 국회다. 그런데 새마을금고 감독권 문제 하나로 우왕좌왕할 때인가. 정부 탓만 할 건 아니다. 국회가 나서서 풀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