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 형제의 촌스러운 낙서, 담벼락 너머 세상과 소통하다

입력 2024-10-03 19:10
수정 2024-10-04 02:12

노랗고 커다란 얼굴, 통통한 몸통에 가는 팔다리. 일명 거미 체형인 주인공은 현란한 형광색 꽃바지를 입고 있다. 이 건물 또 저 건물에서 툭 튀어나오는데(튀어나오게 그려졌는데), 장난기가 가득하다. 약간 어설퍼 보이기도 하는 이 캐릭터는 최근 미술계가 주목하고 있는 그라피티 아티스트 듀오, 오스제미오스(OSEGMEOS)의 작품이다. 50주년 맞이한 허시혼, 그라피티를 초대하다오스제미오스는 쌍둥이 형제 구스타보 판돌포(1974)와 오타비오 판돌포(1974)의 아티스트 그룹이다. 브라질 상파울루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오스제미오스라는 포르투갈어로 ‘쌍둥이’라는 뜻. 2020년 서울 이태원의 현대카드 스토리지에서 한국 첫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올해로 50주년을 맞이한 허시혼미술관은 이를 기념하며 오스제미오스의 대규모 회고전을 9월 20일부터 내년 8월 3일까지 개최한다. 컬렉션전을 제외하면 사실상 허시혼미술관이 50주년을 기념하며 선택한 작가인 셈인데, 왜 하필 그라피티 아티스트 출신의 브라질 작가를 초대했을까. 미술관 측은 “근현대미술관으로서 우리의 가장 중요한 임무 중 하나는 예술가들이 시공간을 넘어 다른 예술가들에게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현대미술이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미술사의 흐름 속에 있으며, 동시대와 호흡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뜻이죠. 오는 29일 시작하는 ‘바스키아 x 뱅크시’전도 같은 맥락이다.

하위문화로 분류되는 그라피티가 미술관에 제대로 소개되기까지는 이에 영향을 받은 수많은 작가가 있다. 1980년대 뉴욕을 흔들었던 장미셸 바스키아가 그렇고, 지금은 작품 하나당 가격이 수백억원을 호가하는 사이 트웜블리도 대표적이다. 오스제미오스는 야외 그라피티로 그 커리어를 시작했고 이후 캔버스, 보드에 페인팅, 이제는 조각과 설치로도 그 작업을 확장하고 있다. 미술관에서는 오스제미오스가 “그들의 시각언어를 정립하기 시작했을 때 배리 맥기(1966~), 돈디 화이트(1961~1998)의 영향을 받았다”며 “이들 그라피티 아티스트의 계보를 잇는다고 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이 작가들은 제도권 미술관에선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으나, 중요한 글로벌 예술 움직임(art movement)을 대표한다”고 강조했다. 그라피티, 무엇이 매력일까?도대체 오스제미오스 그라피티의 무엇이 미국을 대표하는 공립미술관을 매료시킨 것일까. 전시를 보면 그 궁금증이 어느 정도는 해소된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포인트는 ‘촌스러움’. 캐릭터의 생김새부터 그들이 하는 행동, 액세서리 모든 것이 정말 촌스럽기 그지없다. 그런데 이 촌스러움이 ‘경험’에서 출발한 것이라는 게 헤어 나올 수 없는 함정이다. 이미 다 겪어봤던 그 시절의 촌스러움이라서다. 마치 ‘응답하라 19**’ 시리즈에서 그 시절을 대표하는 디테일 강한 아이템들에 빠져드는 것처럼 말이다.

배불뚝이 TV와 어깨에 메고 다니기도 버거울 정도로 큰 카세트, CD 플레이어, 그리고 힙합과 만화영화 같은 대중문화는 아이러니하게도 작가들이 성장한 브라질에만 있던 것이 아니었다. 약간의 시차는 있지만 유럽부터 아시아까지,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전 세계 10대들이 열광한 문화였다. 여기에서 두 번째 매력이 나온다. 바로 ‘공감대’다. 하위문화를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았든, 시대를 풍미한 문화이기에 작가들이 그려내는 (가상의) 세계가 낯설지 않다. 어릴 때는 수백 장에 걸친 만화를 그리고, 조금 커서는 길거리에서 힙합을 추며 이 문화에 푹 빠졌던 형제 작가의 모습에서 관객은 자신이 아는 누군가를 떠올릴 수도 있겠다.

마지막 매력은 ‘사회와의 소통’이다. 커뮤니티와의 연결성이라고 해도 좋겠다. 그라피티 아티스트로 출발한 이들은 상파울루시의 이곳저곳을 캔버스 삼아 작업했다. 그중에는 굉장히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은 것들도 있었다. 딱히 정치적 지향성을 가지고 움직이는 작가들이 아닌데도 말이다. 기자간담회에서 이들은 “길거리에서 생활하는 이들에겐 이 다리 밑이, 담벼락이 집이다. 그것을 기록하고 싶었고 놓치고 싶지 않았다. 더불어 당시 시장의 정책이 마음에 들지 않아 메시지도 남겼다”고 했다. 이제 이 작업은 사진으로만 남아 있다. 누군가가 그 위에 또 그리고 그려 사라져 버린 것이다. 형제가 완성한 이상하고 아름다운 세계관
전시에 나온 작품은 약 1000점에 가깝다. 그림을 막 그리기 시작한 초등학생 시절 공책에 그린 만화부터 이들 캐릭터가 살아있는 벽화, 유화, 조각, 사진, 음악, 설치 작업까지 허시혼미술관 한 층을 가득 채운다. 잘 살펴보면 어릴 적 구상한 세계가 점점 진화하며 형태를 갖춤을 알 수 있는데, 작가들이 ‘트리트레즈(Tritrez)’라고 부르는 가상 세계가 구현된 신전에서 정점을 이룬다.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가장 편안한 공간인 트리트레즈는 실제로 초등학교 때부터 첫 발상이 시작됐다고.

수십 년간 아이디어를 놓지 않고 계속 발전시켜 이제는 뱅크시, JR과 같은 글로벌 아티스트와 협업할 정도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엔 바로 엄마인 레다 칸치우카이티스 판돌포가 있었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주구장창 그림만 그려대는 쌍둥이 아들에게 속을 썩였을 법도 한데, 오히려 그 반대였다. 본인도 작가였던 엄마는 아들들이 자신이 하고 싶은 예술 세계를 펼쳐갈 수 있도록 적극 지원했다. 집 벽에다 마음껏 그림을 그리라고 할 정도였다고. 아이들의 그림을 바탕으로 자수 작품을 완성하는 등 흥미로운 컬래버레이션도 진행했다.

열성 할머니도 있었습니다. 힙합에 빠져 있던 손주들은 힙합 스타일의 패션을 완성하고자 통 넓은 청바지, 티셔츠에 물감으로 그림을 그렸다. 벙거지가 하이라이트였는데, 넉넉지 않은 형편에 ‘캉골’ 모자가 비싸 사지 못하자 할머니가 직접 타월로 벙거지를 만들어 줬다. 물론 캉골 스타일로. “어릴 적 집에선 늘 음악이 있었다”고 작가들은 회상한다. 너그럽고 자유로운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50대가 돼서도 그대로 간직한 이들의 북미 첫 대규모 회고전 제목은 ‘끝나지 않은 이야기(Endless Story)’다.

허시혼미술관의 원형전시장은 다 돌고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듯, 쌍둥이 형제의 이야기도 끝없이 이어진다.

뉴욕=이한빛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