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莊子) 외편(外編) 천도편(天道篇)은 제나라 임금인 환공(桓公)과 수레바퀴 깎는 노인 윤편(輪扁)의 이야기다.
제나라의 환공이 당상(堂上)에서 책을 읽고 있었는데, 윤편이 당하(堂下)에서 수레바퀴를 깎아 만들고 있다가 몽치와 끌을 놓고 올라가 환공에게 물었다. 전하께서 읽으시는 건 무슨 말을 쓴 책입니까? 환공이 대답했다. 성인의 말씀이지. 성인이 지금 살아 계십니까? 환공이 대답했다. 벌써 돌아가셨다네. 그럼 전하께서 읽고 계신 것은 옛사람의 찌꺼기이군요. 환공이 벌컥 화를 내면서 내가 책을 읽고 있는데 바퀴 만드는 목수 따위가 어찌 시비를 건단 말이냐. 이치에 닿는 설명을 하면 괜찮되 그렇지 못하면 죽이겠다.
윤편은 대답했다. 저는 제 일의 경험으로 보건대 수레를 만들 때 너무 깎으면 깎은 구멍에 바큇살을 꽂기에 헐거워서 튼튼하지 못하고 덜 깎으면 빡빡하여 들어가지 않습니다. 더 깎지도 덜 깎지도 않는다는 일은 손짐작으로 터득하여 마음으로 수긍할 뿐이지 입으로 말할 수가 없습니다. 거기에 비결이 있는 겁니다만 제가 제 자식에게 깨우쳐 줄 수 없고 제 자식 역시 제게서 이어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70인 이 나이에도 늘그막까지 수레바퀴를 깎고 있는 겁니다. 옛사람도 그 전해 줄 수 없는 것과 함께 죽어 버렸습니다. 그러니 전하께서 읽고 계신 것은 옛사람들의 찌꺼기일 뿐입니다.
윤편은 환공에게 춘추전국과 같은 혼란의 시기에 과거의 지식인 성현의 말씀보다는 비절차적이고 비선형적이며 창의적인 사고가 더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이는 대물림할 수 없고, 말이나 글로서 전해 줄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고 한다. 이 얼마나 통쾌한 비유인가?
현대 경영에서는 빠른 추격형(fast follower)과 선도형(first mover) 전략을 자주 이야기한다. 빠른 추격형은 모범사례가 있고, 대량 생산이며, 지배적 기술 1~2개가 생산을 좌우하며, 규정 준수가 최고의 미덕인 순응형 인재가 판을 치는 평범 왕국이다. 역사적으로는 나라를 건국한 후 안정기에 접어들어 표준화와 디테일에 승부하는 시기이다. 반면에 선도형(first mover)은 실험적이고, 소규모이며, 우세한 기술 1~2개보다는 다수의 기술이 융합되는 세상이며, 규정과 절차가 파괴되고 개인적 인격을 무시하는 창의적 인재들이 득실대는 극단의 세계이다. 역사적으로는 나라를 건국하는 시기로 비전에 승부를 거는 시기이다.
인류의 변곡점은 새로운 파괴적 기술로 폭풍우가 몰아치는 시기이며, 협업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배우는 법을 새로 배워야 하는 지금 우리의 시기다. 인간의 직관과 통찰력은 아주 오묘하여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인과관계를 단박에 풀어줄 수 있다. 실제로 일을 하는 데 필요한 인간의 특별한 사회적 기술이 바로 ‘협력’이라고 영국의 사회학자인 리처드 세넷(Richard Sennett)은 정의하고, 네 단계로 이루어진다고 말했다.
첫 단계는 목적이 고정된 전용 도구의 주형을 깨면서 일어난다. 상상의 영역에서 이러한 파괴의 역할은 회상과 다르다. 우리는 첫 번째 단계를 틀 바꾸기(reformatting)라 부를 수 있다. 지금 손에 쥔 기술을 갖고 새로운 틀만 바꾸어 사용하는 것이다. 두 번째 단계는 서로 다른 두 영역을 나란히 놓는 일(adjacency)이다. 전혀 다른 두 영역을 서로 붙여놓으면 상상을 자극하는 양자 간의 관계가 드러나기 쉽다. 서로 극과 극인 삶과 죽음을 가까이 놓거나 서로 이질적인 두 기술을 모아 놓고 어떻게 연결하면 되지? 생각하는 일이다. 세 번째 단계는 암묵적 지식을 의식의 세계로 바꾸는 과정이다. 명확하게 비교하기 위해서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 전혀 딴판으로 바뀌기도 하고, 몰랐던 사실을 확연히 인지하는 과정이다. 네 번째 단계는 ‘도약’을 하더라도 ‘중력’은 계속 작용한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다. 기능과 작업의 전수를 예로 들면, 풀리지 않은 문제는 전수 과정에서도 풀리지 않은 채로 남는다. 최근 모기업의 3세대끼리 경영권 분쟁을 보면서 경영의 근원적 본질은 협력이라는 철학이 생각난다.
김홍유 경희대 교수(한국방위산업협회 정책위원, 전 한국취업진로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