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휴진 철회 안한 아산·세브란스 등 8개 병원에 건보 선지급 지원

입력 2024-10-03 05:00
수정 2024-10-03 20:13

정부가 교수진이 ‘무기한 휴진’을 철회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건강보험 선지급 지원 대상에서 배제했던 서울아산병원, 세브란스병원 등 8개 병원에 대해서도 건보 지원에 나서기로 했다. 이들 병원에 지원되는 금액만 4000억원에 육박한다. 전공의들의 현장 이탈이 장기화하면서 피로도가 누적되고 있는 필수의료 현장의 어려움을 덜어주고, 전문의·간호사 등 의료진 확충을 통해 응급실과 배후진료 등 의료체계를 정상화시키려는 결정으로 풀이된다. ○아산, 세브란스 등에도 3600억 지원3일 국민건강보험공단과 의료계 등에 따르면 공단은 전날 서울아산병원, 세브란스병원, 고려대병원 등 8개 병원에 대해 건강보험 선지급 지원을 위한 신청서 등을 제출할 것을 요청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지난 8월 이들 병원들이 보건복지부에 선지급 지원 대상에 포함시켜줄 것을 요청한 이후 약 한 달여만에 복지부가 지원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셈이다.

정부는 이들 병원에 지난 6~8월 3개월 분에 해당하는 건강보험 선지급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선지급금 규모는 약 3600억원 수준으로 한 달에 1200억원 수준으로 추정된다.

정부는 장기간 이어진 전공의 집단 사직으로 경영난에 처한 병원들을 지원하기 위해 전년도 건강보험 급여 매출의 30%를 미리 지급하는 선지급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선지급은 건강보험공단이 병원에 매달 지급하는 건강보험 급여를 우선 주고 사후에 분할해서 정산하는 제도다. 공단이 병원에 ‘무이자 대출’을 해주는 것과 비슷하다.

선지급은 현재까지 63개 병원에 대해 6~8월 3개월분에 걸쳐 이뤄졌다. 한 달에 투입되는 금액은 약 3600억원 수준으로 총 1조원이 넘는 건보 재정을 지원한 셈이다. 이번에 이뤄지는 8개 병원에 대한 선지급 지원을 포함하면 총 지원 규모는 71개 병원, 1조50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이번에 새로 건보 선지급 대상에 포함된 병원은 △서울아산병원 △강릉아산병원 △울산대학교병원 △세브란스병원 △강남세브란스병원 △고려대안암병원 △고대구로병원 △고대안산병원 등 8곳이다. 이들 병원은 지난 7월을 전후로 이뤄진 대학병원 교수들의 ‘무기한 휴진’ 선언을 끝내 철회하지 않은 병원들이다.

당초 복지부는 5월 건보 선지급 지원을 결정하면서 조건으로 전공의 복귀 대책을 포함한 병원 정상화와 필수의료 유지 의무를 다할 것을 요구한 바 있다. 건강보험 가입자인 국민이 낸 보험료로 조성된 건보 재정을 무기한 휴진 등 필수의료 정상화에 반대되는 집단 행동에 나선 병원에까지 지원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정부 안팎의 의견을 반영한 것이다.

당시 의대 증원 및 전공의 행정처분 철회 등을 요구하며 이뤄진 대학 교수들의 무기한 휴진 선언은 부정적인 여론 속에 대부분 철회되거나 유명무실하게 마무리된 바 있다. 이들 병원 역시 대외적으로 휴진 선언을 철회하진 않았지만 중환자 진료 등 필수의료 영역에서 사실상 정상 진료를 이어갔다는 점을 정부에 설명하며 선지급 대상에 포함시켜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진다. ○중증 수가 50% 인상 더해져 필수의료 정상화정부는 한달여간 내부 논의 끝에 이들 병원에도 선지급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강경파 교수들이 주도하는 무기한 휴진 선언 등에 참여했다는 ‘명목’보단 실제로 진료량을 줄였는지 등 ‘실질’을 반영해 선지급 지원을 하는 것이 비상진료체계 유지와 필수의료 강화에 보다 효과적이라는 판단이다.

정부는 당초 6~8개월 3개월분에 한정됐던 선지급 지원을 연말까지 연장하고, 내년 상반기 중이던 상환 역시 유예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의정 갈등 장기화로 인해 연말까지도 비상진료체계 유지를 위한 재정 지원 필요성이 지역 상급종합병원 등을 중심으로 이어지면서다.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월부터 8월까지 전공의 수련병원 211곳이 공단에서 받은 건강보험 요양급여비는 15조5585억원으로 1년 전(15조6842억원)보다 0.8% 감소하는데 그쳤다. 전공의 이탈로 대형 상급종합병원들의 진료량이 20~30% 가량 줄어든 상황에서도 7월과 8월엔 급여비가 각각 13.6%, 3.1% 늘었다. 건보 선지급 지원이 본격적으로 이뤄지면서 병원들의 재정 상황이 오히려 평시보다 호전된 것이다.

정부와 의료계 내부에선 장기화되는 전공의 이탈로 필수 분야 의료진의 피로도가 누적되고 있는만큼 연말까지 선지급 지원을 연장해 병원들이 전문의와 진료지원(PA)간호사 등 인력을 확충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의료 정상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선지급 지원 확대가 연말부터 본격 시행하는 것을 목표로 추진 중인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지원사업과 맞물려 필수의료 정상화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정부는 최근 910개 중증·응급 수술과 중환자실 수가를 연내 50% 가량 높이고, 2027년까지 총 3000여개의 저평가 의료행위 수가를 정상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지원사업 추진 계획을 발표했다. 이 사업에 들어가는 건강보험 재정만 연간 3조 3000억원씩 3년간 10조원이다.

연말부터 개선된 수가가 적용될 경우 상급종합병원 등 주요 병원들이 중환자 중심으로 축소된 진료량을 유지하더라도 평소와 유사한 수입을 올릴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다. 사업이 본격화하기 전 '보릿고개'를 선지급 연장을 통해 넘어갈 수 있다. 재정이 안정화된 병원들이 충분한 인력을 채용해 진료를 정상화시킨다면 전공의 이탈에 따른 문제를 최소화시킬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