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가 국정감사 증인으로 류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을 부른다고 한다. 2015년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따른 농업 피해를 지원하기 위해 만든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의 기업 출연 실적이 저조한 점을 따지기 위해서다. 여야 협상에 따라 추후 기업 총수들이 불려 나올 가능성도 있다. 기금 모금을 시작한 2017년 이후 매년 되풀이되는 ‘갑질 국감’의 대표적 사례다. 기업의 자발적 참여를 전제로 한 상생기금이 어느새 기업을 군기 잡고 팔 비트는 수단으로 전락한 모습이다.
상생기금은 출발부터 포퓰리즘의 산물이다. 한·중 FTA의 국회 비준으로 농어민이 반발하자 여·야·정은 2017년 3월 기금을 출범시키고 10년간 매년 1000억원씩, 총 1조원 규모를 조성하기로 했다. FTA 체결로 혜택을 본 민간기업과 공기업이 출연해 농어촌 장학, 의료·주거 개선 사업 등에 쓴다는 명분을 앞세웠다. 하지만 기업들로선 막대한 부담은 차치하고 출연 명분도 찾기 어렵다.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으로 호되게 당한 트라우마가 만만찮아 몸을 사릴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의사결정 과정에서 돈을 내는 기업 의견은 듣지도 않고 대선 농민 표심을 의식해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왜 농어민 지원을 기업이 떠맡아야 하느냐는 점이다. 현재의 상생기금은 시장경제 원리에 반하는 반강제적 준조세나 다름없다. FTA로 인한 구체적 이익 산정이 어렵고, 산정이 가능하다고 해도 이익이 늘어난 만큼 이미 세금을 더 냈다는 점에서 기금 강제는 부적절하다. 정부는 기업으로부터 더 걷은 세금으로 피해 농어민을 지원하면 된다. 그런데도 여야는 국감 때뿐 아니라 수시로 기업인들을 국회로 불러 빚 독촉하듯 닦달 중이다. 자율 출연이라지만 ‘눈 가리고 아웅’이다. 이러니 ‘권력형 앵벌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것 아닌가.
결과적으로 상생기금은 정부 일을 기업에 떠넘긴 꼴이다. 지금까지 모금액은 목표액의 25% 정도에 그친다. 향후 2~3년 내에 나머지 75%를 걷으려다 보니 증인 소환을 반복하는 무리수를 두고 있다. 꼭 필요한 사업이라면 민간기업에 헌금을 강제할 게 아니라 정부 예산으로 집행하는 게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