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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업으로 황금기를 누리던 그림스비는 한때 런던보다 더 부유했죠. 이젠 모두 해상 풍력으로 먹고 삽니다.”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영국 북동부 그림스비의 한 항구에서 만난 40년 경력의 선장 크레이그 무어는 “해상 풍력 단지가 스러져가던 지역 사회에 새로운 활력을 줬다”며 이같이 말했다. 산업혁명 때부터 어업과 수산물 유통업이 발달한 그림스비는 1970년대 아이슬란드와 어업 분쟁 후 극심한 침체를 겪었다. 하지만 최근 해상 풍력 산업을 성장동력으로 삼은 뒤 다시 활력을 되찾고 있다. 영국 정부가 북동부 험버 지역에 해상 풍력 클러스터를 조성하면서 덴마크의 오스테드, 독일의 RWE 등 글로벌 신재생에너지 기업들이 작은 어촌마을로 모여들었다. 재생에너지로 에너지 자립 도모
1일 영국 기업에너지산업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영국의 에너지 발전 비중은 풍력·태양광이 32.8%로 가스(34.7%)와 비슷했다. 석탄은 1% 미만이다. 10년 전만 해도 재생에너지(14.2%)는 화석연료(35.7%) 발전 비중의 절반에 미치지 못했다. 영국 정부는 지난달 30일 마지막 석탄발전소인 래트클리프발전소를 폐쇄했다.
영국 정부는 해상 풍력을 미래 발전 산업으로 낙점했다. 해상 풍력은 육상 풍력 대비 주민들의 소음 민원에서 자유롭고 북해의 강한 바람이 발전 효율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현재 14.7GW 수준인 해상 풍력 발전 규모를 2030년 50GW까지 확대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제임스 길버트 헐대 교수는 “2030년까지 영국의 해상 풍력 산업에서 약 10만 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풍력 단지로 1만7000여개 일자리 창출영국은 정부 주도로 기존 항구 인프라를 활용한 배후 항만을 조성해 터빈 제조업체, 모니터링센터 등 관련 기업이 인근 지역에 모여들도록 했다. 험버 지역에 8개 해상 풍력 단지가 건설되면서 1만7000여 개의 일자리가 생겼다. 기업 입주가 늘어나자 지역 경제도 살아났다. 조개잡이 배는 해상 풍력 경비선으로 변모해 발전단지 정비자를 수송하는 업무를 도맡고 있다. 최근에는 그림스비 항구가 ‘어톤먼트’ ‘디스 이즈 잉글랜드’ 등 영화·드라마 촬영지로 채택돼 관광 자원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영국 혁신청 산하 국책연구소인 해상풍력연구소(OREC)는 뉴캐슬에서 차로 30분가량 떨어진 블리스강 인근에 자리를 잡았다. 18~20세기 조선업이 발달한 이곳에서 연구자들은 해저 지형 탐사 로봇 개발, 해저케이블 부식 연구 등을 그대로 수행하고 있다.
세아제강지주 자회사 세아윈드는 영국수출금융청의 지원을 받아 영국 북동부 티사이드 산업단지 36만㎡ 부지에 연내 준공을 목표로 해상 풍력 모노파일(하부구조물) 제조 공장을 건립 중이다. 영국 뉴캐슬에서 남쪽으로 70㎞가량 떨어진 이곳엔 과거 많은 고로와 철강 수출 항구가 자리했지만 2010년대 철강사의 연이은 파산으로 쇠락했다. 영국 정부는 이곳을 ‘넷제로 지역’으로 지정하고 해상풍력산업 기업을 유치했다. 영국 산업통상자원부의 칼 존 해상 풍력 전문가는 “우크라이나 전쟁, 원자재 가격 급등 등으로 에너지 자립 중요성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영국 정부는 신재생에너지 발전에 대한 불확실성도 낮췄다. 2014년 가격 기반의 차액결제거래(CfD) 경매 제도가 도입된 뒤 영국 정부는 발전사에 재생에너지 전력 단가를 보장하고 있다. 예상 가능한 투자 수익을 제시함으로써 발전사의 참여를 늘리려는 전략이다. 최근 6차 경매에서 영국 정부는 CfD 행사 가격을 종전 대비 45% 인상했다.
헐·그림스비=한경제 기자 hanky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