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는 2021년 미국 시장에서 일본 혼다를 처음으로 추월했다. ‘한 수 아래’로 여겨지던 한국 차가 세계 시장에서 공고히 자리 잡고 있던 일본을 제친 쾌거였다. 1975년 포니 자동차 10만 대 생산을 축하하던 시절엔 ‘허무맹랑한 꿈’으로 치부됐을 일이 46년 만에 현실이 됐다.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80달러(1960년)이던 한국은 2010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개최하고 지난해 미국, 일본과 3국 정상회의를 하는 나라가 됐다. 우뚝 선 글로벌 기업들한국경제신문이 30일 창간 60주년 기념식에서 공개한 ‘한국 경제사(史) LED(발광다이오드) 사진전’에는 이런 드라마틱한 성장의 장면들이 소개됐다. 이날 행사장을 찾은 기업인, 정치인, 관료들은 가로 13.5m, 세로 2.5m ‘히스토리월’에 담긴 ‘역동의 순간’ 앞에서 여지없이 발걸음을 멈췄다. 염재호 태재대 총장은 “주요 순간의 역사적 결정들이 생생하게 살아난다”고 말했다.
이번 사진전의 첫 작품은 한경이 창간된 1964년 무렵 국민학교(현 초등학교)의 점심시간이다. 당시 한국의 가장 큰 문제는 ‘보릿고개’였다. 당시 정부는 국민학생에게 빵을 나눠줬다. 미국에서 원조받은 옥수수 가루로 만든 빵이었다.
한국이 세계의 중심으로 우뚝 선 이면엔 국민의 치열한 삶이 있었다. 독일로 떠난 광부들은 지하 2000m 탄광에서 목숨을 걸고 일했다. 간호사들도 낯선 독일에서 외화벌이에 나섰다.
이 무렵 태동한 한국 기업은 불과 두 세기 만에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 섰다. 1969년 창립된 삼성전자는 1993년 이건희 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계기로 급성장했다. 1966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TV를 생산한 LG그룹(당시 금성사)은 2010년 미국 미시간에 LG화학 배터리 공장을 설립했다.
행사에 참석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도 히스토리월을 지나가며 사진들을 유심히 살폈다. 1979년 롯데백화점 1호점을 낸 롯데는 2017년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높은 555m 마천루인 롯데월드타워를 선보였다.
1973년 경북 포항제철소 1고로에 쇳물이 쏟아지자 만세를 부르는 박태준 포항제철(현 포스코) 사장과 직원들의 모습 그리고 1984년 현대건설 유조선이 물길을 막고 충남 서산 간척지를 만들어내는 장면은 지금 보면 ‘기적’이라는 단어가 어색하지 않은 한국 경제사의 명장면이다. 1986년 호암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의 출판기념회에서 파안대소하며 악수하는 이 회장과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모습에선 한국 경제를 이끈 두 거목의 자신감을 엿볼 수 있다.
정치와 제도 발전도 눈부시다. 1972년 제정된 유신헌법은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으로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다. 1993년과 1995년 차례로 도입된 금융실명제와 부동산실명제는 투명한 사회로 가는 첫걸음이 됐다. 방기선 국무조정실장은 “사무관 시절 금융실명제 도입 작업에 참여했다”며 당시 일화를 전했다. 이제는 문화 강국으로한국 경제에는 위기도 많았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은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불리던 우리 경제에 급제동을 걸었다.
위기 순간마다 위기 극복 DNA가 발현됐다. 한국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끝난 2010년 개발원조위원회에 가입해 원조를 하는 국가 반열에 올랐다. 1964년 옥수수 가루를 원조받던 나라가 이제는 세계 각국에 쌀을 주는 나라가 된 것이다. 같은 해 G20 정상회의를 열어 국격도 높아졌다. 한국형 원자력발전과 방위산업은 한국의 새로운 먹거리 산업으로 떠올랐다. 양종희 KB금융그룹 회장, 진옥동 신한금융그룹 회장 등 금융권 주요 인사들은 김병환 금융위원장과 함께 히스토리월 앞에 서서 한참을 관람했다. 진 회장은 “한국경제신문은 한국 경제가 태동한 이후 60년간 산업의 정보를 밝혀줬다”며 “앞으로의 60년도 산업의 등대 역할을 해달라”고 주문했다. 독일 만롤렌트고스의 덕 라우 최고재무책임자(CFO)와 하이코 리처 부사장 등도 히스토리월을 한동안 지켜봤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