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지 벌써 5년이다. 그러나 현장에서의 혼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초기에는 직장 내 괴롭힘의 ‘판단기준’이 불명확한 점이 주로 지적되었지만, 최근에는 제76조의3 제6항의 ‘불리한 처우’가 논란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최근 일부 판례가 ‘불리한 처우’를 비교적 쉽게 인정하는 태도를 보이면서 주목을 받았는데, 대표적인 예가 청주지법 충주지원 2021. 4. 6. 선고 2020고단245 사건(대법원 2022. 7. 12.자 2022도4925 결정으로 확정. 이하 '대상 판결')이다. 현장에서는 이런 판례가 선례로서 거론되기도 하고, 판례의 취지에 공감하는 견해도 존재하지만, 필자는 다소 비판적인 시각에서 이를 검토해 보고자 한다.
대상 사례의 피해근로자 A는 상사로부터 각종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여 이를 회사에 신고하였는데, 회사는 한 달 뒤에 A의 근무장소를 변경하는 ‘전보명령’을 했다. A는 노동위원회에 부당전보 구제를 신청하는 한편, 회사가 근로기준법 제76조의3 제6항에서 정하는 불리한 처우를 하였음을 이유로 고소를 제기하였다. 검찰은 전보명령이 ‘불리한 처우’에 해당한다고 보아 벌금 200만원의 약식기소를 했다. 그런데 정식재판 제1심에서 법원은 이례적으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였고, 이에 더하여 ‘재범 예방 및 피고인에게 노동의 의미를 일깨우게 하기 위해’ 보호관찰 및 사회봉사 120시간을 명령했다.
법원이 전보명령을 ‘불리한 처우’로 본 근거는 무엇일까. 흥미롭게도 법원은 피해근로자가 전보된 근무장소가 근무환경이 더 좋아서 전보명령이 ‘객관적’으로로는 불이익한 인사조치로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봤다. 그럼에도 피해근로자의 주관적 의사, 신고 후 회사의 부당한 조치, 부실한 조사와 절차적 하자 등을 고려하면 전보명령은 ‘불리한 처우’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으며, 특히 입법취지를 고려하면 피해근로자의 주관적 의사(피해근로자가 전보를 원하지 않음에도 적절한 협의가 없이 출퇴근의 어려움이 있는 곳으로 전보하여 가족의 간병에 어려움을 겪게 함)이 가장 중시되어야 한다고 봤다
대상 판결은 피해근로자에 대한 배려는커녕 2차 가해까지 한 사용자에게 징역형(집행유예)을 선고함으로써 사용자의 위법행위에 경종을 울렸다는 의미가 있다. 그런데 ‘결론’의 정당성을 떠나 법리적인 측면에 주목해 보면 몇 가지 의문을 남기는 판결이기도 하다.
일단 가장 큰 아쉬운 점은 형사 판결임에도 범죄의 ‘구성요건’을 분설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범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구성요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제76조의3 제6항의 문구에 비추어 해석해 보면 (1)직장 내 괴롭힘에 따른 ‘신고’가 있어야 하고, (2)사용자의 ‘객관적으로 불이익한 처분’이 있어야 하며, (3)‘불이익한 처분’이 ‘신고’로 인한 것이어야 하고(인과관계 내지 연계성), (4) ‘고의’가 존재해야 한다. 그런데 대상 판결은 제76조3의 제6항 위반죄의 구성요건 요소가 무엇인지 및 각 요건이 충족되었는지에 대해 명확하게 언급하지 않았다.
또 다른 아쉬운 점은 (3)신고와 불이익 처분간 인과관계에 대한 논증이 미흡해 보인다는 점이다. 과거 대법원은 ‘근로자가 근로기준법 위반사항을 감독관청에 통보하였음을 이유로 해고나 그 밖에 불리한 처우를 하지 못한다’는 근로기준법 위반죄(제104조 제2항)의 성립여부가 문제된 사건에서 ‘근로기준법 제104조 제2항 위반을 이유로 처벌하기 위해서는 그 불리한 처우가 위반사실 통보를 이유로 한 것이어야 하고, 불리한 처우를 하게 된 다른 실질적인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한 바 있다(대법원 2012. 10. 25. 선고 2012도8694 판결). 같은 논리를 따른다면, 대상 사례에서도 전보의 객관적 정당성을 인정한 이상 제76조의3 제6항 위반죄는 인정하기 어렵고, 인정하는 경우라도 좀 더 심층적인 고민이 선행되었어야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특히 대상 사례와 같이 전보명령과 같은 ‘인사명령’의 경우 사용자의 인사재량권이 넓게 인정되므로, ‘불리한 처우’로 징계가 거론된 경우에 비해 훨씬 더 깊은 고민이 있었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나아가 ‘고의’에 대한 판단이 없다는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 제76조의3 제6항 위반죄는 고의범이므로 고의가 있어야 성립한다. 고의란 객관적 구성요건 요소에 관한 ‘인식’과 ‘의사’를 의미하므로, 제76조의3 제6항 위반죄가 성립하려면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가 신고를 한 점을 인식하고, 그러한 신고 때문에 불이익을 주려는 의사’라는 ‘고의’가 있어야 한다. 고의는 마음 속의 영역이므로 직접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간접사실’을 토대로 인정해야 한다(이를 ‘추단’한다고 한다). 그런데 법원이 고의의 존재를 간접사실에 의해 추단할 때에는 정상적인 경험칙에 바탕을 두고 치밀한 관찰력인 분석력에 의하여 사실의 연결상태를 합리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대법원 2006. 5. 25. 선고 2006도641 판결). 그런데 대상 판결은 고의에 대한 언급 없이 형사책임을 인정하였는바, 이처럼 범죄 성립의 중요한 요건인 ‘고의’를 정면으로 심리하지 않은 점은 다소 의아한 부분이다.
그 외에도 대상 판결은 ‘인사조치의 객관적 정당성’에 관한 고려요소를 ‘불이익 처우’의 판단기준으로 언급하여 다소 어색한 논지전개를 하였다는 생각도 든다. 대상 판결은 (i)전보된 근무장소가 근무환경이 객관적으로 더 좋기 때문에 전보명령이 ‘객관적’으로는 불이익한 인사조치로 보기 어렵다고 설시했다. 그러면서도 (ii)‘피해 근로자의 주관적인 의사가 가장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하므로 설령 객관적으로 불이익하다고 보기 어려운 전보명령이라도 피해자의 주관적인 의사에 반한다면 불이익처우가 된다’고 보았다.
그러나 위와 같은 판시는 기존 판례에 비추어 보면 다소 생소한 측면이 있다. 판례는 그간 인사명령의 정당성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 ①사용자의 업무상 필요성과 ②근로자의 생활상 불이익을 비교교량 하고, ③근로자와 협의 등 절차를 거쳤는지를 고려해 왔다(대법원 2015. 10. 29. 선고 2014다46969 판결 등). 대상 판결이 언급한 ‘피해 근로자의 주관적 의사·사정’은 ②와 ③와 관련된 문제로서, 사실은 ‘전보명령의 객관적 정당성’을 판단할 때 함께 고려되어야 하는 요소로 생각된다. 따라서 사용자가 전보 결정 과정에서 피해 근로자의 의사를 확인하지 않았거나 전보로 인해 출퇴근 등에서 입는 불이익이 현저하게 크다면 이를 ‘전보명령의 객관적 정당성’ 자체를 부인하는 근거로 거론하는 것이 더 적절했을 것이다. 만약 이렇게 했다면 ‘전보가 객관적으로는 정당해도 피해근로자의 주관적 의사에 반하므로 불이익처우에 해당한다’는 식의 논지전개를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서 살핀 바와 같이, 대상 판결은 경위사실 등을 고려할 때 그 ‘결론’에 대해서는 고개가 끄덕여지지만 법리적인 측면에서는 상당 부분 의문스러운 측면이 존재한다. 특히 형사범죄에 관한 판결임에도 고의의 존재나 신고와 불이익한 처분 사이의 인과관계에 대한 판단이 정면으로 다뤄지지 않은 점은 아쉽다. 다행스럽게도 이러한 고민을 상당 부분 반영한 판결들이 나오고 있어서 소개한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23. 8. 25. 선고 2022노884 판결, 대법원 2024. 5. 29. 선고 2023도12435으로 확정).
2022노884 사례에서는 피해근로자가 괴롭힘 신고 후 우울증을 다스리기 위해 휴직을 하였다가 복직을 신청하였는데 사용자가 복직신청을 불허한 것이 ‘불이익처우’에 해당하는지가 문제되었다. 제1심은 유죄를 선고하였으나, 항소심은 사용자로서는 피해근로자의 건강 상태가 복직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할 나름의 이유가 있었고, 경위사실을 고려할 때 복직유예가 피해근로자에게 어떤 불이익을 가할 ‘의도’에서 이루어진 조치라고 추단하기 어렵다(즉, 고의가 없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하였다. 향후 제76조의3 제6항 위반죄와 관련하여 일반의 법 감정을 충족하면서도 법리적인 완결성이 높은 판결들이 선고되어 선례로 정착되는 것을 기대해 본다.
김종현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