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사 자사주 소각 잇따라…'밸류업'에 탄력 받나 [이슈+]

입력 2024-09-28 14:17
수정 2024-09-28 14:18

상장사들이 잇따라 주주환원을 위한 자사주 소각에 적극 나서고 있다. 정부가 연초부터 추진한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프로그램에 발맞춘 행보로, 그동안 자사주 소각에 인색했던 기업들의 인식이 변화하는 모습이다. 최근 한국거래소가 선보인 '코리아 밸류업 지수'의 편입 기준에 주주환원이 포함된 만큼, 이 같은 추세가 이어질지 주목된다.

27일 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들어 이달 26일까지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에서 자사주 소각을 발표한 상장사는 총 97곳으로 1년 전 같은 기간(72곳)보다 34.7% 늘었다. 이 기간 소각 예정 금액도 3조9023억원에서 8조9702억원으로 129.9% 급증했다.

자사주 소각은 기업이 주주에게 이익을 돌려주는 방법 중 하나다. 기업이 벌어들이는 이익은 그대로인데 소각에 따라 주식 수가 감소하면서 주주가 보유한 1주당 이익이 증가하는 효과가 있다. 또 자사주를 취득해 소각하는 방법일 경우 매입 과정에서 자본총계가 감소하면서 자기자본이익률(ROE) 상승으로 투자 대비 수익률이 개선되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 결과적으로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 매력이 높아지는 셈이다.

올해 자사주 소각 규모가 가장 큰 상장사는 SK이노베이션이다. SK이노베이션은 7936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소각키로 했다. 이는 기존에 발표한 배당성향 30%를 웃도는 수준이다. 이어 삼성물산이 7677억원 규모의 자사주 소각 계획을 발표해 그 뒤를 이었다. 현대차와 기아도 각각 3123억원, 1916억원 규모의 자사주 소각 계획을 발표해 시장의 높은 호응을 받았다. 금융 업종에서는 메리츠금융지주(6401억원) KB금융(7200억원) 신한지주(4500억원) 하나금융지주(3000억원) 등이 대규모 자사주 소각에 나섰다.

정부가 연초부터 '코리아 디스카운트(국내 증시 저평가)' 해소를 위해 밸류업 프로그램을 추진한 가운데 상장사들이 적극 보조를 맞추는 모습이다. 특히 거래소가 이달 발표한 밸류업 지수가 기업들의 자사주 소각을 유도하는 유인책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밸류업 지수에는 편입 종목을 선정하는 기준으로 △시장 대표성 △수익성 △주주환원 △시장평가 △자본효율성 등 다섯 가지가 활용된다. 주주환원 기준에는 2년 연속 배당이나 자사주 소각이 포함됐다. 지수 편입 시 패시브(특정 주가지수 추종) 자금 유입으로 주가 상승을 기대할 수 있다는 설명이 나온다.

다만 증권가에서는 자사주 소각과 배당 중 하나를 선택하면 밸류업 프로그램의 주주환원 기준을 충족할 수 있다는 점이 아쉽다는 평가가 나온다. 기업들이 주주환원 효과가 큰 자사주 소각 대신 배당으로 해결하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자사주 소각 여부만 판단하고 규모를 따지지 않아 '보여주기식 소각'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밸류업 지수에 들어가려고 기업들이 자사주를 소각하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이라며 "주가 상승을 바라는 기업이어야 하는데, 아직까지 상속·증여세 등 근본적인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밸류업 지수에 포함될 수 있는 기업도 100곳밖에 되지 않는다"며 "나머지 기업들은 크게 동기 부여를 받지 못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거래소 관계자는 "자사주 소각 규모가 어느 정도여야 적정한 것인지 기준을 잡는 것이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며 "여러 시뮬레이션을 해본 결과 투자자들이 투자할 수 있는 지수 콘셉트로는 현재의 방향이 맞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어 "배당과 자사주 소각 모두를 열어 놓은 것도 기업들이 배당은 계속 할 수 있겠지만, 자사주를 해마다 소각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라며 "배당 여력이 없을 때 자사주를 소각해 주주환원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판단해 이 같이 결정된 것"이라고 부연했다.

고정삼 한경닷컴 기자 js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