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문제도 저작물일까?[김우균의 지식재산권 산책]

입력 2024-09-29 10:18
수정 2024-09-29 10:19
[지식재산권 산책]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출제, 관리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 홈페이지에 방문해 ‘자료마당’, ‘기출문제’ 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상단에 “이 문제지에 대한 저작권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있습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허락 없이 문제의 일부 또는 전부를 무단 복제, 배포, 출판, 전자출판 하는 등 저작권을 침해하는 모든 행위를 금합니다”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수능시험 문제도 ‘저작물’이라는 의미다.

그런데 통상 시험문제는 대부분 시, 소설, 그림 등 다른 저작물들을 인용해 제시하거나 교과서, 참고서에서 공통으로 설명하고 있는 학습 내용을 묻는 형태로 구성됐다. 문제 지문 또한 이미 공표된 다른 시험문제 등을 참고하여 만들어지고 있다. 저작물이 되려면 최소한의 ‘창작성’이 인정돼야 하는데 이와 같은 시험문제도 창작성이 있는 저작물이라고 할 수 있을까. 결론은 ‘그렇다’이다.

법원은 고교 교사들이 소속 고교 학생들을 위해 출제한 시험문제를 자료화하여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유상 판매하는 행위는 위 시험문제에 관한 저작권을 침해하는 행위라는 판결을 선고한 바 있다.

비록 이 사건 시험문제의 일부는 교과서, 참고서, 타 학교 기출시험문제 등의 일정한 부분을 발췌하거나 변형해 구성했고 현행 교과과정에 따른 교육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그 교육과정에서 요구되는 정형화된 내용들로 이뤄져 있다고 하더라도 고교 교사들이 자신들의 교육이념에 따라서 소속 학교 학생들의 학업 수행 정도의 측정 및 내신성적을 산출하기 위해 정신적인 노력을 기울여 남의 것을 그대로 베끼지 아니하고 이 사건 시험문제를 출제했다.

또 그 낸 문제에 있어서 질문의 표현이나 제시된 답안의 표현에 최소한도의 창작성이 있다고 인정했다.

이처럼 시험문제에 저작권이 인정된다면 타인이 출제한 시험문제를 무단으로 복제, 전송하는 행위는 당연히 저작재산권을 침해하는 행위가 된다. 시험문제 출제자, 즉 저작자인 교사들은 침해행위를 한 회사에 손해배상 청구는 물론 침해행위의 정지, 침해행위에 의해 만들어진 물건의 폐기 또한 청구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저작자는 저작재산권 외에도 저작인격권(공표권, 성명표시권, 동일성유지권)을 보유하고 있는데 시험문제를 무단 복제, 전송했던 회사가 그 복제물에 저작자인 교사들의 실명 등을 표시하지 않았다면 이는 별도로 성명표시권 침해행위가 되고 저작자인 교사들은 이에 대해 별도의 위자료를 청구할 수도 있다. 위 사례에서도 교사들의 위자료 청구가 인용됐다.

그런데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수능시험 문제의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는데도 우리는 어떻게 홈페이지에서 매년 수능시험 문제를 자유롭게 다운로드받을 수 있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저작권자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그와 같은 다운로드 행위를 허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홈페이지에 게재하고 있는 ‘저작권 침해 금지’ 문구를 감안하면 수능기출 문제집 제작, 판매와 같이 영리 목적으로 대량으로 복제, 배포, 전송하는 행위에 대해서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이를 당연히 허락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한편 시험문제에 저작권이 있다면 그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최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시, 소설 등 기존 저작물을 인용해 출제한 수능시험 문제지를 홈페이지에 기간 제한 없이 게시해 언제든지 다운로드받을 수 있는 상태로 둔 행위는 시, 소설 등 기존 저작물에 관한 저작권을 침해하는 행위라는 대법원 판결이 선고됐다.

시험문제에 인용되는 시, 소설 등의 저작권은 시험문제 자체의 저작권과는 별개임을 전제하고 있다. 결국 시험문제 자체의 저작권은 질문의 표현이나 제시된 답안의 표현, 기타 각 요소의 선택, 배열, 조합 등에서 창작성에 한정된다고 할 것이다.

김우균 법무법인(유) 세종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