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트렌드] 이상기후에 '물' 인프라 주목…수익률도 고공 행진

입력 2024-10-05 07:24
수정 2024-10-05 07:25
[한경ESG] 투자 트렌드



글로벌 이상기후가 심상치 않다. 매년 반복되는 현상이지만, 상황은 악화 일로에 있다. 전 세계가 동시다발적으로 펄펄 끓는가 하면 곳곳에서 때 아닌 폭우로 피해를 입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투자 전문가들 사이에 “기후 위기에 올라타라”는 조언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 극심한 가뭄으로 물값이 금값이 된 경우가 허다하며, 귀하신 몸이 된 ‘물’을 ‘블루골드’라고 칭한다. 물 관련 투자상품에 가입한 투자자들은 1년 새 30%에 달하는 고수익을 냈다. 투자자들의 이목이 물로 쏠리고 있는 이유다. 위기 단계가 높아진 가뭄 수준과 고공 행진 중인 블루골드 투자의 성적표를 뜯어봤다.

전 세계가 가뭄에 몸살

남미 에콰도르는 지난 9월 60년 만에 최악의 가뭄을 겪었다. 수력발전 비중이 높은 탓에 가뭄은 곧장 블랙아웃을 일으켰다. 최대 경제도시 과야킬의 경우 하루 최대 15시간 동안 전력 공급이 중단됐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에콰도르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정전과 비가 오길 기도하는 것뿐이다. 안토니오 곤칼베스 에너지 장관이 “위기에 대처하는 방법이 있다면, 현재로선 비와 전력 공급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다”라고 털어놓을 정도다. 심지어 정전 종료 시점에 대해선 “오직 신만이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극심한 가뭄에 식량 위기까지 찾아온 아프리카에선 코끼리를 대량 살처분해 대체 식량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지역사회를 지키기 위해 코끼리 수백 마리가 굶주린 배를 채우는 데 활용된다. 나미비아와 짐바브웨를 비롯한 아프리카 남부 일대는 엘니뇨 현상 여파로 올해 초부터 평균 이하 강수량을 기록 중이다. 이번 가뭄으로 식량 부족에 시달리는 인구는 무려 680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앞서 나미비아는 지난달 코끼리 83마리와 하마 30마리, 버펄로 60마리, 임팔라 50마리, 누 100마리, 얼룩말 300마리, 일런드영양 100마리 등 총 723마리의 야생동물을 잡아 주민에게 고기를 나눠준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나미비아는 가뭄 피해가 극심해지자 지난 5월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인구의 절반이 넘는 140만 명이 식량을 확보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김준섭 KB증권 연구원은 “유럽 남부 지역은 극심한 가뭄으로 스페인 및 이탈리아 지역에서는 물 사용 제한 조치가 시행되고 있다”며 “해당 지역에서는 토지 면적에 따라 물 공급량이 할당되는 현행 방식 대신, 구매자가 직접 물을 거래하는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고 설명했다.

포르투갈에 위치한 서유럽 최대 인공 호수 ‘알케바 호수’에 투자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물 가격이 적정하게 책정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등 물 가격 논쟁이 심화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업계에선 “필수 자원인 물에 가격이 매겨진다면 물 사용이 많은 산업을 중심으로 생산에 차질이 생기거나 인프라 구축 비용이 증가하는 이른바 물리적 위험에 대한 대응이 중요해진다”는 얘기가 나왔다.

실제 미국 시장조사 기관인 S&P는 57만 개의 글로벌 기업이 물 부족이라는 물리적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고 분석했다. 그 결과 이 기업에 대해 생산 차질과 인프라 구축 비용 증가 가능성을 대표적 물리적 위험이라고 진단했다. 스페인의 음식료 기업 에브로 푸드(Ebro Foods)가 극심한 폭염에 따른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실적이 부진했거나, 대만의 반도체 기업 TSMC가 2021년 대만 가뭄 당시 공장 가동을 유지하기 위해 2860만 달러(약 400억 원, TSMC 운영 비용의 2% 수준) 규모의 물탱크 트럭을 운영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물관리 투자 사상 최고가 랠리

이처럼 물의 가치가 수직 상승하면서 물 부족에 대응해 물을 정화하거나 물 관련 인프라에 투자하는 상품에 뭉칫돈이 몰리고 있다. 안전하게 수자원을 공급하기 위해 필요한 관리 솔루션, 소프트웨어, 인프라 사업 등에 분산투자하는 상장지수펀드(ETF)인 인베스코 수자원 ETF(PHO)의 경우 지난 8월 이후 한 달간 1140만 달러가 유입됐다. 미국에 상장된 물 ETF 중 거래량이 가장 많고 운용자산이 크다.

수익률도 압도적이다. 지난 9월 25일 기준 PHO의 1년 수익률은 32.30%에 달한다. 수천 개 주식형 ETF 중 호실적을 거뒀다. 인베스코 S&P 글로벌워터 인덱스 ETF(CGW)의 경우 동기 대비 29.47%의 수익을 냈다.

CGW는 S&P 글로벌 워터지수를 추종하는 ETF로, 2007년에 상장했다. 주요 선진국에 자리한 물 관련 유틸리티, 인프라, 장비, 기계, 소재 기업에 투자한다. 퍼스트 트러스트 워터 ETF(FIW) 역시 1년 새 30%가 넘는 수익률 거뒀다. 수자원 산업에 속하는 기업을 포함한 ETF다. 수처리 솔루션업체 베랄토를 비롯해 아메리칸 워터 웍스, 이콜랩, 자일럼 등이 포트폴리오 상단에 올라 있다. 아메리칸 워터 웍스는 생수 및 하수처리업체다. 이콜랩과 자일럼 역시 물관리와 이에 필요한 장비,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다.

피델리티자산운용이 국내에 3년 전 출시한 ‘지속가능워터·웨이스트펀드’의 경우 설정 이후 47.10%의 수익을 기록 중이다. 지속가능워터·웨이스트펀드는 세계 수자원 및 폐기물 관련 기업 30여 곳에 투자하는 역외펀드를 국내 재간접 펀드 형태로 출시한 상품이다. 피델리티자산운용 측은 “수자원은 생활을 유지하고 반도체 등 각종 산업을 지속하는 데 필수 요소로, 도시화에 따라 수요가 확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매년 반복되는 가뭄에 대한 대비책이 마련되지 않는 한 물에 대한 수요가 꾸준히 증가할 것이라는 게 업계 분석이다.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2030년경 물 수요량이 공급량의 40%를 초과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영국 조사 분석 기관 글로벌 워터 인텔리전스(GWI)에 따르면 세계 물 산업 시장은 오는 2024년까지 연평균 3.4%씩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2020년 기준 약 500조 원 수준으로 추정되는 세계 반도체 시장 대비 2배에 달하는 규모다.

다만 투자상품 가격이 사상 최대치로 치솟은 만큼 조정기를 거칠 수 있다는 조언도 나온다. PHO ETF를 비롯해 대다수 물 관련 ETF나 펀드가 설정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의 가격까지 상승해서다. 일각에서는 “잠시 조정을 겪더라도 여전히 상승세가 꺾인 것은 아니다”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한 자산운용사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전기차, 2차전지의 경우 케즘이라는 일시적 수요 정체를 겪기 전까지 꾸준히 상승하는 흐름을 보여왔다”며 “물 관련 투자 역시 가뭄에 대한 특단의 대책이 마련되거나 물관리업계가 레드오션으로 변화하지 않는 한 투자처로서 여전히 매력적이다”라고 강조했다.

박재원 한국경제신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