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장 칼럼] 투자자 주도 정치의 명암

입력 2024-09-26 17:48
수정 2024-09-27 00:40
올 들어 투자자들이 정치 아젠다를 좌우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지난 24일 더불어민주당이 금융투자소득세의 내년 시행 여부를 놓고 끝장 토론을 벌인 것이 대표적이다.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던 2020년만 해도 여야가 시행에 동의했지만, 국내 주식 투자자들이 흐름을 바꿨다. 2022년 정부와 여당의 입장을 돌려세운 데 이어 이제는 야당의 변화까지 이끌어낼 참이다.

2021년 이뤄질 예정이던 암호화폐에 대한 과세는 이달 다시 연기돼 2027년까지 6년 미뤄지게 됐다. 정부는 ‘준비 부족’을 말했지만 암호화폐에 투자하는 20~30대의 여론을 살폈다는 해석에 더 힘이 실린다. 2027년 대선이 예정돼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과세가 이뤄질 수 있을지 미지수다. 종합부동산세와 관련해서는 민주당 내에서도 1주택자에 대해선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자산에 대한 세금 부담 인하를 민주당이 ‘부자감세’라고 비판하던 과거에는 상상하기 힘들었던 모습이다. 투자자들, 금투세 이슈 등에 영향투자자들의 정치적 결집이 이 같은 변화를 이끌고 있다.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자산 가격 상승을 경험한 투자자들은 수익에 영향을 주는 정치권의 규제와 세금 부과에 한층 예민해졌다. 금투세와 관련한 주식 투자자의 격렬한 반민주당 정서에서 보듯, 자신이 어디에 투자하는지가 어떤 정치 세력이나 정치인을 지지할지를 결정하게 됐다. 지금까지는 지역이나 계층이 한국 정치에 영향을 미쳤지만 이젠 개인의 이익이 더 중요해졌다는 뜻이다.

정치는 결국 이해관계의 조율 과정인 만큼 ‘투자자 주도 정치’를 나쁘게 볼 수는 없다. 다만 이 같은 정치 문화가 불러올 새로운 균열에 대해 정치권은 미리 고민할 필요가 있다. 특히 최근 수년간 급격히 늘어난 해외 투자와 관련해서다. 투자 자산이 해외에 있는 만큼 이들은 각종 국내 정치 이슈에 대해 과거와 다른 시각을 가질 수밖에 없다. 서학개미는 정치 균열 부를 수도수출 대기업에서 일하며 자산의 대부분을 미국 주식이나 상장지수펀드(ETF)에 투자한 회사원을 가정해보자. ‘윤한(윤석열·한동훈) 갈등’이나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보다는 미국 정치권의 동향과 11월 대선 결과에 더 높은 관심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 대기업의 해외 투자 증가에 따른 낙수효과 감소와 내수침체 등 국내 경제 현안에 대해서도 자영업자와는 확연히 다른 이해관계를 가질 수 있다.

저출생에 따른 인구 감소와 저성장 등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더 많은 사회구성원의 관심이 필요하다. 하지만 국내에 투자 자산을 보유하지 않은 개인으로선 이런 문제에 관심을 둘 유인을 찾기 어렵다. 개인의 무관심은 정치적 양극화를 더 심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이 같은 균열을 해소하려면 국내 증시의 투자 수익률을 높여야 한다. 우리 국민이 자산을 지키기 위해 산적한 국내 과제 해결에 적극 동참할 동인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올 상반기 국내 투자자들은 미국 주식 보유액을 150억달러(약 21조원) 늘렸다. 같은 기간 개인투자자는 유가증권시장에서 11조5000억원을 순매도했다. 증시 ‘밸류업’은 주식 투자자의 수익률 제고뿐 아니라 정치 구조 개선을 위해서도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