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땅끝에 뿌리내린 100년 유산, 두 남자의 '무모함'에서 시작됐다

입력 2024-09-26 18:21
수정 2024-09-27 02:12

건축의 함수는 복잡하다. 우선 건축가의 상상력이 건축주의 마음과 맞아떨어져야 한다. 백지의 설계 도면과 컴퓨터 모델링으로 어느 정도 완성됐다고 해도 그건 겨우 시작에 불과하다. 건축물을 품을 땅과 그곳의 사계절, 주변 환경과의 조화, 재료 구성까지 건축의 과정은 온통 변수들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예술적인 설계안이 있더라도 구현하는 건 또 다른 얘기다. ‘사람이 머물고 쓰게 한다’는 태생적인 목적 때문에 좋은 건축은 언제나 실용성과 공공성, 안전성까지 담보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완공 시기도, 들어갈 예산도 완벽하게 예측하고 통제하기 어려워 우리는 건축이라는 장르를 종합 예술이라고 부른다.

여기 조금 이상한 건축주와 조금 더 이상한 건축가가 있다. 10년 전 경남 남해군 창선면의 땅끝에 우아한 곡선으로 사뿐히 내려앉은 기하학적 클럽하우스를 완성한 정재봉 사우스케이프 사장(83)과 조민석 건축가(57·매스스터디스 대표)가 그 주인공. 건물 두 동을 잇는 중앙 로비가 하늘과 바다를 향해 뻥 뚫린 이곳은 남해의 자연을 넉넉하게 품는다. 세계 어디에도 없던 골프장 클럽하우스 최초의 ‘오픈 로비’는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이 기꺼이 찾아가 보고 싶은 랜드마크가 됐다.

10여 년 전 두 사람은 이런 대화를 나눴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돈이 얼마나 더 들지 계산하지 않겠다. 그 땅에 오래도록 남아 이 아름다운 자연의 일부로서 존재하는 것만을 꿈꿀 뿐이다.”(정재봉)

“나는 골프가 뭔지 모른다. 그래서 더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병원 짓는다고 의사가 설계해야 하는 것도 아니지 않으냐.”(조민석)

그때의 정 사장은 대한민국 패션계의 르네상스를 선두에서 이끌던 한섬의 창업주였고, 조 건축가는 미국에서 막 돌아와 한국 건축계에 발을 들인 신예였다. 건축주는 패기와 열정과 창의성을 지닌 건축가를 믿었고, 건축가는 눈으로 직접 보고 발로 뛰는 건축주의 확실한 취향에 반했다. 물론 건축 과정은 지난했다. 거의 3년간 작업해 건축 모형까지 만들었던 첫 설계안은 물거품이 됐고, 다시 백지상태로 돌아가 작업했다. 완공 직후 이 건물은 ‘세계 100대 명품 골프장’이라는 전 세계 찬사와 함께 수많은 건축가와 디자이너가 찾아오는 걸작이 됐다.

10년이 지난 지금, 두 사람은 사우스케이프 클럽하우스 앞에서 오랜만에 조우했다. 한 건축주가 자신의 모든 걸 바친 장소에서, 그 꿈을 실현한 건축가와 함께 1박2일을 걸으며 회고했다. “한국에서 이런 건축 과정은 전무후무할 거예요. 우리 둘 다 그때 정말 회까닥했었으니까요.”"건축은 五感의 영역, 숫자보다 감각 믿어준 건축주 덕에 가능했죠"
사우스케이프 클럽하우스 건축이야기 기암절벽에 부딪치는 파도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
그 절경을 파노라마로 담은
기하학적인 클럽하우스

건축의 완성도를 결정하는 건
미적인 가치와 실용적 디자인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처럼
스토리를 담고 싶었다

조민석 건축가는 2013년 사우스케이프 클럽하우스 완공 이후 세계에서 주목하는 인물이 됐다. 베네치아 건축비엔날레에서 한국관 커미셔너로 황금사자상(대상·2014년)을 받았고, 올해 영국 서펜타인 파빌리온을 설계한 최초의 한국인 건축가가 됐다.

경남 남해에 사우스케이프를 완공한 이후 수많은 클럽하우스 설계 제안이 쏟아졌지만, 그는 고사했다. 앞으로도 하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사우스케이프 클럽하우스 건축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숫자가 아니라 감각과 경험을 믿는 건축주를 또 만날 가능성이 낮아서다. 그만큼 조 건축가에게 사우스케이프는 각별하다. 원하는 자재가 있으면 건축주와 함께 유럽 공장까지 날아가 공수해 오기도 했고 가구와 그림 하나까지 같이 골랐다. 건축주와 건축가의 관계는 건물을 하나하나 쌓아 올리며 소울메이트에 가까워졌다고.

청춘을 다 바친 회사 한섬을 매각한 4200억원을 고스란히 아무 연고도 없던 남해에 쏟아부은 정재봉 사장, 골프장에 발을 들여본 적도 없는 건축가를 낙점한 ‘무모한 도전’은 지금도 건축과 패션, 골프 업계에 ‘성공적인 기행’으로 회자되고 있다. 정 사장은 지난 10년간 한 주도 빠짐없이 주말이면 서울에서 비행기를 타고 사우스케이프를 찾는다.

▷10년이 지났습니다. 클럽하우스에 대한 두 분의 평가가 궁금합니다.

정재봉 “작품성은 의외성과 완성도로 결정돼요. 그런데 작품성만 따지다 보면 쓰임새가 많지 않은 곳들이 나오지요. 10년 동안 이곳에서 작품성뿐만 아니라 쓰임새까지 확인하려고 했어요. 지금도 여길 찾는 순간 사람들의 표정이 밝아지고, 전부 사진으로 담아 가느라 바빠요. 그만큼 인상적인 장소라는 거겠죠.”

조민석 “제가 설계한 건축물을 가끔씩 돌아보긴 하지만 여긴 멀어서 쉽게 오기 어려워요. 저는 운전을 하지 않습니다. 걷는 사람이거든요. SNS에 자주 사진이 올라와서 어떻게 변했나 확인하긴 했지만 실제로는 한 5년 만에 온 것 같은데, 정말 관리가 잘돼 있습니다. 건축은 시간성을 지니면서도 좋아 보여야 하는데 딱 그런 곳이죠.”

▷결과적으론 성공했지만, 프로젝트 시작부터가 모험이었습니다.

정재봉 “그럼요. 골프장 구경도 안 해본 건축가랑 도전한 거니까요. 사실 처음 건축 과정에선 골프 싱글 플레이어인 골프장에 능숙한 건축가를 만나기도 했었죠. 그런데 저는 경제성을 따지기보단 정말 오래 기억될 작품을 짓고 싶었거든요. ‘패션 리더’ 출신답게, 다른 곳과는 달라야 한다는 그런 마음이 컸어요. 조 건축가와는 이전에도 같이 일한 적이 있는데 정말 잘 통했고, 그래서 함께하게 됐습니다.”

조민석 “의사 면허가 있어야만 병원을 설계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골프장을 모르는데 어떻게 클럽하우스를 짓느냐’는 비난 섞인 말도 있었어요. 그때 말했죠. ‘모르니까 새로운 걸 시도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요.”

아무리 잘나가는 건축가라도 해본 적 없는 용도의 건축물을 설계하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무턱대고 나섰다가 경력에 흠만 날 수 있기 때문이다. 조 건축가에겐 골프장 클럽하우스가 딱 그랬다. 그는 왜 자신의 ‘건축 경로’에서 벗어난 골프장 클럽하우스를 지어보겠다고 나선 걸까.

▷설계 경험이 없는 골프장 클럽하우스 프로젝트를 맡은 이유가 궁금합니다.

조민석 “경관이 너무 아름다웠어요. 정말 자연 그 자체니까요. 이 프로젝트에 나선 건 정말 아무것도 없는 땅에, 서울에서 이렇게 먼 곳까지 사람들이 오게 만드는 건축을 하고 싶다는 명분이 컸어요. 오페라하우스 하나로 호주 시드니가 전 세계 지도에서 중요한 포인트가 된 것처럼, 그런 영감을 주는 스토리를 심을 수 있는 일이었던 거죠. 하지만 앞으로 클럽하우스를 다시 설계하는 일은 아마 없을 거예요.”

▷건축주에 대한 믿음도 커 보입니다.

조민석 “사실 많은 건축주가 예술작품을 짓겠다고 하지만, 멋있어 보이려고 하는 말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정 사장님과 대화를 나눠보니 ‘정말 진심이구나’ 싶었어요. 어렴풋하게 떠올린 예술적인 건물을 구현하기 위해 하나하나 그림을 그려보고, 필요하면 직접 발품 팔아 공부하는 점도 좋았어요. 미술로 말하자면 컬렉터 중에 남의 말을 따라 유명한 그림만 소장하는 사람이 많은데, (정 사장은) 자신의 취향과 안목이 정확했어요.”

▷건축가들이 바라는 이상적인 건축주란 뜻인가요.

조민석 “그럼요. 우리나라에서 이런 환경에서 일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아무래도 패션으로 일가를 이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옷감을 하나하나 만져보고, 고쳐보고, 또 눈으로 판단해온 감이 있는 거죠. 대부분의 건축주는 숫자만 보고 결정하지만, 건축이란 보고 만지며 오감으로 느껴야 하는 장르예요.”

정재봉 “상상만 하는 건 착오가 있기 마련이잖아요. 직접 경험해봐야 판단이 서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청색 대리석으로 마감한 바닥재처럼 ‘에지’ 있는 소재들을 고를 수 있었던 이유죠. 옷을 만들 때를 생각해 보세요. 옷 한 벌 만드는 데도 수십 번 수백 번 고치고 또 고치고, 마음에 들 때까지 수정합니다. 그게 모든 명품, 모든 디자인의 기본이라고 생각합니다. 건축도 다르지 않다고 느꼈어요. 어떻게 첫 설계도처럼 상상한 대로 정확하게 차질 없이 구현할 수 있겠어요? 똑같은 걸 찍어내는 공산품도 아니잖아요.”"눈 앞의 바다가 절경인데 유리 너머로 보긴 아쉽지 않나…그렇게 탄생한 게 오픈로비"
'굿파트너'가 된 두 남자의 이야기 건축가는 리우 미술관처럼 웅장한 형태 구상
화려한 설계만큼 실용성을 중시한 건축주
3년 가까이 걸린 첫 설계안은 그대로 무산

사계절 내내 온화한 남해의 자연 한껏 살려
하늘과 바다 향해 뚫려있는 야외 로비 설계

건축은 지난함을 견디며 결과로 가는 과정
존경하는 이들과 일할 수 있는 기회에 감사

두 사람이 알려진 것처럼 ‘영혼의 단짝’으로만 지낸 건 아니다. 사실 조 건축가가 구상한 사우스케이프 클럽하우스는 지금의 모습이 아니었다. 당초 공들여 추진한 설계는 건축주인 정 사장의 반대로 무산됐다. 이날 아무한테도 보여준 적 없다며 정 사장이 꺼낸 원안 설계도와 모형을 본 조 건축가는 “그때 정말 망연자실했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정 사장은 완성되지 못한 설계 모형을 사우스케이프에 진입하는 대로 옆에 그대로 놓아뒀다. 비록 이번엔 실패로 끝났다 하더라도 그 과정까지 실패인 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우스케이프가 2013년보다 앞서 문을 열 수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조민석 “처음 설계안으로 2년7개월 동안 건축허가도 받고 공사 견적까지 다 냈는데 무산됐어요. ‘다시 만들어보자’는 건축주의 한마디를 들으면서죠. 솔직히 말하면 사흘을 끙끙 앓았어요. 연애에 비유할 수 있는데, 한창 꽂혀서 사귀다가 헤어지고 다시 시작하게 된 거죠. 아직도 기억나요. 한 번 만나면 5~6시간 미팅하는데, 의견이 안 맞아서 확 뛰쳐나가 담배 한 대 피우고 들어와 다시 논쟁하고, 설득하고 그랬어요.”

정재봉 “골프 코스는 거의 다 만들었는데 정작 클럽하우스는 오픈을 못 하게 됐어요. 건축주 입장에서 건축비도 문제지만 들인 시간이 얼마나 아깝겠어요. 그래도 쫓기는 만큼 오래 고민하지 않았어요. 제대로 지어야 한다는 생각이었으니까요. 보통은 그런 경우 건축가를 새로 공모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작업 과정에서 함께 방향을 수정하고 다시 맞춰가는 게 옳은 일이라고 생각했죠.”


▷원안이 궁금합니다. 얼마나 파격적이었나요.

조민석 “처음 이곳은 정말 아무것도 없는 순수한 자연 그대로였어요. 그래서 최소한의 건축적 개입을 하려고 했죠. 건물을 땅에 펼치는 대신 홍콩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처럼 이른바 ‘힐리베이터’(언덕+엘리베이터)를 사선으로 설치하는 형태를 구상했어요. 클럽하우스가 마치 산을 자른 다음에 돌려서 갖다 붙인 것처럼 웅장한 모습이 됐죠.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오스카 니마이어가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 지은 리우 현대미술관처럼요.”

정재봉 “거대한 바윗덩어리가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보여요. 멀리서 봐도 신전처럼 웅장했죠. 사실 작품성은 그 어느 설계보다 뛰어난데, 실용성 면에서 물음표가 있었어요. 골프장 클럽하우스인데 건축에 너무 힘을 준 것 같달까. 건물 자체로만 보면 화려한 복합리조트처럼 보였어요.”

▷그렇게 나온 대안은 힘을 빼고 ‘오픈 로비’라는 실험을 더한 건가요.

조민석 “완전히 방향을 틀어서 여섯 개의 새로운 설계안을 그려 갔어요. 그중에서 정 사장이 고른 안이 바로 지금 모습이었죠. 경제성을 고려해 쉽고 빠르게 지을 수 있는 단순한 안도 건넸는데, 난도가 상당한 대안을 고르는 걸 보면서 정말 좋았어요. ‘아, 건축주가 정말 특별한 작품을 원해서 다시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오픈 로비’를 두고 말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정재봉 “사람들이 이 설계를 보면서 ‘바깥에 있는 로비가 세상에 어디에 있느냐’고 성화였어요. 가만히 생각해보면 로비로 들어간다는 건 하나의 습관일 뿐이지 반드시 안에 있으란 법은 없지 않겠어요? 업무 보는 공간은 리셉션뿐인데, 분리하면 되는 거니까요. 그런 개념을 건축에 심은 거죠. 생각을 바꾸니 멋진 장면으로 다가왔습니다. 서울과 달리 남해는 겨울에도 춥지 않은, 사계절 온화한 곳이니까 ‘한번 해보자’고 외쳤어요. 이 앞에 펼쳐진 바다가 장관인데, 유리 너머로 보면 느낌이 살지 않잖아요.”

치열한 고민 끝에 ‘여백의 미’가 돋보이는 클럽하우스 설계가 완성되면서 두 사람 곁에 또 다른 대가들이 합류했다. 조 건축가가 클럽하우스에 집중하면서 조병수 건축가가 호텔을 맡고, 정영선 조경가가 전체적인 분위기를 살릴 조경에 나섰다. 정 조경가는 클럽하우스와 호텔을 잇는 공간에 놓인 거대한 바위에 꽃과 풀을 심은 암각 동산을 만들어 원초적인 자연의 멋을 살렸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최근 막을 내린 정 조경가의 개인전 포스터를 장식해 눈길을 끈 바로 그 바위다.


▷처음 계획은 아니지만 여러 예술가가 참여한 프로젝트가 됐네요.

조민석 “유기적으로 참여 인원이 불어난 거죠. 정 사장이 호텔을 맡을 새로운 건축가를 모셔 왔는데, 조병수 건축가였어요. ‘역시 건축주다’ 싶었죠. 제가 존경하는 건축가니까요. 그래서 제가 조경을 맡아줄 정 조경가를 모시고 왔어요. 오로지 곧 완성될 결과물을 중심으로 철저하게 프로젝트를 바라보고, 건축가의 의견에 귀 기울여 심사숙고하니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10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또다시 도전하시겠어요?

정재봉 “글쎄요. 저는 이 건물 외에 다른 생각은 안 해봤어요. 정말 그땐 회까닥한 거죠. 만약 골프장을 짓지 않았다면 계속 패션을 하지 않았을까요. 그래도 개관식에서 전 세계 100위 안에 드는 골프장을 짓겠다고 한 약속은 지켰네요.”

조민석 “덕분에 저도 같이 회까닥했네요. 건축은 지난함을 견뎌내며 결과로 향하는 과정이 중요해요. 그런데 인생은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일만 하기에도 짧아요. 그래서 존경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과 일하는 게 좋아요.”

조각 천재 미켈란젤로는 로렌조 메디치의 뒷바라지로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다. 영화 거장 마틴 스코세이지는 리어나도 디캐프리오를 페르소나 삼아 세계관을 그렸고, 스티브 잡스의 미니멀리즘 철학은 디자이너 조너선 아이브의 손을 거쳐 아이폰으로 구현됐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 10년도 더 된 작업 과정을 어제 일처럼 회고하는 건축주와 건축가의 호흡은 위대한 예술이 혼자만의 힘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하는 것처럼 보였다.

남해=김보라/유승목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