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이슬·처음처럼 딱 기다려"...'카스 짝궁' 등판 예고에 '들썩'

입력 2024-09-29 14:42
수정 2024-09-29 14:50
[비즈니스 포커스]



기업명에서도 나타나듯이 오비맥주는 오랜 기간 ‘맥주’ 한 우물만 판 끝에 국내 시장을 평정했다. 다른 경쟁사들이 종합 주류기업을 목표로 내걸고 소주와 맥주 등을 넘어 와인, 위스키 시장에 진출했을 때도 오비맥주는 오로지 맥주 포트폴리오를 강화하는 데에만 집중해왔다.

카스를 필두로 매년 다양한 해외 맥주와 수제 맥주 등을 선보이며 현재 국내에서 50%가 넘는 맥주 시장점유율을 기록 중이다. 사실상 적수가 없는 맥주 시장의 독보적인 최강자다.

이런 오비맥주가 ‘맥주 전문기업’ 탈피를 선언했다. 소주를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겠다고 선언하고 출사표를 던진 것이다. 정체 국면인 국내 맥주 시장의 흐름 속에서 지지부진한 실적을 개선하기 위해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하이트진로와 롯데칠성음료가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는 소주 시장에 판도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지 주목된다.

오비맥주는 신세계그룹 주류 계열사인 신세계L&B가 운영하는 ‘제주소주’를 인수합병하기로 했다. 이르면 연내 본계약을 체결한다. 오비맥주가 맥주 이외의 사업에 뛰어드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오비맥주는 현재 제주소주의 생산 용지와 설비, 지하수 이용권 등을 양도받기로 했다. 구체적인 인수 금액은 공개하지 않았다.
소주 수출로 실적 반등 노린다
오비맥주가 이번에 인수한 제주소주는 지방 소주 기업이다. 이마트가 소주 사업 진출을 선언하고 2016년 190억원을 들여 손에 쥐며 신세계그룹 소속이 됐다. 당시만 해도 제주소주는 큰 기대를 모았다. 이마트가 전국 유통망을 앞세워 소주를 판매하겠다고 밝히면서 참이슬과 처음처럼이 양분하고 있는 소주 시장에 상당한 파급력을 일으킬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오기도 했다.

또 당시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신제품(푸른밤 소주) 출시까지 진두지휘하며 ‘정용진 소주’로 이슈몰이에도 성공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는 처참했다. 푸른밤의 경우 출시 초반 반짝인기를 누렸으나 오래가진 못했다.



소비자들에게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한 채 시장 안착에 실패하고 만다. 제주소주는 결국 자본잠식에 빠졌고 야심 차게 출시했던 푸른밤도 2021년 결국 생산을 멈췄다. 신세계그룹에서 운영하는 동안 누적 영업손실만 약 430억원에 달해 그룹의 ‘골칫거리’로 전락했다.

오비맥주가 적자에 허덕이는 제주소주를 인수한 이유는 해외에서 갈수록 높아지는 소주의 인기 때문이다. 제주소주는 현재 국내 소주 사업을 완전히 중단하고 해외사업만 하고 있다. 과일소주를 생산해 베트남, 싱가포르, 태국 등 동남아 국가에 수출 중이다. 제주소주의 수출물량은 연 60만 병 정도로 추정된다.

현재 제주소주의 해외 매출액은 10억원 정도에 불과하다. 다만 글로벌 시장에서 급증하는 소주의 인기를 감안할 때 적극적인 마케팅 등을 앞세워 해외 시장 공략에 집중할 경우 현재보다 훨씬 매출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오비맥주의 설명이다.

실제로 한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지난해 소주 수출액은 2013년 이후 10년 만에 1억 달러를 돌파하기도 했다. 하이트진로와 롯데칠성음료도 한국 소주의 인기로 인해 매년 해외 소주 매출이 급증하는 효과를 누리고 있다. 오비맥주 관계자는 “국내 소주 시장이 아닌 해외 시장으로의 선택과 집중을 통해 소주 사업을 키워나갈 것”이라고 했다.

맥주 수출을 끌어올리겠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 오비맥주의 경우 전체 매출은 약 1조5000억원인데 이 중 90% 이상이 국내에서 발생한다. 제주소주의 해외 네트워크를 활용해 주력 상품인 카스의 해외 판매 확대까지 늘리겠다는 게 오비맥주의 목표다. 제주소주는 제조자개발생산(ODM) 방식으로 과일소주를 위탁 생산해 동남아 지역에 수출하고 있다.

일각에선 제주소주가 헐값에 매물로 등장한 것도 오비맥주가 인수를 결정하게 된 이유로 꼽는다.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제주소주의 총자산은 149억원, 총부채는 211억원으로 자본잠식 상태다. 제주소주의 매각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금의 재무 상황을 감안하면 신세계그룹이 인수한 금액(190억원)에 훨씬 못 미치는 가격에 오비맥주가 제주소주를 넘겨받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 시장 진출은 미지수
오비맥주가 제주소주를 앞세워 국내 소주 시장에 진출할지 여부에도 이목이 쏠린다. 오비맥주는 “당장은 국내 소주 시장에는 진출할 계획이 없다”며 선을 긋고 있다. 하지만 주류업계의 예상은 다르다. 오비맥주의 내수 시장 진출은 시간 문제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국내 소주 시장은 신규 업체의 진입장벽이 높다. 소주 사업을 하기 위해선 국세청으로부터 주류 제조 면허를 받아야 한다. 다만 국세청은 시장의 과당경쟁을 막기 위해 면허 발급을 제한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사실상 신규 면허를 발급받는 것이 사실상 불가한 상황이다. 즉 소주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선 기존 업체를 인수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한 주류업계 관계자는 “인수가 완료되면 오비맥주는 제주소주의 면허를 활용해 소주 사업에 나설 수 있게 되는 만큼 국내에서도 이를 활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진단했다.

대형 주류회사가 소주 제조면허를 손에 쥔 만큼 소주 시장의 판을 흔들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신세계보다 소주를 시장에 안착시킬 수 있는 역량도 뛰어나다. 특히 소주는 가정 시장보다 유흥 시장을 뚫는 것이 중요한데 오비맥주는 카스를 앞세워 이미 전국 단위의 촘촘한 유흥 시장 유통망을 확보했다. 소주 신제품을 출시할 경우 빠른 영향력 확대가 가능하며 유흥 시장점유율 40%가 넘는 맥주 카스와 연계해 다양한 마케팅도 시도할 수 있다.

물론 당장은 어렵다. 현재 제주소주가 가진 소주 브랜드가 전무한 만큼 신제품 기획부터 개발까지 하나하나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최소 6개월에서 1년이라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오비맥주가 국내 시장 진출을 결정하더라도 이르면 내년 말이나 돼야 본격적인 생산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일각에서는 오비맥주가 밝힌 것처럼 국내가 아닌 해외 소주 시장 공략에만 집중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하이트진로(참이슬·진로), 롯데칠성(처음처럼·새로) 등이 보유한 소주 브랜드 파워가 워낙 강력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오비맥주라도 뒤늦게 후발주자로 뛰어들어 이들을 상대하기란 쉽지 않다. 돈도 많이 든다. 제주소주의 생산설비 등이 선두 사업자들과 경쟁할 만한 수준이 아닌 만큼 신규 공장 건설이나 기존 공장 증설이 필요하다. 신제품 출시 개발 및 마케팅 비용도 드는 만큼 만약에 국내 소주 사업이 부진하기라도 한다면 안 그래도 하락세인 실적이 더 고꾸라질 수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국내 소주 브랜드들은 오랜 기간 사업을 영위하며 수많은 충성고객을 확보했다”며 “국내에서 이들과 경쟁하는 것 보다 이제 막 소주를 즐기기 시작한 해외 시장에 집중하는 것이 오비맥주의 소주 사업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방법”이라고 분석했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