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발(發) 침체를 겪은 문구업체들이 ‘필기구 패러다임’ 변화에 맞물려 실적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태블릿PC 등 대체재가 보편화하면서 “터널 끝이 안 보인다”는 위기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설상가상 ‘티메프 사태’ 여파로 영세 문구업체의 주요 공급처인 온라인몰까지 위축되며 업계는 벼랑 끝에 내몰리고 있다.
25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문구업계 대표 주자 모나미는 올 상반기 연결 기준 18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상반기 매출도 665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약 11% 줄었다. 모나미 관계자는 “효율적인 경영을 위해 사업체계를 정비하는 상황에서 고금리·고물가·고환율의 영향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모닝글로리의 상황도 비슷하다. 모닝글로리 관계자는 “공시하지 않았지만, 올 상반기 실적이 전년을 밑돌았다”며 “엔데믹 이후 회복될 것으로 예상했는데 매출이 나아지지 않고 있다”고 우려했다. 모닝글로리의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429억원, 6억원에 그쳤다.
업계에선 필기구의 대체재가 급부상한 점을 실적 부진의 주요 원인으로 꼽는다. 온라인 수업 등이 확대되면서 학교에서 노트와 문구 대신 태블릿PC 등 전자 기기를 활용하는 비중이 높아졌다. 한국갤럽에 따르면 10대의 태블릿PC 보유율은 2021년 27%에서 지난해 61%까지 뛰었다. 20대의 태블릿PC 보유율은 55%에 달했다. 업계 관계자는 “대면 수업이 늘어나도 전자 기기로 PDF 파일을 공유하며 수업을 듣는 방식이 자리잡았다”며 “주 고객층인 학령인구 감소와 경기 침체라는 기존의 악재와 겹쳐 ‘삼중고’를 겪고 있다”고 했다.
온라인몰에 진출하며 체질 개선에 나섰던 영세 문구업체들의 사정은 더 심각하다. 통계청의 온라인시장조사에 따르면 온라인 문구·사무 용품 거래액은 2022년 1조874억원에서 지난해 1조9171억원으로 두 배 가까이로 증가했다. 하지만 티메프 사태 이후 폐업하는 소형 온라인몰이 늘면서 영세 업체들의 설 자리는 좁아지고 있다. 지난 6월 폐업한 문구몰 바보사랑에 이어 디자인쇼핑몰 1300k가 오는 30일 서비스 종료를 선언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한 문구업체 대표는 “불경기에 매출을 최대한 늘리려면 한 곳이라도 더 거래처를 뚫어야 한다”며 “온라인몰 폐업으로 물건 대금을 받지 못하는 위험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감수해야 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문구점 등 핵심 오프라인 채널도 줄어드는 추세다. 한국문구유통협동조합이 올해 조사한 결과 2019년 9468곳에 달한 문구점은 올해 약 7800곳으로 20%가량 줄었다.
원종환 기자 won040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