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천지인데…K테마파크 글로벌 순위 뚝 떨어진 이유[안재광의 대기만성]

입력 2024-10-09 09:48
수정 2024-10-09 09:48


얼마 전에 서울 잠실 롯데월드에 다녀왔습니다. 아침 10시에 ‘오픈런’을 하기 위해서 9시쯤 갔는데요. 이미 긴 줄이 있었습니다. 문이 열리고 거의 뛰다시피 해서 가장 인기 있는 롤러코스터인 ‘아틀란티스’로 갔습니다. 그런데 여기도 벌써 줄이 있었어요. 그래도 고작 한 시간 기다려서 탔습니다. 예전에 세 시간이나 기다린 기억이 있어서 이것만 해도 감지덕지했습니다. 이후엔 온통 다 줄이었고요. ‘카트라이더’ 같은 시시한 놀이기구 타는 데도 한 시간 가까이 기다려야 했습니다.

줄 서 있는 동안 놀랐던 사람이 많았다는 것, 그리고 그중 외국인 비중이 굉장히 높았다는 것입니다. 외모는 한국 사람 같은데 외국어 하는 분들도 꽤 있었어요. 체감상 30%는 될 것 같았습니다. 테마파크에도 한류 바람이 불어서 ‘K테마파크’로 불러도 되겠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마침 세계 테마파크 순위가 최근 나왔는데요. 기대했던 것과 다르게 롯데월드, 에버랜드의 순위는 뚝 떨어졌습니다. 세계 테마파크 시장은 대체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살펴봤습니다.

◆지난해 세계 테마파크 방문객 수 23% 늘어

한국에는 테마파크 일대장과 이대장이 있죠. 에버랜드와 롯데월드입니다. 세계테마파크엔터테인먼트협회(TEA)와 글로벌 컨설팅업체 아에콤(Aecom)에 따르면 일대장인 에버랜드엔 지난해 588만 명이 방문을 했습니다. 방문객 수 기준으로 세계 19위에 해당합니다. 20위 안에 들었으니 이 정도면 잘했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죠. 그렇지 않습니다. 에버랜드는 2022년에 16위였습니다. 순위가 세 계단이나 떨어졌어요. 롯데월드는 더 떨어졌습니다. 기존에 17위였는데 23위로 다섯 계단 미끄러졌습니다. 작년 방문객 수는 519만 명이었고요.

두 테마파크 모두 방문객이 전년에 비해 늘었습니다. 에버랜드는 1.9%, 롯데월드는 14.8% 증가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위가 크게 밀린 것은 다른 테마파크가 훨씬 더 잘했다는 의미일 겁니다. 특히 중국과 일본의 테마파크가 엄청났어요. 예컨대 5위를 차지한 상하이 디즈니랜드는 방문객 수가 무려 164%나 폭증했습니다. 2022년에 530만 명이었는데 작년엔 1400만 명으로 뛰었어요. 15위인 베이징 유니버설스튜디오도 기존에 430만 명에서 900만 명으로 두 배 이상 늘었고요.

일본도 볼까요. 오사카 유니버설스튜디오가 30% 가까이 늘었고 도쿄 디즈니랜드도 25%가량 증가했습니다. 세계 25대 테마파크의 지난해 방문객 수 증가율이 23%였는데요. 에버랜드와 롯데월드는 여기에 한참 미치지 못했던 겁니다.

에버랜드, 롯데월드는 왜 평균도 못했을까요.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요. 가장 큰 것은 투자를 잘 하지 않았어요. 에버랜드는 테마파크치곤 탈 거리, 이걸 어트랙션이라고 하는데요. 어트랙션이 빈약하다는 지적을 계속 받고 있어요. 그나마 국내서 가장 유명한 롤러코스터 ‘티익스프레스’로 버티고 있는데요. 이것 이외에는 딱히 개성 있는 어트랙션이 없어서 뭘 타기 위해 방문한다면 에버랜드가 좋은 선택지는 아닙니다. 그나마 작년까진 푸바오 열풍 덕분에 먹고살았는데요. 올해는 푸바오가 중국으로 돌아가서 방문객을 끌어 모으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에버랜드는 접근성도 안 좋아요. 이건 어쩔 수 없는 한계죠. 경기도 용인에 있어서 차가 없으면 가는 게 쉽지 않죠. 시간이 촉박하고 이동수단도 제한적인 외국인 관광객 입장에선 에버랜드 가는 게 굉장히 부담될 겁니다. 단체 버스로 이동하는 게 사실상 유일한 대안이고요. 호텔이나 리조트가 잘되어 있으면 그나마 더 갈 텐데 그렇지도 않죠. 에버랜드와 붙어 있는 캐빈 호스텔은 방 잡는 게 하늘의 별 따기고요. 인근에 라마다, 골든튤립 같은 호텔이 있긴 있는데 여긴 걸어서 갈 거리는 아닙니다. 디즈니와 유니버설이 테마파크 주변으로 대규모 호텔, 리조트를 개발한 것과는 완전 딴판이죠. 에버랜드도 당연히 이 문제를 잘 인식하고 있고요. 대규모 리조트를 세우려고 여러 번 시도 했지만 번번이 좌절됐습니다.

롯데월드는 에버랜드에 비하면 접근성이 훨씬 좋죠. 또 비교적 최근에 지어져서 시설도 에버랜드보다는 조금 낫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특히 에버랜드엔 없는 ‘자이로드롭’ 같은 낙하형 어트랙션도 있고요. 롤러코스터도 아틀란티스 이외에 ‘후렌치 레볼루션’이나 ‘혜성특급’도 있어서 다양성 면에서도 더 높은 평가를 받습니다. 하지만 새롭게 시도한 어트랙션이 번번이 잘 안되면서 한계도 보이고 있어요. 예컨대 작년에 새롭게 선보인 ‘배틀그라운드’가 대표적인데요. 국내 인기 게임을 체험형 어트랙션으로 바꿔서 큰 기대를 모았는데요. 기대에 비해 평가는 좋진 않았습니다. 넥슨 게임 ‘카트라이더’ 어트랙션은 더 평가가 안 좋았고요. 서울에 있다는 게 장점이면서 단점이기도 합니다. 개발할 수 있는 땅이 제한적이라 시설을 더 확장하기 어려워요. 새 부지를 확보하는 것도 어렵지만 주변이 다 아파트와 오피스여서 인허가 받는 것도 굉장히 까다롭죠.

◆中·日 테마파크 대규모 투자 잇달아

에버랜드와 롯데월드가 경쟁하고 있는 중국, 일본 테마파크는 상황이 완전히 다르죠. 대규모 투자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상하이 디즈니랜드는 작년에 ‘주토피아 랜드’를 새로 열었습니다. 전 세계 디즈니랜드 가운데 처음으로 주토피아를 테마로 한 것이었어요. 주토피아는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인데요. 주토피아 랜드가 엄청나게 흥행을 해서 현재 또 다른 테마로 확장을 준비 중이라고 합니다.

중국은 정부 차원에서 테마파크 사업을 지원합니다.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데 도움이 되고 또 중국의 문화를 외국인들에게 알리는 데 좋거든요. 예컨대 중국 판다와일드 같은 회사는 정부의 지원을 받아서 지난해 장쑤성에 40억 위안(약 7500억원)을 들여 새 테마파크를 지었어요. 중국의 신화와 역사를 테마로 했다고 합니다.

일본도 테마파크 산업에 많은 투자가 이뤄지고 있어요. 세계 3위 유니버설스튜디오 재팬이 그렇습니다. 코로나가 한창 때였던 2021년에 세계 최초로 ‘슈퍼 닌텐도 월드’를 열었어요. 닌텐도의 지식재산, IP를 테마파크에 활용한 첫 사례였습니다. 슈퍼마리오가 주된 테마이고요. 슈퍼마리오 팬들이 당연히 열광했습니다. 추가로 닌텐도의 또 다른 IP ‘동키콩’을 테마로 한 구역이 조만간 문을 열 예정이라 더 많은 사람들이 몰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7위 도쿄 디즈니씨도 지난 6월에 ‘판다지 스프링스’를 추가했는데요.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겨울왕국’, ‘라푼젤’, ‘피터팬’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일본은 최근 엔저 영향으로 해외 관광객이 엄청나게 밀려들고 있죠. 올 들어 6월까지 외국인 관광객은 총 1778만 명에 달했는데요. 일본 정부는 올해 연간으로 사상 최대인 3500만 명이 방문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외국인 관광객 가운데 한국인은 약 25%나 차지합니다. 한국 분들도 엄청나게 일본에 가고 있어요. 에버랜드, 롯데월드 안 가고 도쿄 디즈니나 오사카 유니버설 가는 분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물론 에버랜드와 롯데월드도 노력을 하고 있죠. 게임, 드라마, 영화 같은 ‘한류’ 문화를 콘텐츠로 풀어 보려고 하는 것인데요. 에버랜드의 경우 넷플릭스의 인기 시리즈 ‘지금 우리 학교는’ 콘셉트로 공포 테마존을 선보였습니다. 롯데월드도 지난봄에 네이버웹툰인 ‘세기말 풋사과 보습학원’을 테마로 공원을 꾸미기도 했죠. 이런 시도를 앞으로 계속 할 것으로 보입니다.

정부는 연간 관광객 2000만 명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작년에 1100만 명이 다녀갔으니까 거의 두 배의 목표인데요. 이걸 달성하기 위해선 즐길 게 있어야 하겠죠. 테마파크가 그중 하나고요. 사실 이미 그 역할을 많이 하고 있긴 합니다. 작년에 한국에서 가장 많은 방문객을 기록한 곳 1위가 778만 명의 순천만습지였고요. 2위가 에버랜드였어요. 경복궁보다 많았습니다. 롯데월드도 5위를 기록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 더 역할을 해주길 바라는 맘이 듭니다. 삼성과 롯데가 테마파크 사업을 그룹의 주력까지 아니어도 주요 사업으로 정해서 전폭적인 투자를 한다면 세계 톱10 안에 드는 날도 오지 않을까요.

안재광 한국경제신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