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 학생들의 서울대 입학률은 평균의 2.5배 수준이다. 고학력, 고소득 부모를 둔 학생들의 입학 가능성이 과거에 비해 높아졌다. 입시 제도 변화를 통해 사회 계층의 고착화를 막고자 한 시도가 효과적이지 못했다는 점을 시사한다.”
한국은행은 최근 ‘입시 경쟁 과열로 인한 사회 문제와 대응 방안’ 보고서에서 주요 상위권 대학이 ‘지역별 비례 선발제’를 도입해 학생을 선발할 것을 제안했다. 강남 등 서울 일부 지역의 과도한 입시 열기가 ‘나쁜 균형’의 악순환을 이루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이 보고서 발표식에 참석해 “강남 지역 입학생 비율이 학령 인구 비율의 일정 수준을 넘지 않도록 조정하면 사교육이 전국으로 분산되고 대학은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다”며 “이렇게 되면 한은이 금리를 조정하는 것보다 수도권 부동산 가격이 더 안정될 것”이라고 말했다.강남 살면 명문대 간다
첫머리에 소개한 서울대 입학생의 강남 편중 현상에 관한 지적은 이번 한은 보고서에 담긴 것도 아니고, 이 총재가 발표식에 참석해 한 말도 아니다. 이 문장의 출처를 찾으려면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해 이창용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김광억 인류학과 교수, 김대일 경제학부 교수, 서이종 사회학과 교수 등이 공동으로 집필한 ‘입시제도의 변화: 누가 서울대학교에 들어오는가?’라는 논문이 그것이다.
이들은 1970년부터 2003년까지 서울대 사회과학대 소속 9개 학과 학생들이 작성한 학생 카드의 내용을 중심으로 논문을 썼다. 고교 비평준화 시절인 1970년대엔 우수 지역 학생들이 서울 명문고로 몰리면서 서울 지역 출신 입학생 비율이 60%에 달했다. 고교 평준화가 자리 잡고 고교 내신 제도가 도입된 1982년 이후로는 이 비중이 약 40%대로 낮아졌지만 소위 강남 8학군으로 불리는 지역의 입학률은 상승했다. 1980년대 이후 강남 지역의 서울대 입학률은 전국 평균의 2.5배에 달했다.
부모 학력이 입학률에 미치는 효과도 뚜렷했다. 아버지 학력이 대졸인 수험생의 입학률은 고졸 대비 3.9배(2000년)로 나타났다. 1985년 2.4배에서 큰 폭으로 상승했다. 이 같은 부모 학력 요인을 통제하고 지역별 입학률을 다시 분석해보니 ‘강남 불패’는 더 눈에 띄었다. 다른 지역에선 입학률 차이가 대부분 사라졌지만 강남 8학군의 서울대 입학률은 학력 요인을 통제하고도 다른 지역보다 20% 넘게 높았다.한발짝도 못 나아간 교육개혁21년 전 ‘이창용 교수’가 분석한 현실은 최근 ‘이창용 총재’가 다시 들여다본 현실과 다르지 않았다. 강남에 사는 것이 입시 프리미엄으로 작용해 서울대 등 상위권 대학 입학률을 높이는 현상은 오히려 심화했다.
이 교수는 지역별로 다양한 자립형 고교를 허용하고 수업료를 자율화하자는 해법을 내놨다. 지역 명문고를 키워 강남 집중 현상을 깨보자는 취지다. 이를 통해 전체 고교의 50% 정도가 자립형 고교가 된다면 특목고 입시 과열 등도 함께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이 교수의 이런 ‘온건한 해법’은 21년 후 강남 8학군 출신의 상위권 대학 입학을 통제하고 지역 학령인구에 비례해 입학생 비율을 할당하자는 이 총재의 ‘급진적인 주장’으로 진화했다. ‘적당한 해법’으로는 교육개혁이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는 것을 수십 년간 체감한 결과로 보인다.
이 교수는 논문에서 “교육이 사회 경제 발전에 미치는 영향은 20~30년의 시차를 가지고 나타난다”며 “조만간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썼다. 21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생산성 하락과 혁신의 정체는 당시의 정책 실패가 가져온 결과다. 인구가 감소하면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는 것이 더 절실해진 지금, 교육개혁을 미룬다면 반등의 기회는 영영 사라질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