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가치 높이는 ‘베스트 오너십’…정의선 회장, 2년 연속 1위

입력 2024-10-02 11:24
수정 2024-10-02 11:29
[커버스토리] 2024 베스트 오너십



밸류업(기업 가치 제고)이 화두다. 국내 주식 시장 저평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으로 공시제도 시행, 밸류업 지수 발표 등이 착착 진행되고 있다.

밸류업의 시작은 금융권이 이끌고 있으나, 밸류업의 성공을 위해서는 대기업의 참여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금융당국과 한국거래소는 대기업들의 적극적인 동참을 독려하고 나섰다. 반면 국내 전체 상장사 중 단 1%만이 밸류업 공시를 개시하는 등 아직 갈 길은 멀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대표 기업들도 주가순자산비율(PBR) 1배 이하가 대다수인 게 현실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023년 사업보고서 분석 결과 국내 10대 그룹(소속 상장사 전체) 중 PBR 1배 이상인 그룹은 HD현대, 삼성, LG 등 3곳에 불과했다. 자기자본이익률(ROE) 또한 현대자동차를 제외하고는 모두 5% 이하에 머물러 있다.

밸류업 성공, 대기업에 달렸다

낮은 PBR은 분자 대비 분모가 큰 상태라는 의미다. 분모 측면에서 자기자본이 과다하거나, 분자에서 성장성이 저해돼 있어 청산 가치보다 낮게 평가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과다한 자기자본이 지배주주의 이해관계와 얽혀 있을 가능성, 즉 자사주를 소각하지 않고 ‘백기사’ 등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시장의 신뢰를 떨어트린다. 여기에 낮은 ROE, 즉 이익 창출 능력이 떨어지는 현 상황이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요인으로 지적된다.

우리나라는 ‘소유’와 ‘경영’이 일치하며, 강력한 오너십을 행사하는 점이 밸류업을 먼저 성공시킨 일본과의 차이점이다. 여기에 한국은 전 세계 유일무이하게 ‘일반주주와 지배주주 간 이해상충’ 문제를 가지고 있다. 진정한 밸류업을 위해서는, 이 실타래를 풀어야 한다. 오너십의 중요성이 다시 한번 강조되는 대목이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지배주주가 주가 상승이나 기업 밸류업에 관심이 없거나, 극단적으로는 주가를 누르는 것으로 의심되는 사례가 최근에도 수차례 있었다”며 “가족경영이 꼭 나쁜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는 특히 ‘패밀리’들이 소유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고, 이 때문에 성장에 대해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지 못하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는 점이 문제”라고 말했다.

한경 머니가 실시한 ‘2024 베스트 오너십’ 결과는 실제 오너리스크가 기업 가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현실을 잘 보여준다. 경영권이나 지배구조 관련 이슈가 있는 기업들은 공통적으로 낮은 평가를 얻었다. 이를 해소하는 방향으로 의사결정을 한 지배주주는 예년에 비해 순위가 상승했다. 우리나라는 상장 기업 중 금융지주사, 포스코, KT&G를 제외하면 대부분 기업들이 지배주주를 두고 있다. 지금과 같이 기관투자가의 비중이 늘어나고 밸류업이 강조되는 시대에는 ‘장기적인 기업 가치 창출’에 초점을 맞춘 오너십이 각광받으며, 시장의 신뢰도 가져온다는 점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사법 리스크 벗어난 이재용 회장 2위로

항목별 세부 평가와 오너리스크 평가를 합친 ‘2024 베스트 오너십’ 종합 평가 1위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차지했다. 정 회장은 ‘경영 전문성’, ‘이해관계자 경영’, ‘오너리스크 증감’ 부문에서 모두 만점을 획득하며 압도적 1위에 올랐다. 정 회장은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베스트 오너십’ 1위 영예를 안게 됐다.

정 회장은 혁신적인 경영 전략을 통해 취임 3년 만에 현대차그룹을 글로벌 톱3 완성차 업체에 안착시켰다. 정 회장의 지휘 아래 현대차그룹은 매출액, 영업이익, 시가총액 등 주요 수치에서 모두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현대차는 대기업 계열 비금융 상장사 중 선도적으로 밸류업 신호탄을 쏘며, 내년부터 배당금을 25% 늘리고 자사주 약 4조 원을 매입해 일부 소각하기로 했다.

‘오너리스크’ 부문에서도 정 회장은 그룹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며 경영권 분쟁을 해소한 점, 사외이사를 적극 기용하는 등 이사회 독립성 및 투명성을 제고한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지배구조 개선, 경영 투명성 강화, 글로벌 시장에서의 리더십 강화 등이 호평으로 이어졌다. 반면 현대차그룹이 순환출자 구조를 완전히 해소하지 못한 점은 지배구조상의 우려점으로 언급됐다.

종합 평가 2위는 이재용 삼성그룹 회장이 차지했다. 특히 이 회장은 ‘이해관계자 경영’ 부문에서 최고점을 받아 공동 1위를 기록했다. ‘톱3’ 상위권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이 회장은 지난해 3위에서 한 단계 순위를 높여 2위에 안착했다. 특히 이 회장이 경영권 승계 관련 1심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으며 사법 리스크를 해소하고, 경영의 안정성을 확보한 점에서 LG를 제치고 2위로 올라선 것으로 분석된다.

이 회장은 지속적인 지배구조 개선 노력을 이어 가고 있다. 특히 준법감시위원회 설치, 이사회 독립성 강화, 사외이사 역할 확대 등 지배구조 독립성·투명성 제고 노력에 힘을 기울인 점이 높은 점수로 이어졌다. 이 회장은 삼성의 글로벌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며 협력사, 소비자, 지역사회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이익을 고려한 경영 방침을 추구하고, 지속 가능한 경영을 위한 여러 정책을 시행해 왔다. 삼성전자는 3년마다 새로운 주주 환원 정책을 공개하며, 꾸준히 배당금을 높여 왔다. 반면, 메모리 반도체 업황이 회복되는 가운데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차세대 사업 투자를 실기한 점이 오너리스크 증가 요인으로 언급되기도 했다.



지난해 2위를 차지했던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올해 종합 3위로 밀려났다. 부문별 점수에선 ‘지배구조 투명성과 책임성’ 부문에서 만점을 받아 공동 1위를 차지했다.

구 회장은 여러 내부 갈등을 해결하는 노력을 보이면서도, 지배구조 개선과 책임 경영을 통해 조직 분위기를 역동적으로 쇄신하고 안정성과 신뢰성을 높인 점에서 주목받았다. 구 회장은 혁신적인 사업 확대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강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와 함께 장기적인 성장 동력 확보 전략으로 ‘A·B·C(AI·바이오·클린테크)’ 분야를 적극 육성하고 자원을 집중하고 있다.



박현주 회장·정기선 부회장, 톱5 첫 진입

종합 4위는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에게 돌아갔다. 미래에셋은 지난해 11위에서 1년 만에 7단계 순위를 높여 4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박 회장은 미래에셋의 전문 경영 체제 전환을 이끌고 있다. 미래에셋은 미래에셋컨설팅 지분 25%를 미래에셋희망재단에 기부하면서 사실상 경영을 세습하지 않고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하겠다고 약속했다. 박 회장은 순환출자로 얽혀 있는 지주사 체제가 아닌 각 계열사 독립경영을 고수한다는 생각을 밝히고 있다. 자녀들은 이사회에만 참여시켜 전문경영인과 함께 의사결정을 하는 하이브리드 방식을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박 회장은 최근 세계적 권위를 가진 국제경영학회로부터 아시아 금융인으로서는 최초로 ‘올해의 국제 최고경영자상’ 수상자로 선정되는 영광도 누렸다. 한편 오너리스크 측면에선 계열사 간 내부거래가 감점 요인으로 지적됐다.

올해 오너십 평가에선 정기선 HD현대 부회장의 약진이 돋보인다. HD현대는 지난해 8위에서 올해 톱5에 랭크됐다.

HD현대는 3세 경영 체제에 안정적으로 진입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 부회장은 그룹의 경영을 이어받아 지배구조 개편 작업을 완료하고, 그룹의 실적 개선과 주가 상승을 이끈 점에서 주목받는다. 정 부회장은 ‘위기 극복’과 ‘새로운 성장’이라는 두 방향으로 조선업에 불어닥친 불황을 타개하며 그룹 내 주요 사업들의 성장을 이끌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는 기업공개(IPO)를 통해 HD현대마린솔루션을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시켰다. HD현대가 주주 환원 의지를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는 점도 시장은 환영하고 있다.

‘2024 베스트 오너십’ 종합 6~10위에는 GS(허태수 회장), 한화(김승연 회장), LS(구자은 회장), 셀트리온(서정진 회장), 현대백화점(정지선 회장)이 올랐다.

허태수 GS그룹 회장은 지난해 14위에서 8계단 상승하며 6위에 랭크됐다. GS는 지주회사 체제 전환 후 파르나스호텔 인적분할 등 사업구조 재편을 통해 경영 투명성을 강화하고 있다. 반면, 2019년 이후 재계 순위가 7위에서 9위로 하락한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김승연 한화 회장은 지난해 5위에서 2단계 하락해 7위에 안착했다. 한화는 핵심 사업 중심의 사업구조 개편 및 자회사 사업군별 전문화·계열화를 통한 기업 가치 증대 노력이 돋보인다. 구자은 LS 회장은 지난해보다 한 단계 내려간 8위를 차지했다. LS는 자사주 매입에 따른 책임 경영, 신성장 분야 확대 노력, 지배구조 단순화 및 이사회 역할 강화 등을 통해 오너리스크를 개선했다는 평가다.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은 지난해 19위에서 단번에 9위까지 순위를 끌어올렸다. 서 회장은 한동안 경영에서 손을 뗐다가 지난해 3월 셀트리온그룹 지주사인 셀트리온홀딩스 사내이사로 복귀하면서 이슈몰이를 했다. 은퇴 당시 명예회장에서 현직 회장으로 직함을 변경하고, 글로벌 빅파마로의 도약을 추진하고 있다. 셀트리온그룹은 최근 셀트리온제약 합병을 추진하다가 주주 상당수가 합병 반대 움직임을 보이자 합병을 재검토하는 방향으로 결론을 내렸다.

10위를 수성한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은 최근 지주사 체제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내년 2월까지인 현대지에프홀딩스 단일 지주사 전환 타임라인에 맞춰 내부 계열사 간 흡수합병과 지분 정리에 나서는 등 그룹 지배구조 개편이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다는 평가다. 현대백화점그룹의 지주사 전환은 지배구조 개선 노력으로 평가되면서도 인적분할로 인해 대주주 지배력 강화 및 소액주주 이익 침해 우려가 있는 점에서는 지배구조 악화 요인으로 꼽히기도 했다.

지난해보다 10단계 순위가 상승해 13위에 오른 유정현 넥슨그룹 의장은 최근 5조 원대 상속세를 모두 완납하며 화제를 모았다. 고(故) 김정주 회장의 배우자인 유정현 의장은 사진도 공개되지 않아 창업자보다 더한 ‘은둔의 경영자’로 불리고 있다.

최태원 회장 순위 급락…박정원 회장도 25계단 뒷걸음

‘2024 베스트 오너십’ 평가 기업 중 가장 큰 폭의 순위 변동을 기록한 것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이다. 최 회장은 지난해 4위에서 무려 30계단 아래인 34위로 수직 낙하했다. 발목을 잡은 것은 최 회장의 사생활 이슈였다. 이혼 소송으로 인한 지배구조 악화 우려가 오너리스크로 작용했다. 현재 재산 분할(1.4조 원) 대법원 소송이 진행 중으로, 재원 마련을 위한 SK계열사 지분 매각 시 지배구조 변경 가능성이 제기된다.



최근 지배구조 개편에 실패한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도 대폭 순위가 하락하는 쓴맛을 봤다. 박 회장은 지난해 12위에서 25단계 미끄러져 37위에 그쳤다. 두산은 두산로보틱스와 두산밥캣의 합병을 추진했지만, 주주 가치를 저해하는 지배구조 개편 강행으로 그룹 전반적인 대외 신인도 하락에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두 회사의 합병 비율이 문제였다. 두산 측이 그룹의 캐시카우 역할을 하는 두산밥캣 1주가 적자 기업인 로보틱스 주식 0.63주와 가치가 동등하다고 평가하면서다. 이같은 합병 비율은 총수 일가의 밥캣에 대한 지배력을 끌어올리려는 계산이라는 데서 주주들의 반발을 샀다. 이에 따라 두산밥캣을 두산로보틱스의 100% 자회사로 만든 뒤 두산밥캣을 상장 폐지하려는 계획도 사실상 무산됐다. 올해 지배구조와 관련해서 대표적인 오너리스크로 꼽힌다.



이 밖에 올해 지배구조 관련 주요 이슈들을 겪은 기업들은 장현진 영풍 고문, 조현준 효성 회장, 박세창 금호아시아나 부회장, 윤세영 태영 창업회장, 김범수 카카오 의장 등이 있다.

영풍은 고려아연과 경영권 분쟁으로 주주총회에서 표 대결까지 벌였다. 효성은 형제 간 상속과 독립 경영을 위해 회사를 분할한 것도 중요한 사건으로 꼽힌다. 이 때문에 지배구조가 복잡해지면서, 오너리스크가 증가했다는 평가를 얻는다. 금호아시아나는 아시아나항공을 대한항공에 매각 중으로, 이 작업이 마무리되면 내년 조사에서는 40대 그룹에서 제외될 예정이다. 사실상 그룹은 해체 수순을 밟게 되는 셈이다. 태영은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로 인한 워크아웃 상태로, 이 과정에서 지배주주의 부족한 대처가 오너리스크로 작용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카카오는 창업자가 구속되면서 리더십의 최대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이들 기업은 모두 이번 조사에서 하위권을 기록하고 있다. 오너리스크 평가에서 박한 점수를 받은 곳들은 주로 경영권 분쟁이나 법적 문제, 경영 관리 부실 등으로 인해 오너리스크가 발생했다.




이현주 기자 char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