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것이었으면 정부가 애초 노동개혁을 한다고 하지 말았어야죠. 예전보다 상황이 더 악화했습니다.”
현대자동차에 부품을 납품하는 울산 지역 중견기업 A사 대표는 최근 기자와 만나 이렇게 분통을 터트렸다. 무슨 얘기일까. 울산·경주 지역에 기반을 둔 제조업 뿌리기업 사이에서는 근로시간 면제 제도(타임오프)를 정상화하겠다는 정부 약속만 믿고 올해 임금 및 단체협상(임단협)에서 노조에 개선을 요구했다가 뒤통수를 맞았다는 하소연이 넘쳐난다.
타임오프는 노조 간부(전임자)가 노조 활동을 위해 쓰는 시간을 근로시간으로 인정하고 사용자가 급여를 제공하는 제도다. 노조 규모에 비례해 면제 시간과 인원 한도가 정해져 있다. 한도를 넘겨 임금을 지급하면 노동조합법상 부당노동행위로 간주돼 사업주가 2년 이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 벌금을 받는다. 하지만 산업 현장에선 노조가 전임자를 과도하게 요구하는 등 타임오프를 오남용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5월 기업 521개를 대상으로 전수 조사했고, 법 위반 의심 사업장 202곳에 대해 대대적인 근로감독을 벌였다. 사업주 대상으로 타임오프를 정상화하라고 주문했다. 타임오프 남용으로 골머리를 앓던 지방 제조업체들도 정부 방침에 적극 호응했다.
올초 고용부로부터 ‘타임오프 정상화’ 공문을 받은 부품업체 대표 B씨가 올해 임단협에서 정상화를 요구하자 노조는 극렬하게 반발했다. 예상과 달리 고용부는 어떤 조정도 없이 발을 빼버렸다. 긴 협상에도 이견이 좁혀지지 않았고 노조는 지난달 전면 파업을 선포했다. 납기일에 쫓겨 수십억원의 손실 위기에 놓인 회사는 결국 노조에 굴복했다. 초과 사용자에 대한 임금을 노조에 다른 명목으로 지원하기로 했다. B씨는 “고용부는 타임오프를 정상화하지 않으면 부당노동행위로 형사처벌하겠다고 윽박지르더니 정작 노조의 불법적인 실력 행사에는 팔짱을 끼고 있다”고 말했다.
현행법상 노조 요구로 타임오프를 과도하게 부여해도 노조는 처벌받지 않고, 사업주만 형사처벌을 받는다. 이렇다 보니 단체협약을 개정한 것처럼 꾸미고, 대신 이면계약을 체결하거나 다른 명목으로 노조에 돈을 제공하는 식의 꼼수가 속출하고 있다.
타임오프 정상화는 윤석열 정부가 내세운 핵심 노동개혁 정책 중 하나다. 그런데도 노조의 실력 행사에 불과 1년여 만에 공수표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물론 가장 큰 책임은 법을 우습게 보는 노조다. 하지만 사태를 방치한 고용부도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타임오프 개혁 무산이 노동개혁 전체를 무산시키는 시발점이 될까 봐 걱정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