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의 밥상엔 바다향이 가득하다. 청정해역으로 사면이 둘러싸여 사시사철 미식거리가 풍부하기 때문. 봄이면 도다리쑥국과 멍게·성게비빔밥이 입맛을 돋우고, 여름부터 가을까진 멸치회, 게장백반 등 제철을 맞은 바다 먹거리가 넘쳐난다. 혹독한 추위를 날려줄 대구탕, 물메기탕과 향긋한 굴구이는 거제의 겨울에서 놓쳐서는 안 될 향토 음식이다.
이토록 풍성한 식자재를 지녔으니 단 한 번의 방문으로 그치기엔 못내 아쉽다. 가을을 지나 겨울, 봄 그리고 여름의 거제까지 차례로 음미해보길 추천한다.
미촌거제 어딜 가도 수준급의 해산물 요리를 맛볼 수 있지만, 메뉴 선정이 고민이라면 뚝배기 가득 바다가 펼쳐지는 미촌을 추천한다.
활전복 두 마리와 문어 다리, 가리비 등 해산물로 탑을 쌓은 전복문어뚝배기가 대표 메뉴. 해물 뚝배기란 게 화려한 겉모습에 비해 그 맛은 그리 대단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패류의 껍데기를 벗기고 자르는 수고로움까지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이곳의 뚝배기는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자꾸 손이 가는, ‘아는 맛’을 탑재했다. 맑은 국물과 된장 베이스의 국물로 나뉘는데, 전자는 콩나물이 들어가 시원하고 후자는 순두부가 깔려 구수한 맛을 자랑한다. 든든한 한 끼로도, 과음 후 해장용으로도 제격이다.
KICK! 뚝배기산낙지볶음
‘맵찔이’는 조심하시라. 불맛 가득 산낙지볶음에는 이곳만의 비법 양념이 들어가 매콤 칼칼하다. 있는 그대로 절반을 맛본 뒤 공깃밥을 투하해 골고루 비벼 먹어보길. 하면옥
거제의 고유성과 풍미가 한 그릇의 냉면에 녹아있다. 2023년 향토음식 부문 ‘대한민국 한식대가’를 수상한 하대영 대표가 운영하는 하면옥의 냉면 육수는 이색적이다. 가까운 거제 바다에서 건져 올린 10여가지의 싱싱한 해산물로 48시간을 꼬박 우린 해물 육수가 베이스다. 덕분에 청량감과 감칠맛을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다.
깊은 육수와 신선한 메밀면의 만남을 설명하자면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을 반씩 섞은, 완벽히 조화로우면서도 새로운 맛이랄까. 육수가 살아있는 물냉면, 매콤한 비빔냉면, 짬짜면의 냉면 버전인 물비빔냉면까지 선택지도 다양하다.
KICK! 육전
냉면과 환상 궁합을 자랑하는 육전을 놓치지 말자. 신선한 소고기에 계란을 묻혀 고소하게 지져낸다. 쫄깃한 면 돌돌 감아 육전 하나 올려 먹으니 이만한 별미가 없다. 거제멸치쌈밥흔히 볼 수 있는 작고 여린 멸치를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멸치쌈밥에 쓰이는 거제의 대멸치는 어른 손가락 크기로 씨알이 굵고 기름져 고소한 맛을 자랑한다. 튼실한 멸치를 듬뿍 넣어 자작하게 끓인 찌개를 야채 쌈에 밥과 함께 싸 먹는 요리가 바로 멸치쌈밥이다. 얼큰한 양념에 졸아든 멸치는 흰 쌀밥과 환상의 궁합을 이룬다.
멸치쌈밥 A코스를 시키면 함께 나오는 멸치회무침은 단품 요리로 주문해도 손색없는 맛. 막걸리나 술지게미를 푼 물에 담근 생멸치의 부드러운 살만 발라내 매콤한 양념에 무친 음식으로, 역시 쌈 채소 위에 얹어 먹으면 입 안 가득 행복이 피어난다.
KICK! 멸치회무침
멸치를 즐겨 먹지 않는 사람들도 거부감 없이 맛볼 수 있을 만큼 고소하다. 비린 맛이 전혀 없어 밥과 쓱쓱 비벼 먹기 좋다. 취향에 따라 산초가루나 유자청을 첨가해 먹기도 한다. 배말칼국수김밥 본점거제에만 5개의 매장을 차린 인기 분식점. 조금은 생소하게 느껴지는 배말의 또 다른 이름은 삿갓조개다. 바위에 붙어사는 특성상 채취가 간단해 해안 도시에서 널리 쓰이는 식재료다. 특유의 쫄깃한 식감 덕에 ‘작은 전복’이라 불리기도 한다.
요리의 기본이 되는 육수를 눈여겨봐야 한다. 자연산 배말을 비롯해 보말(고둥), 각종 해산물로 우려낸 초록빛 육수로, 깊고 시원한 맛이 특징이다. 이 육수에 칼국수 면을 더하면 배말칼국수가 되고, 육수로 밥을 지어 볶은 톳, 콜라비 단무지, 달걀 지단을 넣고 돌돌 말면 배말톳김밥이 된다. 바다 향 물씬 풍기는 소박한 한상차림이다.
KICK! 양념장
배말톳김밥의 매력은 담백한 데 있지만, 한층 강한 풍미를 느끼고 싶다면 함께 제공되는 양념장을 더해보자. 고소한 맛이 배가된다.
박소윤 한경매거진 기자 park.so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