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이 2022년 미국 방송계 최고 권위의 에미상 남우주연상(이정재)과 감독상(황동혁) 등 6개 부문을 수상했을 때, 전 세계는 아시아 배우가 에미상 주연상을 받은 것이 처음이라며 환호했다. 비영어권 드라마의 감독상 수상도 처음이라고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오징어 게임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의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방영된 것으로 디지털 한류 시대의 정점을 찍었다고 평가받았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지난 15일 열린 2024년 에미상의 주인공은 드라마 ‘쇼군’이었다. 감독 등 주요 스태프가 미국인이었고 디즈니 계열인 FX채널에서 자막을 달고 방영됐지만, 출연진은 대부분 일본인이었다. 봉준호 감독이 영화 ‘기생충’으로 2020년 미국 골든글로브상을 수상하면서 “1인치 자막만 뛰어넘으면 더 많은 좋은 영화를 볼 수 있다”라고 밝힌 소감이 실제로 이뤄진 순간이기도 했다. 일본 매체들이 쇼군이 에미상을 수상한 것은 “전 세계적인 콘텐츠로 자리 잡은 한류 덕분”이라고 추켜세우는 것이 낯설어 보이지 않는다.
오징어 게임과 쇼군의 성과는 아시아 콘텐츠가 전 세계 최대 문화시장인 미국에서 얻어낸 성과라는 데 큰 의미가 있다. 한국과 일본의 문화 콘텐츠가 전 세계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은, 무엇보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동서양의 문화를 섞는 ‘혼종성’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한류 콘텐츠가 디지털 기술과의 융합을 통해 더욱 발전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영화, 드라마, K팝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파되고 오징어 게임, 더글로리, 무빙과 같은 드라마가 넷플릭스나 디즈니 같은 OTT를 통해 전 세계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e스포츠의 종주국처럼 되어, 온라인 게임과 문화를 동시에 발전시키고 있다는 점 역시 간과할 수 없다.
이런 현상은 ‘문화 혼종성’에 기여했다. 서구의 문화와 비서구의 문화, 북미 유럽의 문화와 동아시아의 문화가 섞이면서 전 세계가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제3의 문화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동서양의 문화가 혼합되는 과정에서 한국과 일본의 독특한 문화를 잃지 않았다는 점을 빠뜨려서는 안 된다. 쇼군의 주인공 요시이 도라나가를 연기한 일본 배우 사나다 히로유키(64)가 수상 소감에서 “이번 작품은 동양과 서양이 벽을 넘어 서로를 존중하는 꿈 같은 프로젝트였다”고 말한 것이 이를 잘 표현하고 있다.
뛰어난 스토리로 다져진 문화 콘텐츠가 디지털 기술과 만나는 것은 2010년대 이후 출생한 ‘알파세대’가 문화 생산과 소비의 주역으로 등장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소셜미디어, 스마트폰, 디지털 플랫폼 그리고 글로벌 융합 이전의 시대를 알지 못하는 알파세대의 성장은 디지털 기술과 문화의 융합이 절대적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진달용 사이먼프레이저대 특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