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은 윤리보다 앞선다.”
아일랜드 문학가 오스카 와일드는 이렇게 말했다. 예술은 도덕과 윤리가 아니라 아름다움 그 자체를 추구해야 한다는 의미다. 미국 언론인 마이클 핀클이 쓴 <예술 도둑>은 아름다움을 좇다가 돌이킬 수 없는 범법자가 된 프랑스 남자 스테판 브라이트비저를 다룬다.
브라이트비저는 역사상 가장 많은 예술 작품을 훔친 도둑이다. 1994년부터 2001년까지 유럽 전역에서 200여 회에 걸쳐 300점 넘는 작품을 훔쳤다. 가치는 20억달러(약 2조7000억원)에 달한다. 훔친 작품 목록은 가위 충격적이다. 루벤스의 집에서 훔친 ‘아담과 이브’ 조각상부터 18세기 초 호두나무로 만든 수발총, 크리스토프 슈바르츠의 1550년 유화 ‘피에타’…. 모두 인류가 남긴 최고의 명작과 명품이다.
브라이트비저는 도둑질할 때 변장하지 않았고 몰래 들어가지도 않았다. 대낮에 당당하게 입장했다. 잘 드는 스위스 아미나이프를 들고 조력자인 여자친구와 함께 작품을 훔쳤다. 훔친 작품은 그의 다락방에 봉인해 놨다. 그에게 이런 행위는 절도가 아니라 수집이었다. 그는 예술 해방가를 자처했다. 자신은 진정한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몇 안 되는 선택받은 사람이며, 돈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아름다움에 둘러싸이고자 이 모든 것을 훔쳤다고 주장했다.
책은 이 희대의 황당한 인물과 황당한 사건의 이면을 파헤친다. 브라이트비저가 어떻게 작품을 훔치고 보관했는지, 어떻게 파국에 이르렀는지 생생하게 그려낸다. 경찰·검찰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나온 수많은 보고서와 증언, 주변 사람을 통한 심층 취재 등을 통해 이 남자의 성향은 어떤 배경에서 비롯했고, 진짜 동기는 무엇인지 파고든다.
브라이트비저는 남부러울 것 없는 유복한 유년기를 보냈다. 엘리트인 아버지는 17~18세기의 진귀한 보물과 세계 각국의 명작을 집에 가져다 놓곤 했다. 브라이트비저는 독특한 아이였다. 또래와 어울려 놀기보다 박물관에서 고요하게 홀로 시간을 보내곤 했다. 역사적인 조각상과 유물 등을 보면 아름다움에 얼어붙었다. 그는 그렇게 예술품에 빠진 시간을 “과거로 피신했던 시간”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시간이 지나도 어른이 되지 못했다. 작품의 아름다움에 심취하는 게 제일 행복한 몽상가였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헤어지며 집 안 모든 보물을 가져가 버렸고, 브라이트비저는 큰 상실감을 느꼈다. 그 결과 그는 보물 상자를 빼앗긴 어린아이 상태로 어른이 됐다. 자신이 가져야 했을 보물을 뺏겼다는 피해의식과 아름다움을 향해 커져가는 욕망은 그를 어둠의 길로 유혹했다. 유일한 행복이자 안식처이던 예술 작품은 그렇게 그의 삶을 파괴했다.
브라이트비저의 주장은 일반적 기준에서 대부분 궤변이다. 자기도취에 빠진 나르시시스트에 가까워 보인다. 그러나 그를 단순한 광인으로 정의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어쩌면 인류의 보물이라고 불리는 예술품들에 어떤 저주가 걸려 있는 것은 아닐까. 아름다움이 지닌 파괴적인 속성을 생각해 보게 된다.
저자는 소설보다 훨씬 소설 같은 실화를 흡인력 있게 써 내려간다. 그의 짜릿한 도둑질(자신은 수집이라고 여기는)의 행적을 따라가다 보면 박물관이 아니라 그의 비밀 다락방에 들어가 보고 싶다는 충동이 든다.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