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앙은행(Fed)이 ‘빅컷’(기준금리 0.5%포인트 인하)을 단행하면서 다음달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한국은행은 고민을 던 모습이다. 물가가 안정화하는 가운데 한·미 금리 차가 1.5%포인트로 좁혀져 외환시장 변동성 확대 부담이 완화돼서다. 시장에선 한은이 10월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금리를 내릴 가능성이 한층 높아진 것으로 보고 있다. ○좁혀진 한·미 금리 차
19일 한은은 시장상황점검회의를 열어 Fed의 금리 결정이 한국에 미칠 영향을 점검했다. 유상대 한은 부총재는 “미국의 통화정책 피벗이 시작돼 외환시장 변동성 완화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된다”며 “국내 경기·물가와 금융안정 여건에 집중해 통화정책을 운용할 여력이 커졌다”고 평가했다.
Fed는 18일(현지시간) 기준금리를 기존 연 5.25~5.5%에서 연 4.75~5.0%로 인하했다. 이에 따라 연 3.50%의 기준금리를 유지하고 있는 한국과의 금리 차는 2.0%포인트에서 1.5%포인트로 좁혀졌다. 지난해 5월 이후 약 1년4개월 만에 가장 가까워졌다.
환율 상승을 야기할 수 있는 한·미 금리 차가 좁혀지면서 한은의 금리 인하 가능성은 더 높아지는 모습이다. 다른 지표들은 이미 금리 인하를 가리키고 있다. 물가상승률은 2%대로 하향 안정됐다. 이창용 한은 총재가 “물가만 보면 금리를 내릴 수 있는 환경”이라고 인정했을 정도다. 성장은 완만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수출과 달리 내수는 부진하다. 금리 인하로 대응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불안 요인 중 하나이던 외환시장의 부담 요인이 Fed의 빅컷으로 완화된 상황이 더해진 것이다.
시장에선 이런 점을 고려할 때 다음달 11일 열리는 금통위에서 한은이 금리 인하를 시작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김명실 iM증권 연구원은 “미국의 빅컷으로 한은이 10월 기준금리 인하에 나설 명분이 마련됐다”며 “내수 등 국내 지표가 좋지 않은 가운데 글로벌 통화정책까지 변화하며 10월 인하 가능성이 커졌다”고 말했다.
문제는 한은이 금리 인하를 위해 풀어야 하는 물가, 성장, 외환시장, 가계부채의 고차방정식 중 가계부채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달 가계대출은 9조원 넘게 증가했고, 이달 들어서도 주요 은행의 대출 증가세는 잡히지 않고 있다. ○한은도 ‘매파적 인하’ 가능성한은이 지난 7월 금통위부터 수도권 부동산시장 과열로 인한 가계부채 문제를 집중 언급한 상황에서 가계부채 증가세가 둔화하는 모습이 확인되기 전에 금리를 내리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조용구 신영증권 연구원은 “추석 연휴가 길었고 (금통위 전) 10월 초 연휴도 있다”며 “이 기간 가계대출이 줄어들 수 있지만 확대해석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한은이 이런 점을 종합 고려해 10월 금통위에서 Fed처럼 ‘매파적 인하’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금리를 내리면서 추가 인하에 선을 긋고, 부채를 우려하는 메시지를 강하게 내는 식이다. 앞서 박종우 한은 통화정책담당 부총재보가 “인하 시점뿐 아니라 속도가 중요하다”고 강조한 것이 이 같은 맥락의 발언으로 분석된다. 일각에선 한은이 10월에 금리를 0.25%포인트 내리더라도 이후 연내 추가 인하하기보다 내년 일정 시기까지 기준금리를 연 3.25%로 유지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 총재는 이날 거시경제금융회의에 참석한 자리에서 기자들과 만나 “통화정책은 국내 요인에 더 가중치를 두고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됐다”면서도 미국의 금리 인하에 동조해 10월에 금리를 내려야 한다는 의견엔 우회적으로 선을 그었다.
이날 국내 금융시장은 Fed의 빅컷을 두고 해석이 엇갈리며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코스피지수는 5.39포인트(0.21%) 오른 2580.80에 마감했다.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0.021%포인트 오른 연 2.843%에 장을 마쳤다. 원·달러 환율(오후 3시30분 기준)은 1329원으로 50전 하락(원화 가치는 상승)하는 데 그쳤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