벙커에서는 임팩트 때를 제외하고 모래를 건드려선 안 된다. 백스윙, 연습 스윙 중 모래를 치거나 볼 바로 앞뒤 모래에 닿으면 일반 페널티(2벌타)를 받는다. 벙커 상태를 알아보려고 손이나 클럽, 고무래 등으로 모래와 접촉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고의로 건드리지 않았지만 모래가 움직였고 이를 아무도 보지 못했다면, 골퍼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특히 총상금 1억달러(약 1330억원)가 걸린 대회라면.
지난 1일 미국프로골프(PGA)투어 페덱스컵 플레이오프 최종전인 투어 챔피언십 3라운드에서 사히스 시갈라(26·미국·사진)가 그런 상황에 놓였다. 3번홀 벙커에서 두 번째 샷을 날리기 전 백스윙할 때 모래알이 움직이는 것을 봤다고 자진 신고했다.
그럴 의도가 없었고, 동반자인 잰더 쇼플리(미국)도 몰랐다. 심지어 고화질 카메라로도 밝혀내지 못했다. 시갈라의 신고 말고는 증거가 없었다. 시갈라는 모래 알갱이가 움직인 사실을 마음에서 지울 수 없어 스스로 2벌타를 받았다.
의도 없이 한 행동은 규칙 적용에서 예외일까. 의도가 없었어도 결과적으로 모래를 건드렸다면 규칙을 위반한 것이다.
‘골프의 성인(聖人)’ 보비 존스도 자진 신고로 벌타를 받은 바 있다. 1925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우스터CC에서 열린 US오픈 첫째날 11번홀에서 존스는 아무도 보지 못했지만 러프에 있는 볼을 어드레스 도중 건드렸다고 알려 1벌타를 받았다.
그는 연장전에서 패배해 우승을 놓쳤는데, 스스로 신고하지 않았다면 우승할 수 있었다. 자진 신고에 칭찬이 이어지자 존스는 “은행 강도를 하지 않는다고 칭찬하는 것과 같다”고 일축했다.
시갈라 역시 당연한 행동을 했다. 마음의 부담을 털어낸 그는 후반 들어 5개 홀에서 연속 버디를 잡았다. 그리고 이 대회에서 3위를 했다. 자진 신고 2벌타가 없었다면 공동 2위에 올라 3위 상금 750만달러보다 250만달러(약 33억원)를 더 벌었을 것이다.
시갈라는 “여자친구에게 정직한 사람이라고 인정받았다”고 말했다. 동료들의 존중도 받으며 골프 팬에게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감동을 줬다.
최진하 전 KLPGA 경기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