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0만 명이 굶어 죽었다. 1955년부터 6년이나 ‘대약진’을 하겠다고 벌인 황당한 ‘운동’의 결과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을 쥐면 ‘세상만사 내가 가장 잘 안다’는 오만이 천형처럼 달라붙나 보다. 마오쩌둥이 딱 그랬다. 소련이 15년 안에 미국을 추월한다고 허풍을 치자 마오는 ‘그러면 우리는 15년 내에 영국을 추월하겠다’로 응수한다. 그리고 영국의 철강 생산을 즉시 따라잡으라는 엄명을 내렸고 관료들은 농민들을 들볶아 농가 마당에 사설 용광로를 설치했다. 일단 살고는 봐야 하니까 호미, 쟁기, 솥, 낫을 녹여서 쇠를 만들었다고 보고했다. 그 보고를 받고 ‘거 봐라. 하면 된다니까’라며 ‘따블로 가’라고 명령했지만, 농사 도구와 밥 해먹을 솥이 사라진 농민들은 이미 굶고 있었다.
1966년부터 10년간 이어진 문화대혁명은 더 기묘했다. 지식인들이 대약진운동이 낳은 비극을 비판하자 마오는 학생들에게 ‘부르주아 전문가’로 지목한 지식인, 교사, 교수들을 공격하라고 선동했다. 홍위병의 등장이다. 학교는 문을 닫았고 사회 전체가 완벽한 혼란에 빠졌다. 전문가에 대한 혐오로 병원에서 의사가 청소를 하고 청소부가 환자를 돌보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게 전문가 양성이 10년간 멈췄다. 그런데 그런 난리통인 1964년 핵실험에 성공했다. 공장 앞마당에 핵 실험설비라도 설치했나? 비법은 핵폭탄 프로젝트에 대한 통제권만은 정치인의 간섭을 막고 전문가에게 맡긴 데 있다. 그게 그 기묘한 시절에 이뤄낸 몇 안 되는 성공 중 하나다.
젊은 시절 프랑스와 러시아에서 견문을 넓힌 덩샤오핑은 달랐다. 1980년대 주도권을 잡은 직후 핵 개발에 성공한 그 비결을 확장해 국가개발체계를 구축했다. 권력자가 다 아는 게 아니니까 ‘전문가를 양성해서 맡긴다’는 원칙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너진 전문가 양성 시스템부터 복원해야 했다. 없는 살림에도 ‘21세기를 대비해 일류대학 100개를 양성한다’는 211프로젝트를 수립하고 우수한 대학을 선정해 엄청난 예산을 쏟아 부었다. 그리고 국책 연구기관이 그 대학에 집중적으로 힘을 보태라고 명령했다. 뭐 그런다고 없는 석학이 하늘에서 떨어질 리도 없고, 1990년대부터 몇 배의 연봉을 주고 해외 인재를 영입한다는 백인계획을 도입했다. 그 계획은 천인계획과 만인계획으로 확장됐다. 그래서 어찌 됐을까? 영국의 대학평가 기관인 THE의 2024년 보고서에서 칭화대(12위)와 베이징대(14위)가 도쿄대(29위), 서울대(62위)를 확연하게 앞섰다. 40년 전 상상할 수도 없는 바닥에서 출발했는데 그렇다. 그런 인재의 기반에서 중국의 기술 굴기가 가능했다.
그런데 같은 보고서에서 독일 최고의 대학은 뮌헨공대(30위)다. 교육 강국이던 독일이 스위스 취리히공대(11위), 싱가포르국립대(19위), 캐나다 토론토대(21위)에도 밀렸다. 그뿐만 아니라 15세 학생의 학습 수준을 측정하는 PISA(국제학업성취도평가)에서 독일의 성적은 매년 떨어지더니 최근 독해 18위, 수학 21위, 과학 18위까지 추락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기술학교와 일반학교로 진로를 결정하는 낡은 방식, 타고난 재능의 차이를 무시한 획일적 교육평등화에 구조적 한계가 온 것이다. 그게 고구마 다섯 개는 먹은 느낌인 독일 경제의 쇠락으로 연결된다. 프랑스가 추방한 신교도(위그노) 전문가를 적극 받아들이고, 최초의 연구 중심 대학을 세워 2차 산업혁명을 선도한 독일, 그런 땅에 주목할 만한 신생 기술 기업이 없다는 게 말이 되나? 현대 경제 성장의 핵심이 인재의 육성과 확보에서 시작된다는 걸 까먹은 건가?
왜 딴 나라 이야기만 하냐고? 그 나라, 탁월한 해외 명문대 졸업생을 모셔오지 못할망정 교수 연봉이 10년 훨씬 넘게 동결되는 황당한 현상을 방치하고 있다. 거기다가 연구개발(R&D) 예산 문제로 국책연구소의 연봉과 정원이 묶였고 비전문가 관료에게 연구 예산을 읍소해야 하는 판이니 인재의 복귀는 언감생심, 있는 석학들도 해외로 나가고 있다. 애들을 PISA 최정상급으로 잘 키워내 미국에 바치는 꼴이니 칠성사이다도 없이 고구마가 최소 열 개다. 서울대가 아직도 62위인 이유가 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