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에서 인공지능(AI), 반도체 등 첨단 품목의 수출 통제가 이뤄지는 등 첨단기술의 전략 무기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새 국제질서에 맞춰 한국만의 대응 전략을 짜야 할 때입니다.”
서정민 무역안보관리원 원장(사진)은 지난 13일 서울 삼성동 무역안보관리원에서 초대 무역안보관리원장으로서 과제를 묻자 이같이 말했다.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공공기관인 무역안보관리원은 신규 수출 통제 예상 품목에 대한 국내 산업 영향 분석 등을 지원하는 기관으로, 지난 8월 출범했다. 2007년부터 전략물자 수출 통제를 지원하던 전략물자관리원이 확대 개편했다. 국내 대표 ‘경제안보 싱크탱크’로 키운다는 방침이다.
숭실대 글로벌통상학과 교수인 서 원장은 대표적인 통상 전문가로 꼽힌다. 박근혜 정부에서 통상담당비서관으로 일하며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가입 논의 등 굵직한 통상 현안에 참여했다. 서 원장은 무역안보관리원 탄생 배경엔 글로벌 패권 경쟁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전략물자는 군비 경쟁이 한창이던 냉전 시대의 산물”이라며 “미·중 갈등,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신냉전에서 전략물자 수출 통제가 상대국을 공격하는 무기가 됐다”고 말했다.
전략물자의 전통적 개념은 대량 살상무기와 테러 등에 전용될 수 있는 물자와 기술을 뜻한다. 세계 주요국은 바세나르체제(WA), 핵공급그룹(NSG) 등 국제수출통제체제를 통해 살상무기 제조에 사용될 수 있는 품목의 수출입을 관리해왔다. 하지만 최근 신냉전 분위기 속에 러시아 중국 등도 포함된 국제체제에서 이들 국가를 제외한 새로운 통제(C-1)체제 구축이 거론될 정도로 대외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서 원장은 고도화하는 수출 통제에 맞선 대응 전략을 짜는 싱크탱크 역할을 맡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수출 통제 대상이 챗GPT와 같은 AI시스템부터 반도체 기술 및 생산 설비 등 첨단 제품·기술로 확대되고 있다”며 “어떤 기술이, 어떤 사양으로 통제될지에 따라 정부의 대응 전략도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과거엔 경제를 위해 안보가 필요했다면 지금은 경제 그 자체가 안보의 수단이 됐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무역안보관리원은 전략물자 심사·판정을 통해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무역, 산업, 투자 등 각종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며 “기술통제가 이뤄질 경우 어디까지 수입에 의존하고, 어디까지 한국만의 ‘생존 기술’로 키울지 등을 데이터에 기반해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글=황정환/사진=이솔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