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리그가 꿈의 1000만 관중 시대를 열었다. 한국 프로스포츠 최초의 기록이자 1982년 출범 이후 42년 만에 이뤄낸 쾌거다. 기아 타이거즈가 지난 17일 7년 만에 정규리그 1위를 확정 지으며 1000만 관중 시대의 첫 번째 주인공이 됐다. 역대급 폭염도 야구장을 찾는 팬들의 발걸음을 막지 못했다. 추석 연휴 기간인 15일 한국야구위원회(KBO)는 2024 KBO리그가 671경기 만에 누적 관중 1000만 명을 돌파했다고 밝혔다. 종전 최고 기록인 2017년 840만688명을 훌쩍 뛰어넘은 역대 최고 수치다. ○흥행 이끈 ‘2030 여성’
프로야구 흥행의 중심에는 ‘2030 여성’이 있었다.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아저씨’의 전유물이던 프로야구는 이제 전체 관중의 과반을 차지하는 20~30대 여성이 중심축으로 떠올랐다. KBO가 7월 열린 올스타전 티켓 구매자를 조사한 결과에서도 20대 여성이 39.6%, 30대 여성이 19.1%를 기록하는 등 여성 관중이 68.8%로 남성(31.2%)보다 두 배 이상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2030 여성을 타깃으로 한 각 구단의 다양한 마케팅도 주효했다. LG 트윈스는 만화영화 ‘뽀로로’ 시리즈의 캐릭터 ‘잔망루피’를 활용한 특별판 유니폼, 인형, 응원 도구 등을 출시해 여심을 사로잡았다. 두산 베어스는 ‘망그러진 곰’, 롯데 자이언츠는 ‘짱구는 못말려’와 협업해 다양한 의류, 굿즈를 선보여 인기를 끌고 있다. ○야구장을 놀이터로…숏폼의 힘
2030 여성을 야구장으로 끌어들인 일등 공신은 ‘숏폼’(짧은 영상)이다. 유튜브와 SNS를 통해 공유되는 다양한 숏폼이 젊은 층의 호기심을 자극해 그들을 실제 경기장으로 이끌었다. 최근 SNS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는 ‘삐끼삐끼 춤’이 대표적이다. 상대 팀 타자나 주자를 아웃시킬 때 기아 응원단이 추는 아웃송은 이제 하나의 ‘밈(meme)’이자 챌린지로 확장됐다.
KBO와 유·무선 중계권 계약을 맺은 CJ ENM이 경기 영상 관련 2차 저작물을 허용한 것이 ‘신의 한 수’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구단 관계자는 “야구장에서 춤추고 응원하는 다양한 영상이 유튜브와 SNS를 통해 공유되면서 야구장은 하나의 놀이터라는 인식이 강해졌다”며 “2차 저작물 허용이 신규 관중 유입이라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냈다”고 평가했다. ○전통 명가의 부활전통 명가의 부활도 프로야구 흥행에 큰 힘이 됐다. 한국 시리즈 최다 우승팀(11회) 기아가 17일 정규리그 1위를 확정 지은 가운데 최다 우승 2위(8회) 삼성 라이온즈도 2위로 플레이오프(PO)행이 유력하다.
기아 타이거즈가 정규시즌 내내 선두권을 질주하자 광주 챔피언스필드에 자연스럽게 야구팬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기아는 현재 117만7249명의 관객을 동원해 최다 관중 신기록 행진을 이어나가고 있다. 삼성도 올 시즌 활약에 힘입어 1982년 창단 이후 처음으로 단일 시즌 관중 100만 명을 넘어섰다. 현재까지 누적 관중은 127만5022명이다. ○치열한 중위권 다툼막판까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중위권 경쟁도 흥행의 원동력이 됐다. 이달 초까지 4위 두산부터 9위 NC 다이노스의 승차가 3.5경기에 불과할 정도로 치열한 순위 다툼이 이어졌다. 18일 기준 6위 SSG 랜더스와 7위 롯데가 가을야구 막차 티켓인 5위 자리를 쟁취하기 위한 실낱같은 희망을 이어가고 있다. ○새로운 스타의 탄생김도영(21·기아), 김택연(19·두산), 김영웅(21·삼성) 등 새로운 스타의 탄생도 야구 인기에 불을 지폈다. 특히 김도영은 기아를 넘어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슈퍼스타로 자리 잡았다. 역대 세 번째로 한 시즌 ‘3할-30홈런-30도루-100타점-100득점’을 돌파한 김도영은 40홈런-40도루까지 홈런 3개, 도루 1개만을 남겨둬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서재원 기자 jw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