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를 온라인으로 사는 소비자가 빠르게 늘면서 올해 온라인 자동차 거래금액이 사상 처음으로 5조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테슬라가 포문을 연 온라인 자동차 시장은 3년 전 현대자동차가 창립 이후 최초로 온라인으로만 판매한 경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캐스퍼 등장 이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비대면 구매를 선호하는 고객이 늘고 있는 데다 자동차를 직접 타보지 않고도 인터넷상에서 많은 정보가 공유되고 있기 때문이다. 수천만원 하는 자동차도 ‘클릭’으로 지갑을 여는 시대가 열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캐스퍼 13만 대 돌풍…RV 2위
18일 통계청에 따르면 올 들어 7월까지 온라인에서 이뤄진 자동차 거래금액은 3조1475억원으로,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42% 많아졌다. 온라인 거래 규모가 집계되는 음식료품(15.4%)을 비롯해 전자기기(5.7%) 음식서비스(7.1%) 여행(14.5%) 등 모든 상품군 가운데 증가율이 가장 높았다. 이 추세대로라면 올해 온라인 자동차 거래액은 5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젊은 소비자가 비대면 구매에 익숙한 데다 직접 타보지 않고도 온라인 등에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어 관련 산업 규모는 꾸준히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에서 온라인 자동차 판매는 테슬라가 시작했으나 현대차의 온라인 전용 판매 차량인 캐스퍼의 등장으로 급성장하고 있다. 2021년 9월 현대차가 창사 후 처음으로 차량을 온라인으로만 팔겠다고 선언했을 때 당시 현대차 노동조합은 “실패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우려와 달리 캐스퍼는 지난달까지 3년간 누적 판매량이 13만 대(13만3043대)를 돌파했다. 캐스퍼가 출시되기 전 2020년 2조1249억원에 그친 온라인 자동차 거래액은 매년 평균 1조원 규모로 증가해 두 배 넘게 커지고 있다.
올 들어 한국 온라인에서 가장 많이 팔린 자동차도 캐스퍼다. 1~8월 현대차 내수 판매량이 1년 전보다 9.8% 감소했지만, 캐스퍼 판매량은 2만8784대로 1.4% 더 많이 팔렸다. 같은 기간 온라인에서만 파는 테슬라 모델Y 판매량(1만2879대)의 두 배가 넘는다. 지난달엔 5031대가 팔리며 현대차 레저용 차량(RV) 라인업 중 싼타페(5715대)에 이어 두 번째 인기 차종에 이름을 올렸다. 캐스퍼의 질주 덕분에 2021년 10만 대 밑으로 내려간 국내 경형 시장도 지난해 12만 대 수준을 회복했다.
캐스퍼의 성공 비결은 ‘입소문’이다. 자동차는 온라인에서 구매하는 생활용품 등 다른 소비재와 달리 가격대가 비싸고 안전과 직결된다. 품질에 대한 신뢰가 쌓이면 이 장벽을 뚫을 수 있다. 현대차는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서울 성수와 송파 지역 등에 ‘캐스퍼스튜디오’를 팝업 형식으로 마련했다. 캐스퍼는 출시 3년이 됐지만 ‘가성비’ 좋은 차로 소문나며 꾸준히 팔리고 있다. 온라인만 파는 테슬라, 수입차 3위테슬라 역시 국내 소비자의 온라인 자동차 시장을 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테슬라는 국내에서 5개 차종을 온라인으로 판매 중이다. 국내 영업을 본격 시작한 2019년 판매량이 2430대에 그쳤으나 지난해 1만6461대로 6배 넘게 급증했다. 올해 1~8월 판매량은 2만2268대로 상품성과 온라인 판매 장점이 결합해 BMW, 메르세데스벤츠에 이어 수입차 시장 3위로 뛰어올랐다.
다른 수입차 회사들도 온라인 차 판매에 도전해 성과를 내고 있다. 2020년 온라인 판매를 시작한 BMW코리아는 그해 500대를 온라인으로 팔았는데 지난해엔 이 수치가 1만6853대로 늘어났다. 2021년 쉐보레 더 뉴 카마로SS를 온라인으로 시범 판매한 한국GM은 현재 4개 차종으로 대상을 확대했다. 폴스타, 혼다, 이네오스 그레나디어 등도 모든 차량을 온라인으로 판매 중이다.
하지만 온라인 자동차 판매 시장이 더 성장하는 데엔 한계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캐스퍼가 온라인 판매의 첫 대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현대차가 직접 생산하지 않고 광주글로벌모터스(GGM)에 위탁생산하는 차종이어서 노조와 타협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기아 등의 인기 차종을 온라인에서 팔기 위해선 판매노조 수천 명의 반발을 이겨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GM 역시 비슷한 이유로 국내 생산 차종을 온라인으로 판매하지 못하고 수입해 오는 타호, 시에라, 콜로라도, 트래버스 등 비주류 차종만 온라인으로 판매하고 있다.
업계 다른 관계자는 “현대차는 온라인 판매 채널 ‘클릭 투 바이’를 세계 주요 시장에서 운영하는 등 온라인 자동차 판매를 확대하고 있지만 국내에선 노조 반대 등으로 도입하지 못하고 있다”며 “온라인 판매 시 그만큼 비용이 줄기 때문에 가격을 낮추거나 옵션을 추가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소비자는 그만큼 손해를 보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온라인 자동차 판매 시장 커지자 차량 거래 플랫폼·스타트업도 '질주'
온라인으로 자동차가 많이 팔리면서 관련 플랫폼 기업도 각광받고 있다. 발품을 팔지 않고 온라인으로 더 많은 차량 정보를 얻고자 하는 소비자가 늘면서 견적 비교, 부품 구매 등 다양한 온라인 서비스가 주목받는 것이다.
국내 최대 직영 중고차 플랫폼 케이카가 올해 상반기 온라인으로 판매한 차량은 3만3759대로 전년보다 1.9% 늘었다. 매일 188대꼴로 이 사이트를 통해 중고차가 팔린다는 얘기다. 케이카는 인공지능(AI) 기반 수요 예측 시스템을 적용해 생산성과 수익성을 높이고 있다.
국내 최대 자동차 거래 플랫폼 엔카닷컴의 차량 누적 등록대수는 지난 7월 국내 업계 최초로 1500만 대를 돌파했다. 2020년 1000만 대 돌파 이후 약 4년 만에 500만 대 증가했다. 엔카닷컴은 빅데이터, 정보기술(IT)을 기반으로 한 거래 서비스 브랜드 ‘엔카믿고’를 통해 상담, 결제, 탁송, 금융, 환불 등 중고차와 관련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네이버는 지난달 쇼핑라이브 채널로 KG모빌리티의 액티언을 판매했다. 온라인을 통한 신차 구매가 낯선 고객을 위해 한 달 내 무료 반품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스타트업도 대거 생겨났다. 신차 거래 플랫폼인 차봇모빌리티에 따르면 이 회사가 올해 2월 론칭한 ‘신차 견적 매칭 서비스’는 지난 8월까지 견적 신청 건수가 매달 64%씩 늘었다. 차봇 앱을 통해 고객이 차량 구매 견적을 신청하면 차봇 멤버십에 가입한 딜러들이 24시간 안에 경매 방식으로 견적을 제시한다. 고객은 앱으로만 하루 평균 10건 정도의 견적을 비교할 수 있다. 계약 성사율이 약 10%에 달한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차봇 앱은 자동차를 사고, 타고, 파는 운전자 생애 주기 접점에 필요한 모든 서비스를 한곳에 모았다. 자동차 견적을 내는 것은 물론 자동차 금융과 보험 비교, 블랙박스 등 출고 후 필요한 제품 선택을 돕는 서비스까지 제공한다. 차봇 앱은 2022년 9월 론칭한 이후 2년여 만에 다운로드 50만 회, 회원 10만 명을 모으는 성과를 냈다. 신차 거래 플랫폼인 카랩은 2021년 처음 출시돼 월평균 600대 이상의 신차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카랩은 약 2300명의 딜러 회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한 달에 10만 건 넘는 견적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다. 수입차 할인 금액 데이터와 브랜드·차종별 소비자 선호도를 제공한다. 겟차는 지난 6일 현대글로비스 중고차 거래 플랫폼 ‘오토벨’과 제휴를 맺기도 했다.
신정은 기자 newyear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