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다시 봤다"…한국미술, 변방에서 중심으로 '다이브'

입력 2024-09-18 14:06
수정 2024-09-19 16:37


세계 주류 미술계에서 한국의 위상은 최근의 성장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변방에 머물러 있다. 작가들의 역량이 떨어져서는 아니다. 이불, 서도호, 양혜규 등 해외로 직접 진출해 맹활약 중인 한국 출신 현대미술계 ‘스타’들만 봐도 알 수 있다. 문제는 국내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이 제대로 조명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미술계의 헤게모니(패권)를 꽉 잡고 있는 미국과 유럽 입장에서는 한국 미술이 여전히 멀고 생소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작가들이 있어도 작품을 직접 보고 배경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 진가를 알 수 없는 법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예술경영지원센터가 2022년부터 ‘다이브 인투 코리안 아트:서울(Dive into Korean Art: Seoul)’ 프로그램을 3년째 운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국제아트페어(KIAF)-프리즈 서울 기간 해외 미술계의 주요 인사들을 국내로 초청해 한국 동시대 미술을 강의하고 신진·중진 작가들을 소개하는 일종의 교육 프로그램이다. 효과는 확실하다. 올해 행사에서도 “그동안 잘 몰랐던 한국 미술을 다시 보게 됐다”(실비아 암몬 파리 인터내셔널 아트페어 디렉터)는 해외 미술계 인사들의 호평이 쏟아졌다.

이론부터 작가까지

지난 1일부터 8일까지 열린 ‘2024 다이브 인투 코리안 아트’ 프로그램에는 총 12명의 해외 미술계 인사들이 초청됐다. 영국 테이트모던의 큐레이터인 발렌타인 우만스키, 두바이 자밀아트센터의 디렉터인 안토니아 카버, 미술 전문 매체 아트포럼의 수석에디터 로이드 와이즈 등 미술계 여론을 움직이는 주요 미술관 큐레이터와 주요 미술 매체 기자들이다. 행사는 이들이 한국 미술의 이모저모를 둘러볼 수 있도록 KIAF-프리즈 행사 기간에 맞춰 열렸다.

이들이 경험한 건 ‘한국 현대미술 풀코스’. 문체부와 예경이 첫날 준비한 건 박은영 이화여대 미술사학과 조교수의 2000년대 이후 한국 동시대 미술에 관한 강의였다. 중동지역 최고 권위의 비엔날레인 ‘사르쟈 비엔날레 16’의 제이넵 오즈 큐레이터는 “가장 먼저 강의를 들은 덕분에 한국 미술의 역사와 관련된 맥락, 향후 이어지는 프로그램 등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해외 미술계 인사들은 4일에 걸쳐 우한나 제시천 임민욱 양유연 등 신진 작가와 중진 작가 9팀의 작업실을 방문했다. 예경이 준비한 버스로 서울과 경기도를 오가며 하루에 작업실 2~3곳을 방문하고 작가의 설명을 듣는 강행군이었지만, 참가자들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등 열기가 뜨거웠다. 김민정 미국 세인트루이스 미술관 디렉터는 “지난 2일 서울 홍은동에 있는 전소정 작가의 작업실을 방문한 게 가장 인상깊었다”며 “코로나19 사태 때 텅 빈 미술관 공간을 주제로 한 작업을 보고 ‘전 세계인이 공감할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한국 작가와 작업해보고 싶다”

행사에 참여한 해외 미술계 인사들은 “한국 미술은 물론 한국이라는 나라를 다시 보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카버 디렉터는 “한국 작가들이 깊은 지식을 바탕으로 예술의 형식과 과정, 제작에 모두 집중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며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점도 인상깊었다”고 했다. 비비안 크로켓 뉴뮤지엄 큐레이터는 “한국 미술이 문화와 역사에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신선했다”고 했다.



한국 작가와의 협업을 고려하게 됐다는 반응도 있었다. 우만스키 큐레이터는 “해외에서 보는 것보다 한국의 미술이 훨씬 더 역동적이고 매력적이어서, 그간 미술계의 현실을 일부만 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특히 제시 천의 작업은 아주 흥미로웠고 함께 작업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예경 관계자는 “2022년 시작해 5회째를 맞는 이 행사를 앞으로도 지속해 한국 미술의 매력을 계속 알리고 해외 저변을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