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씨소프트가 게임 유통 시장에 발을 들였다. 자체 게임 플랫폼을 키워 외부 대형 게임을 공급하기로 했다. 콘텐츠 퍼블리싱 사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승부수다. AAA급 게임 더 유통한다엔씨소프트는 “자체 게임 플랫폼인 ‘퍼플’로 게임 배급 사업을 실시하겠다”고 지난 10일 발표했다. 이날부터 소니 인터랙티브 엔터테인먼트(SIE)가 유통하는 게임 4종인 ‘호라이즌 포비든 웨스트’, ‘마블스 스파이더맨 리마스터’. ‘마블스 스파이더맨 마일즈 모랄레스’, ‘라쳇 앤 클랭크: 리프트 어파트’ 등의 PC 버전을 퍼플에서 매주 순차 출시하기로 했다. 엔씨소프트는 이들 게임에 최대 40% 할인 이벤트를 진행한다.
퍼플은 엔씨소프트가 2019년 모바일 게임을 PC로 공급하고자 선보였던 플랫폼이다. 이 회사가 지난달 출시한 역할수행게임(RPG)인 ‘호연’을 비롯해, 쓰론앤리버티, 블레이드&소울, 아이온, 러브비트, 리니지2, 리니지M 등이 퍼플로 유통되고 있다. 퍼플은 이용자 간 채팅 및 음성 대화 기능뿐 아니라 여러 게임의 동시 구동을 지원하는 스트리밍 기능도 탑재하고 있다. 깔끔한 인터페이스와 연결성 덕분 게임업계 일각에선 그간 퍼플의 활용 확장을 기대하는 목소리도 나오곤 했다.
퍼플 사업 확장은 엔씨소프트가 최근 보여온 행보와 비교하면 더 두드러진다. 이 회사는 지난해부터 리니지 시리즈의 실적이 나빠지는 가운데 사업 구조조정에 힘써왔다.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위해 설립했던 자회사인 클렙의 보유지분을 지난해 5월 모두 매각했다. 인공지능(AI) 사업을 위해 추진했던 거대 대규모언어모델(LLM) 개발 전략도 수정하고 경량 LLM 운용에 집중하기로 했다. 스포츠 게임 자회사인 엔트리브소프트는 지난 2월 정리했다. 지원 부서와 소프트웨어 관리 부서는 별도 법인을 세워 독립시켰다. 퍼블리싱 사업과 시너지 기대업계에선 엔씨소프트가 퍼블리싱 사업의 해외 경쟁력을 끌어올리고자 퍼플을 범용 게임 플랫폼으로 개편한 것으로 보고 있다. 엔씨소프트는 지난달 서브컬처 게임 제작사인 빅게임스튜디오에 370억원 규모 투자를 단행하고 이 회사 게임인 ‘브레이커스: 언락 더 월드’의 공급 권한을 확보했다. 지난 7월 스웨덴 게임사인 문로버 게임즈에 350만달러(약 47억원)를 투자하기도 했다.
엔씨소프트로선 자체 플랫폼을 적극 활용하면 이용자들을 퍼블리싱 게임에 끌여들이는 인접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리니지 시리즈를 즐기러 퍼플에 접속한 이용자가 엔씨소프트가 공급하는 또 다른 게임을 호기심 삼아 즐기는 게 가능해서다. 엔씨소프트는 퍼플에 있는 게임들을 묶어 프로모션을 할 수도 있다. 홍원준 엔씨소프트 최고재무책임자는 지난달 2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연내 (퍼플에서) 여러 AAA급 게임 추가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며 “중장기적으로 퍼플을 통해 글로벌 퍼블리싱 사업을 확장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시장 관점에서 보면 PC 게임 플랫폼은 이미 성숙 단계에 있다. 이 시장의 절대 강자는 미국 밸브코퍼레이션의 ‘스팀’이다. 스팀의 동시 접속자 수는 3300만여명에 달한다. 스팀에선 지난해에만 신작 게임 1만4500여개가 탄생했다. 크래프톤의 ‘펍지: 배틀그라운드’는 스팀으로 동시 접속자 수 300만명을 넘기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스팀도 태생은 게임 배급 목적이 아니었다. 밸브가 자체 총쏘기 게임인 ‘카운터 스트라이크’의 업데이트 관리를 위해 만든 소프트웨어가 그 시작이었다.
엔씨소프트가 의식해야 할 다른 경쟁 플랫폼도 있다. 국내 업체인 H2인터랙티브는 PC 게임 플랫폼인 ‘다이렉트 게임즈’로 스팀의 위상에 도전하고 있다. 공격적인 할인 전략과 게임 무료 배포 등으로 이용자 확보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에픽게임즈의 ‘에픽게임즈 스토어’도 ‘사이버펑크 2077’, ‘워해머40,000: 스페이스마린2’ 등 외부 게임을 공급하고 있다. 적극적으로 시장 점유율을 늘리려는 플랫폼 업체로선 다른 플랫폼과 대비되는 뚜렷한 강점을 내세울 수 있어야 하는 상황이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