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신라 다 제친 경복궁…면세점업계 뒤집어졌다

입력 2024-09-17 20:21
수정 2024-09-17 20:22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이후 국내 주요 면세점은 극심한 경영난을 겪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전 만큼 면세품이 잘 팔리지 않은 탓이다. 국내 면세점 1위 롯데면세점이 대규모 적자를 견디지 못하고 인력 감축, 매장 축소 등 사상 첫 구조조정에 나설 정도다. 하지만 유독 잘 되는 면세점이 있다. 경복궁면세점이다.

17일 면세점업계에 따르면 경복궁면세점은 지난해 매출 2022억원을 기록, 전년(957억원) 대비 두 배 이상 성장했다. 영업이익 또한 190억원으로 전년(100억원) 대비 90%나 급증했다. 이는 국내 최대 면세점 롯데면세점(영업이익 158억원)과 신라면세점(139억원)의 이익을 뛰어 넘는 것이다. 올해는 매장수가 더 증가, 실적이 더 좋아질 전망이다.

경복궁면세점이 ‘나홀로’ 성장하고 있는 것은 우선 입국장 면세점을 운영하고 있는 영향이 크다. 경복궁면세점은 인천공항 1·2터미널과 김해공항 등에서 입국장 면세점을 운영 중이다. 롯데, 신라 등 대기업은 입국장 면세점 입찰에 참여하지 못 해 비교적 수월하게 매장을 확보했다. 경복궁면세점의 지난해 매출 대비 원가율 49%. 판매가 1만원 짜리 상품의 원가가 4900원이었다는 의미다. 이에 비해 신라면세점의 원가는 평균 6000원이었다. 경복궁면세점이 마진을 훨씬 많이 붙여서 팔았다는 의미다. 입국장 면세점을 이용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내국인이고, 이들은 귀국하면서 부랴부랴 선물을 사거나 면세 혜택이 큰 술, 담배를 담기 때문에 마진이 높은 편이다.

공항 임차료도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경복궁면세점은 지난해 임차료로 703억원을 썼다. 입국장 면세점 세 곳 뿐 아니라, 인천공항 1터미널 출국장 면세점 등을 운영하면서 낸 임차료다. 이에 비해 인천공항 1·2터미널 두 곳에 공항 면세점을 운영 중인 신세계면세점은 1249억원을 지급했다. 입지와 크기, 판매 품목 등에서 차이가 있으나 단순 계산으론 신세계가 두 배 더 지불하고 있는 셈이다. 중소?중견기업으로 분류 돼 대기업과 직접적 입찰 경쟁을 하지 않은 영향이다.

시내 면세점이 없다는 점도 실적에 긍정적이다. 대기업 면세점은 임차료 부담이 큰 공항 면세점 보다 시내 면세점을 주력 점포로 쓰고 있다. 롯데의 경우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과 잠실 롯데월드타워점에서 주로 매출이 나온다. 신라면세점도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 서울 용산 아이파크몰 등의 시내 매장이 주력이다. 이들 시내 면세점은 코로나19 사태 이전엔 중국인 단체관광객(유커), 코로나19 사내 이후엔 중국인 보따리상(따이궁)을 통해 대거 매출을 올렸다. 그런데 요즘은 유커든 따이궁이든 중국인을 찾기 어렵다. 중국 내에서 화장품 등 한국 면세품에 대한 인기가 감소한 영향이다. 대신 최근 면세점의 주력 손님은 일본인, 동남아인, 유럽인, 내국인 등으로 다각화 됐다. 이들은 시내 면세점 대신 공항 면세점을 주로 이용한다. 시내 면세점이 없는 경복궁면세점 입장에선 기회를 맞은 것이다.

당분간 경복궁면세점의 성장은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12일 청주공항 내 출국장 면세점을 연 데 이어, 최근 김해공항 국제선 출국장 면세점까지 입찰을 통해 확보했기 때문이다. 한 면세점 관계자는 “시내 면세점의 시대가 가고, 공항 면세점이 시대가 온 것 같다”고 말했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