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에 따른 에코프로비엠 주가 부진에 지난해 전환사채(CB)에 투자한 사모펀드(PEF)들이 울상을 짓고 있다. 두 차례 전환가격을 하향 조정해 최저치까지 전환가격을 끌어내렸지만 주가는 더 고꾸라졌다. 만기까지 4년여의 시간이 남아 투자 성과를 속단하긴 이른 상황이다. 하지만 출자자(LP)들에게 정기적으로 투자 성과를 보고해야 하는 PEF들의 속은 타들어가고 있다.
16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13일 15만9100원에 거래를 마친 에코프로비엠은 올 들어 43.9% 하락했다. 52주 최고가(35만4000원)와 비교하면 55.1% 내렸다. 전 세계적으로 전기차 수요가 줄어들면서 2차전지 대장주로 꼽히는 에코프로비엠도 타격을 입었다.
에코프로비엠 주가 부진에 국내 대표 PEF 운용사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에코프로비엠은 지난해 7월 국내 PEF와 증권사를 대상으로 4400억원 규모의 CB를 발행했다. 정보기술(IT) 관련 투자 역량이 뛰어난 1세대 PEF 운용사 스카이레이크에쿼티파트너스는 전체 발행 규모의 절반에 가까운 2000억원을 투자했다.
IMM인베스트먼트(550억원), 프리미어파트너스(450억원), SKS프라이빗에쿼티(300억원), 이음프리이빗에쿼티(300억원), 키스톤프라이빗에쿼티(100억원), 신한투자증권(100억원) 등도 에코프로비엠 CB에 투자했다.
당시만 해도 2차전지 관련 기업의 몸값이 치솟던 때라 발행조건은 발행사인 에코프로비엠에 유리하게 설정됐다. 이 CB의 표면이자율은 0%, 만기이자율은 2%다. 표면이자율이 0%라는 건 만기 이전에 별도로 이자를 지급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만기이자율 2%는 당시 기준금리보다도 낮다. PEF들이 이자 수익을 포기하고, 주가 상승에 베팅했다는 의미다.
CB의 전환가격은 주당 27만5000원이다. CB 발행 공시를 한 지난해 6월 30일(24만900원) 이후 에코프로비엠 주가는 46만2000원(7월 25일)까지 치솟기도 했지만 상승세는 거기까지였다. 이후 하락세로 전환한 주가는 지난 10일 15만3700원까지 하락하며 52주 신저가를 기록했다.
주가 하락에 따라 CB의 전환가격은 지난 2월 24만7896원으로 조정된 뒤 지난달에 20만6250원으로 재조정됐다. CB 전환가격은 발행 당시 전환가격에서 최대 25%까지만 하락 조정할 수 있어 에코프로비엠의 주가가 더 떨어지더라도 하향 조정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
PEF들은 지난 7월 24일부터 2028년 6월 24일까지 주식 전환을 청구할 수 있지만 아직 아무도 주식 전환을 청구하지 않았다. 전환가격이 주가보다 높아 주식으로 전환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에코프로비엠의 주가가 이후에도 계속 약세를 이어가면 PEF들은 2026년 5월부터 조기 상환을 요청할 수 있다. 조기 상환을 요청하면 기준금리에도 못 미치는 연복리 2%의 수익률에 만족해야 한다.
다만 PEF들의 에코프로비엠 CB 투자 결과를 속단하긴 이르다. 아직 만기까지 4년여의 시간이 남았기 때문이다. 전기차 캐즘이 끝나고 다시 2차전지 관련주가 강세를 보인다면 CB를 주식으로 전환해 수익을 낼 수 있다. IB업계 관계자는 "투자의 성공 여부를 속단하긴 이르지만 PEF의 경우 LP들에게 현재 주가가 전환가격보다 낮아 손실 우려가 있다는 사실을 정기적으로 보고하는 것 자체가 몹시 괴로운 일"이라고 말했다.
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