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을 앞당겨 받는 조기 수급자가 사상 처음으로 90만 명을 넘었다. 생계유지 등을 위해 연금이 깎이는 불이익을 감수하는 수급자가 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3일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지난 5월 기준 국민연금 조기 수급자는 90만1950명으로 집계됐다. 조기 수급자는 2019년 처음으로 60만 명을 돌파한 뒤 4년 만인 지난해 80만 명을 넘어섰다. 올해 들어서도 매월 1만여 명씩 증가해 5월 기준 90만 명을 돌파했다.
조기연금은 일명 ‘손해연금’으로 불린다. 수급 시기를 최대 5년 앞당기는 대신 연금이 많게는 30% 감액(1년에 6%씩)된다. 이런 불이익에도 조기연금 수급자는 꾸준히 늘고 있다.
조기연금 수급자는 지난해 유독 큰 폭으로 증가했다. 2023년은 연금 수급개시 연령이 만 62세에서 63세로 한 살 늦춰진 해다. 이에 따라 지난해 만 62세이던 1961년생은 연금을 받기 위해 1년 더 기다릴 수밖에 없었고, 이 중 일부가 수급 시기를 앞당긴 것으로 해석됐다.
은퇴 후 연금 수급 시기까지 발생하는 소득 크레바스(소득 공백)를 견디지 못하는 것도 조기 수령의 원인으로 꼽힌다.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 고령층 부가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55∼64세 고령층이 가장 오래 다닌 직장에서 퇴직한 연령은 평균 49.4세였다. 다른 직장을 바로 구하지 않는 이상 연금을 탈 때까지 10년 이상의 소득 공백이 발생하는 셈이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은 “조기연금은 당장 먹고살기 어려운 취약계층이 신청하는 경향이 있다”며 “퇴직 후 재고용 등 노동 개혁과 동시에 국민연금 의무 가입연령(현재 59세)을 올리면 소득대체율이 높아지고 노인 빈곤 해소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기 수령으로 연금이 깎이면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유지할 수 있다는 이점도 영향을 주고 있다. 피부양자는 건강보험 직장가입자에 의해 생계를 유지하는 자로, 보험료를 따로 내지 않아도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2022년 9월부터는 피부양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 합산소득(공적연금 포함) 기준이 연 3400만원 이하에서 연 2000만원 이하로 강화됐다. 이에 따라 일부 수급자는 피부양자 탈락을 피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연금 감액을 선택한 것으로 분석됐다.
허세민 기자 se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