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여행 취향 조사가 있겠습니다. 여행객만 북적이는 관광지에 질린 분? 현지민들의 삶이 녹아있는 곳을 선호하시는 분? 허름한 노포는 환영이지만 휴식만큼은 편안한 곳에서 취하고 싶은 분?
앞선 질문이 모두 자신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면, 딱 어울리는 여행지가 있다. 바로 서부산이다. 부산역을 기준으로 왼쪽, 넓게 중구·서구·영도구에 걸친 원도심 지역을 생각하면 된다.
6·25 당시 피란민들이 정착해 삶의 터전을 꾸린 흰여울마을, 역사와 예술이 어우러진 감천문화마을, 우리나라 최고(最古) 자랑하는 송도해수욕장, 활기로 가득한 자갈치 시장이 바로 서부산이다. 몇 년 전부터는 골목 사이사이 개성 있는 카페들이 들어서기 시작해 MZ세대의 발걸음도 늘어나고 있다.
서부산으로의 여행을 결정한다면 윈덤 그랜드 부산을 베이스캠프 삼는 것이 좋겠다. 부산역에서 택시로는 15분이면 닿고, 남항대교 남단에 위치한 덕분에 영도, 송도, 남포동 등 서부산의 주요 스폿으로 이동하기 무척 편리하다. 올해 9월로 개관 1주년을 맞은 호텔을 직접 찾았다.
윈덤 그랜드 부산은 서부산 지역의 첫 5성급 호텔이자, 한국의 첫 '윈덤 그랜드' 호텔이다. 윈덤 그랜드는 글로벌 호텔 체인인 윈덤 그룹 내의 최상위 등급 브랜드다. 한국에서는 라마다, 데이즈 호텔, 하워드 존슨 등의 브랜드가 진출해 있다.
호텔의 첫인상을 결정짓는 것은 로비. 그런 점에서 윈덤 그랜드 부산의 첫인상은 '예술적이다'. 박서보, 이배, 김종학 등 걸출한 작가들의 대형 작품이 시선을 사로잡기 때문이다. 호텔은 부산의 기반 갤러리와 협업하며 예술 작품을 지속적으로 선보일 예정이라고. 아트부산 등 다채로운 아트 행사를 개최하며 '예술 도시'로 떠오른 부산의 격에 어울린다는 인상.
객실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시원하다'는 생각이 든다. 커다랗게 난 창으로 드넓은 바다가 펼쳐진다. 호텔은 총 271개의 객실이 있는데, 전 객실에서 바다가 보인다. 발아래로는 영도로 향하는 남항대교가 곧게 뻗어있다. 도로를 분주하게 오가는 차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아늑하고 조용한 객실에서의 휴식이 더욱 여유롭게 느껴진다.
객실 크기도 널찍한 편이다. 기본 객실보다 한 단계 위인 프리미엄 킹 객실에 묵었는데, 소파와 책상을 두고도 여유 공간이 넉넉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해당 객실의 넓이는 37.3㎡(약 11평)로, 해운대·광안리 부근 5성급 호텔의 같은 등급 객실과 비교하면 3.3㎡(1평) 정도 여유 있는 편이다. 넓어진 객실 크기만큼 바다도 넓게 펼쳐진다.
넉넉한 인심은 다른 곳에서도 느낄 수 있다. 19세 미만 자녀를 동반 투숙할 경우에는 추가 요금을 따로 받지 않는다. 미니바 가격도 남다르다. 탄산음료는 2000원, 감자 칩은 2500원으로, 편의점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냉장고 문을 열기가 두려울 정도로 높은 가격을 자랑하는 다른 호텔들을 생각해보면 무척 저렴하게 느껴진다. "이곳에서만큼은 부담을 느끼지 않고 편안히 휴식을 취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가격을 측정했다"는 것이 관계자의 설명.
지역 브루어리인 부산맥주의 오륙도 페일에일을 미니바에 넣는 등 로컬 브랜드와의 협업도 눈에 띈다. 부산의 전경을 일러스트로 표현한 어메니티 박스는 소장하고 싶을 정도로 깜찍하다.
윈덤 그랜드 부산에 와서 반드시 들려야 할 곳은 뷔페 레스토랑 '더 브릿지'다. 가격은 만만치 않다. 디너가 성인 1인 13만 원(평일 기준)으로, 광안리·해운대의 특급 호텔의 뷔페 레스토랑 가격과 맞먹는다. 그러나 이는 곧 음식의 퀄리티가 부산 어느 호텔보다 뛰어나다는 자신감이기도 하다.
이 자부심은 원재료에서 시작한다. 과일과 해산물, 축산물 등 최고의 신선도를 자랑하는 제품을 사용한다는 것. 식재료 원가율도 일반 레스토랑보다 훨씬 높다.
그러다 보니 가장 눈에 띄는 코너도 원재료의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해산물 섹션에서는 신선도가 뛰어난 회와 초밥을 내놓는다. 라이브 스테이션에서는 즉석에서 그릴에 구운 양갈비, 스테이크 등을 맛볼 수 있는데 웬만한 스테이크하우스보다 뛰어난 맛을 느낄 수 있다. 또, 타파스, 해산물 찜 등 와인과 궁합이 잘 맞는 요리가 많아 와인 애호가들이라면 눈여겨볼 만 하다.
인상적인 것은 살가운 셰프들이다. 오늘의 추천 음식이라거나 메뉴를 더욱 맛있게 즐기는 법을 친절하게 안내해 준다. 여느 뷔페 레스토랑에서는 볼 수 없었던 살뜰함이다. 호텔에서 마주치는 직원들 역시 살갑기는 마찬가지. 스스럼없이 스몰토크를 건네고 불편함은 없는지를 묻는 이들에게서, 손님의 여행에 관심을 기울인다는 느낌이 들었다. 누가 부산 사람들을 무뚝뚝하다고 했는지.
항구는 밤에도 불이 꺼지지 않는다. 무역선과 크레인 타워의 조명이 바다를 수놓는 장면은 서부산에서만 볼 수 있는 야경이다. 부산항의 깜빡이는 불빛을 등대 삼아 포근히 잠에 빠져든다. 서부산의 밤이다.
부산=김은아 한경매거진 기자 una.kim@hankyung.com